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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욱이 Jul 14. 2023

여섯 달만의 상봉

22. 05. 19

6달 만에 상봉한 영실 (22. 05 19)


5월 중순쯤이 되면 한라산 1600고지까지는 털진달래가 분홍빛으로 물들때다. 그러나 요즘 기온이 막무가내라 가장 최신 정보를 찾아야 해택을 누릴 수 있는 권한을 잡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하루를 통째로 날려버릴 확률이 100% 이른다.


몇개의 포털 사이트에 “한라산 털진달래 만발 시기”를 적은 후 검색 버튼은 누른다. 아니나 다를까 정보가 줄 지어 몇 페이지를 빼곡이 채웠다. 컴퓨터를 집어삼킬만큼 내용을 파고 또 팠더니 금새 눈은 전자파로 인해 건조해져 피로가 쌓여갔다. 파헤치면 금이라도 나올까 싶었지만 풀밭에서 바늘 찾는 꼴이다. 과거지사일 뿐이다. 다른 어구를 사용해 찾았지만 묘연한 알고리즘은 같은 정보만 보여줬고, 30분이란 혈투에 투지마저 상실되어 갈때쯤 뉴스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한줄의 기사 글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소.’ 라며 기다리던 눈치다. 정보의 기다림에 지친 난 글을 읽기 시작했고, 기사의 요점은 1500고지를 시작으로 5월 17일 정도가 되면 털진달래꽃이 만개할 것이란 예상의 후문이다. 뉴스 기사를 전적으로 믿을 건 못되지만 심정은 섞은 동아줄이라도 잡아야 한다. 어쨋던 꺼져가던 일말의 희망이 다시 불끈 타올랐다. 제발 막무가내로 활게치는 기온이 평정을 찾기만 바란다.


山(뫼산)이란 녀석을 너무 오랜만에 찾았다. 한라산 영실을 올때면 넘어서야 할 2.5km의 구간이 이전과 달리 심장을 압박한다. 한라산을 만나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어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소심한 나로선 주변의 시선을 견딜 만한 용기가 없었다. 뉴스에서 떠드는 것으로 보아 벗어도 된디는 이유는 충븐했지만,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게 다반사다. 들숨날숨을 최대한 조절하며 시작이 반이라는 영실 입구를 향해 달렸다. 2.5km를 덩그러니 혼자이려나 했다. 의외로 버스에 탑승자가 다른날에 비해 절반도 되지 않는다. 아스팔트를 신나게 질주하는 자동차를 마주할뿐 고요한 정적만 흘렀다. 1km 쯤이었을까? 노란 셔츠를 입은 한사람이 저 멀리 뒤에서 걸오는 게 보였다. 반가움도 잠시 경쟁구도가 이워졌다. 절대 따라 잡혀서도, 거리가 좁아져도 용서가 되지 않았다. 느긋한 움직임은 여기서 끝내고 원래의 페이스로 돌아섰다. 숨은 좀 더 가팔라졌지만 예전의 정상궤도에 들어섰다. 1km, 750m, 200m… 10m가 될때까지 쫓아오는 자에게 희망고문을 던졌다.


6달만의 만난 영실은 낯선보단 되려 늘 찾아온 장소로 느껴졌다. 다시 만난 설렘과 무덤덤이 심장을 오락가락하였다. 콩닥콩닥 거릴듯하지만 차분한 심장박동은 왜 호들갑을 떠나며 평온하다.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오를 모든 계산은 끝났다. 쉬어야 할 곳, 속도를 늦춰야 할 곳, 풍경을 즐길 곳까지 빈틈없는 계획에 스스로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영실 소나무 숲을 지나 계곡도 지났다. 눈앞은 영실 코스에서 가장 난이도가 있는 가파른 구간. 크게 숨을 한번 들이쉬고 오르기에 앞서 다리 운동을 한다. 심장도 헐떡이겠지만 다리의 모든 근육이 쪼여오고 피맛이 느껴질 것이다. 헉헉되며 좁은 계단을 쉼없이 오른다. 단숨에 오르지 않고 잠시라도 멈춰 선다면 더 힘들 것이란 것을 알고 있다.


팔딱팔딱 튀어나올듯한 심장을 부여잡고 드디어 첫번째 쉬는 시간을 가질 때이다. 물론 광대한 풍경이 주는 달콤한 디저트는 덤이다. 그때였다. 한 남자가 인사를 건네온다.


“안녕하세요. 좀 전에 영실 매표소에서 걷던 분이죠.”


“네. 안녕하세요”


“따라 갈려고 했는데 엄청 빠르시더라구요. 따라가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잘난척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최고의 속도가 아니었다. 뒷따라 오는 사람을 향해 잡힐듯 말듯 거리를 조절하며 던지는 희망고문이었다.


“영실로 올라서 어디로 어디로 가시나요.”


“아~ 저는 털진달래꽃을 찍으려고 정상에서 한 참 머물다 다시 같은 곳으로 내려 오려구요”


“그러시군요. 저는 어리목으로 가려 하는데, 그럼 즐거운 산행 되세요.”


어림잡아 60을 갖 넘은 할아버지다. 아니 장년일까나?


구름없는 파란 하늘과 반대로 시야는 밝지 않다. 멀지만 보여야 할 산방산의 모습도 희뿌연 선만 드런났다. 그토록 애원하던 꽃을 본다면 절반은 성공이이다. 산능선 곳곳에 진분홍 꽃이 서서히 모습을 들어냈다. 기쁨도 잠시 활짝 펴여야 할 꽃이 아직 봉우리를 틀고 있다.


정상에서 마주할 털진달래꽃은 개화를 했을까? 불안함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가뿐해졌던 몸은 피로의 해일로 단숨에 지처갔다. 다음번이 있다고 치더라도 그땐 어떻게 될지 확신이 들어서지 않았다. 모든 걸 단판짓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인사도 말도 던지고 싶은 마음은 뒷전이 되고 오직 선작지왓의 진달래만이 눈에 밟혔다. 이미 산행의 즐거움은 저 깊은 마음속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남벽의 모습이 서서히 나타나고 의문에 휩싸인 털진달래의 모습이 홍채를 통해 마음으로 전해왔다.


못볼거란 걱정은 씻겨갔지만 또 하나의 아쉬움이 터져나왔다. 17일쯤 만개한다던 뉴스 기사는 정말 믿을 게 못된다. 능선의 시간과 다르게 고지대이지만 좀 더 따뜻했던 것일까? 만개에 앞서 점차 져가고 있는 모양이다. 털진달래에 쥐락펴락 심장이 꼼짝달삭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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