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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Mar 26. 2024

육아는 오프로드다

4륜구동에 견인차도 필요하다.

주말에 날씨가 좋았다. 오랜만에 하늘도 맑고 날도 따뜻했고, 겨우내 감기를 달고 살던 아이들의 컨디션도 좋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들이를 가기 너무 좋은 타이밍이었다.


 우리는 나들이를 하기로 마음먹자, 마음이 급해졌다. 우선 감기 때문에 미뤄두었던 둘째의 예방접종을 맞히고, 나는 나들이를 위한 세팅에 들어갔다. 차에 아이들의 킥보드와 놀이 기구도 챙기고 간식과 물도 준비했다. 그런데 그런 준비를 하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밥시간이 되었고, 미역국에 밥을 말아 밥까지 먹이고 나니 1시 반이 넘었다.


원래 계획했던 동물원은 포기하고, 가까운 공원에서 모래놀이를 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그리고 우리는 가는 길에 간단한 간식과 음료를 사서 공원으로 갔다.


가는 길에 아이들은 차에서 장난감 때문에 두 번쯤 싸우고,

과자를 달라고 떼를 쓰고, 도착해서는 신나서 둘이 서로 뛰어다니고,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해서 안고 전력질주를 했는데, 문이 닫혀 있어서 다른 데로 또 뛰고, 모래를 먹기도 하고, 모래를 아빠머리에 뿌리기도 하고, 미끄럼틀에 머리를 부딪혀 상처가 생기고, 멈췄던 콧물이 다시 흐르고...


처음부터 아이들을 위한 나들이였지만, 우리가 먹기 위해 챙겨간 음식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아이들을 챙기느라 뛰어다니느라 우리의 기운은 점점 빠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요일에도 나들이를 나섰다. 근처에 있는 쇼핑몰에서 밥을 먹고, 첫째가 갖고 싶다던 액세서리를 사주고, 호수가 보이는 공원에서 산책도 하고 맛있는 차도 마셨다. 어제 외출의 후유증으로 이미 아침에 병원도 다녀왔지만, 다행히 그 전날보다 더 따뜻한 날씨덕에 애들은 점퍼를 벗고 신나게 뛰어놀았다.


"이거 엄마 아빠가 첫 데이트 때 먹은 음식이다."


쇼핑몰에서 시킨 순두부를  먹으며 아내가 말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지금 이 아이들이 없었다면 지금 이 나들이는 어땠을까? 아마 늦잠을 자고 일어나 나름 이쁜 옷들로 기분을 내고, 근사한 브런치 맛집에 갔을 것이고, 공원에서 산책도 하고 간단히 쇼핑도 하고 저녁에는 영화를 보거나 와인을 한잔 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지금의 분주함이 너무 고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들은 잘 놀다가도 우리에게 달려와 폭 안기며 웃었고, 우리가 데려가는 곳마다 신나서 방방 뛰었고, 밥과 간식, 커피숍에서 시켜준 딸기 요거트 음료를 먹을 때마다 맛있다고 춤을 췄다. 그리고 차에서는 동요를 따라 부르고, 이내 잠든 모습까지 우리의 심장을 수시로 공격했다.


"얘네가 없으면 나들이가 훨씬 근사 했겠지만, 이렇게 많이 웃었을까?"


아이들이 없는 삶은 세단을 타고 달리는 고속도로 같다. 나름의 위험과 위기도 있고, 모두 평안하지만은 않겠지만.

대체로 편안하고 무난한 삶이 이어진다. 그래서 창밖의 경치도 보고 휴게소에서 주전부리도 사 먹고, 좋아하는 음악도 흥얼거리는 좋은 시간들일 것이다. 그래서 실은 차가 꼭 4륜구동일 필요도, 엔진이 크거나 성능이 엄청 좋을 필요는 없다.


반면에 아이들이 있는 삶은 기본적으로 오프로드다. 길을 떠나기 전부터 준비할 것도 많고 걱정도 많은 여정. 아무리 준비해도 언제나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하고, 창밖의 풍경이나 음악을 들을 여유 따위는 없다. 차에서 먹는 간식도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주는 기쁨의 자극의 크기도 훨씬 진하고 깊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래서 오프로드는 4륜구동이어야 한다. 앞바퀴가 힘들면 뒷바퀴도 밀어줘야 하고, 그래도 구덩이에 빠진다면 다른 차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여정을 무사히 끝낼 수 있는 크고 튼튼한 엔진도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비상시에 매번 도움을 주시는 부모님들의 존재도) 우리는 이 여정을 선택했고 후회는 없다. 아니 이미 1000% 즐기고 있다. 그리고 온전히 이 여정을 누리기 위해서는 서로의 존재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남은 길이 얼마나 험난한 길일지도 몰라서 너무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언젠가 이 여정이 마무리하고 다시 우리만의 도로를 달리게 될 때, 그 모든 추억을 함께 나눌 사람이 꼭 필요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제 조금 더 서로를 돌보기로 했다. 앞바퀴가, 뒷바퀴가 잘 돌아가는지. 엔진에 무리가 가진 않는지. 서로를 아끼고 닦아가며 이 여정의 끝까지 함께 건강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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