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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Jan 10. 2023

둘째의 2는 곱하기가 아니라 제곱.

딸등신곱빼기의 삶

 뭐 너무 많이 들은 이야기다. 아이가 둘이면 2배가 힘든 것이 아니라, 4배가 힘들다고. 첫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당한 기습공격이었다면, 둘째는 알면서도 맞는 난타였다. 거기에 더 큰 변수는 우리의 체력. 3년 터울인 첫째와 둘째 사이의 시간은 우리가 3년 더 늙었다는 뜻이었고, (많은 선배님들께는 죄송한 표현입니다만, 이 말 말고는 표현할 다른 말이 없어서...) 그리고 그 3년은 단순히 시간만 흘러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체력도 같이 가져간 세월이니, 3년 전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비교가 안 되는 것이었다.


더 낮아진 체력과, 더 늙어버린 신체와, 한참 말썽쟁이인 첫째와, 심지어 남들보다 탁월하게 커가는 둘째의 무게는 우리에게 4배도 너무 약하게 표현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들 게 한다.


"우리가 진짜 용감했다."


"우와. 알면서도 이걸 또 했네?"


"이건 진짜 존경의 포인트야."


요즘 우리는 이런 대화들을 많이 한다. 하루종일 모든 순간이 힘들고 어렵지만, 유독 더 힘든 순간을 고르라면, 뭐니 뭐니 해도 둘이 동시에 울 때다. 첫째는 이제 자기 고집이 쎄져서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을 때, 울며 때를 쓰는 일이 많다. 훈육을 해야 하는 단계라서 우리는 달래서 그치게 하기보다는 스스로 멈출 때까지 기다리는 편인데, 이때 둘째가 울음을 터트려버리면 진짜 답이 없다.


언젠가 첫째의 감기와 둘째의 건강검진 일정이 겹쳐서 모두 함께 병원에 간 적이 있는데, 무사히 병원을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차에서 둘이 같이 울기 시작했다. 첫째는 무엇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았다고 울음을 터트렸고, 둘째는 배가 고파서 울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첫째는 내가 안고, 둘째는 아내가 안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같이 타고 계신 다른 층에 이웃 남자분께서 그 상황을 마주하고 너무 당황하셨다. 7층까지 올라가는 길에 아이 둘은 울고 있고, 아빠와 엄마는 각자 안고 있는 아이를 달래고, 내 손에는 짐도 들려 있고, 같이 타신 이웃은 자신이 뭐라도 도와줘야 할 것 같다는 마음에 손을 어정쩡하게 내밀어 주셨는데, 실제로 그분이 도와주실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었다.


지금 현재 우리에게 이런 일은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이벤트다. 하루에도 둘이 동시에 우는 일을 수시로 일어나며, 그 이상의 일들도 너무 많다. 우리는 가끔 두 아이를 데리고 같이 자기도 하는데, 둘 중에 한 명이 깨서 울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나머지 아이도 깨서 운다. 언젠가는 자다 둘 다 울어 깨보니 첫째는 속이 안 좋아서 토하고 있었고, 둘째는 배가 고프다고 울고 있었다. (그 당시 아내는 젖몸살로 고열이었고,) 그리고 꼭 첫째가 화장실에서 응가를 하고 있을 때, 둘째도 응가를 하고, 둘째 모유를 먹이고 있으면, 첫째는 사고를 치고. 기본적으로 한 명은 뭘 할 수가 없고, 둘이 있어도. 여유라고는 1도 없는 삶이 이어지고 있다.


"우와.."


 둘을 기르는 삶은 매번 우리의 한계를 시험하고, 우리의 극한으로 몰아넣으며, 수많은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신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은.


 아이가 미친 듯이 이쁘다. 누가 봐도 못나니에 이쁜 구석이 없는 아이지만, 우리 눈에는 세상 귀엽고 소중한 존재라서, 한 순간에 모든 고통을 사라지게 한다. 게다가 우리 첫째는 어찌나 고마운지, 자기 동생을 정말 이뻐해 준다. 하루에도 100번도 넘게 뽀뽀를 하고, 아직은 말이지만, 동생이 크면 자신의 장난감을 모두 주겠다고 말한다. 동생이 이쁘다. 동생을 사랑한다는 말도 엄청 자주 한다.


"이래서 기르나?"


 너무 많이 힘들지만. 그래서 최근 3달 동안 제일 많이 시킨 게 논알코올 맥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아이들이 너무 이쁘고 사랑스럽다. 그래서 이 아이들을 위해 내가 더 착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솔직히 단정할 수 없다. 내가 이 아이들과 삶을 살면서 또 얼마나 많은 고단함을 견뎌야 할지, 어쩌면 가끔 후회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르지만, 그런 순간에도 나는 분명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요즘 내가 퇴근을 하고, 급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아내가 정리를 하는 동안 내가 둘째를 안고 첫째에게 책을 읽어주는 경우가 많다. 그럼 둘째는 내 품에 안겨 있고, 첫째는 내 무릎에 앉아서 책을 본다. 나는 그 상황이 재미있어서 아내에게 말을 하고 한다.


"당신아 이것 봐."


"왜? 아빠가 원하던 삶 아니야?"


맞다. 힘들지만 바라던 삶이었고, 고단하지만 행복한 삶이다. 어느새 인간 박희종으로 살아가는 삶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아빠로 살아갈 삶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제곱으로 힘들지만 제곱으로 좋다. 우선 아직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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