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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jjoo Nov 09. 2020

노화가 슬픈 이유

나이는 숫자에 불가하건만...

오늘 낮 4시쯤 줌으로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다. 

옛날부터 소심한 성격과 막연한 전화 공포증으로 비대면보다는 대면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조금은 부담스런 방식이다.  하지만 미팅이 길지도 않는데 왕복 4시간을 길바닥에 버리는 것도 아까웠다. 

그래서 줌 어플을 다운받아 예행연습! 어머, 폰 화면에 비치는 아줌마는 누구래?


미팅했던 분은 초상권 보호를 위해, 나는 최소한의 내 인격적 권리를 위해 자체 스티커행 ㅎ


나는 시력이 꽤나 안 좋은 편이다. 까페에서 메뉴판도 읽을 수 없고, 버스 번호도 정거장 근처에 와야 보일 정도다. 그래도 안경을 평소에는 쓰지 않는다. 노트북 작업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나름 익숙해져서 감으로 웬만한 건 알기 때문에 크게 불편은 없다. 시력이 안 좋다고 단점만 있는 게 아니다. 장점도 있다. 다른 사람의 얼굴도 그렇지만 내 얼굴도 정확히 보이지 않기에 잡티며 주름이며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살기 편하다 :) 


하지만 이렇게 사진이나 비디오 화면으로 보면 나의 늙어감이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온다. 깊게 패여서 감춰지지 않는 팔자주름부터 눈썹을 치켜올릴 때마다 잡히는 이마의 주름, 치아교정 당시에 깨달아 컴플렉스가 된 너무나도 작은 입까지 ... 하 ... 무척이나 어려보인다고 들었던 말들은 인사치례였던건가?

언제부턴가 머리를 감을 때마다 눈에 띄게 빠지는 머리카락에 내심 신경이 쓰인다. 어릴 때는 숯처럼 까맣고 한 손으로는 쥐기 힘든 숱많은 머리가 컴플렉스였는데, 이제 매일같이 방바닥에 빠진 머리카락을 주으며 안타까워하는 나이가 됐다. 머릿속을 손가락으로 들추면 꼭 한 두개씩 보이는 흰머리는 이젠 포기했다. 


늙어간다는 것은 슬프다. 매 해 한 살씩 나이를 먹어서 슬픈 게 아니다. 90살에도 젊은 외모를 유지하고 20대와 같은 팔팔한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래도 슬플까? 그땐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치부해버릴 수 있을거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 인연 따라 생겨난 것은 반드시 사라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화가 씁쓸한 것은 나이를 먹지 않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마음엔 나이가 없다. 경험과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성숙해질 수는 있어도 늙지않는 마음과 점점 노화해가는 몸의 괴리에서 고통을 느낀다. 몸이 비록 진짜 '나'가 아님을 알지만, 이 몸을 통해서만 세상을 경험할 수 있기에 슬픈 것은 여전하다. ... 솔직해지자면 여전히 '젊음이 좋다'라는 분별심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판단하지 않고 거울에 비친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그냥 하나의 상이 거울에 비춰질 뿐이다. 깊게 패인 팔자주름도, 얼굴에 늘어난 잡티도, 목에 드리워진 굵은 선도 그저 거울 속에 있는 것들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분별없이 바라보면 안타까움이 없다. 전에 없던 자리에 흰머리가 솟아도 그저 그럴 뿐. 슬픔도 괴로움도 없다. 참 쉬운데 또 어렵다. 


분별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는 마음과 노화가 당연한 몸 사이의 괴리감도 괴롭지 않다. 어렵지만 또 쉽다고 생각하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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