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07. 17
오랜만에 새벽같이 일어나 바삐 움직였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변할 줄 몰랐다. 버스에서 내려 배에 올랐다. 구름으로 가득찼던 하늘은 시간이 흐를수록 파란 얼굴을 드러냈다. 태양은 이글이글 끓고 하늘은 매말라갔다. 그 중에 바람은 어찌나 시원하게 불던지 땀이 나기도 전에 식어버렸다. 평화로운 걸음이 꿈을 꾸듯 생시같았다. 파도를 타고 날아온 바람이 시원하다지만 왠지 뜨거운 태양이 겁났다.
빨갛게 익은 피부는 벗겨지고 화상 2도의 중증까지 갈뻔한 제주와 아찔한 첫만남은 어쩌면 악연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가방에 챙겨온 선크림을 꺼내어 팔과 목 주위를 문질러가며 덕지덕지 바른다. 선크림의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먼저 두뇌가 안락해졌고 전장에서 천군만마를 얻는 것처럼 두려움과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발길은 산뜻해졌으며 가벼워짐이 느껴졌다. 거미줄 같은 함정에서 빠져나오자 몸 속 장기들이 시위가 이어졌다.
배가 고픈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생전 마르지 않든 목마저 건조해왔다. 하나의 문제 해결은 또 다른 문제로 태어났고 몸 구석구석 난동이 일어나기 직전이다. 떨어진 식량과 물로 홀쭐해진 가방의 속사정은 총체적 난관에 부딧쳤다. 슈퍼마켓은 아직 1시간의 거리로 입술은 말라버린 논바닥처럼 물기 하나 남아 있지 않고, 쩍쩍 갈라져 오는 게 느껴질 정도다. 그나마 목을 축여줄 것은 메마른 입안의 침을 끌어모아 혀와 식도를 달래는 일이 전부다. 얼마되지 않는 침으로 목마름은 해결되지않지만 어느정도의 목마름은 기름칠이 되었다.
악동뮤지션의 "사람이란 게" 의 노래 가사처럼 갈길이 바빴던 난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앞뒤로 바삐 움직여야 했다. 겨우 오름의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찰나,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고 있자니 하나의 욕심이 더 생겼다. 코앞의 성산 일출봉, 동쪽의 지붕이라 할 지미봉까지 섬속의 섬에서 바라보는 섬이 주는 새로운 감각이 자각되는 순간이다.
태양과 땀방울의 끈질긴 싸움의 중지를 위해 끼어든 바람도 불어왔지만, 지구에게 있어 가장 날벌레 같은 사람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혼자만의 공간속에 푸른 파도가 일렁이고 바람결에 풀이 춤을 춰도 외로움은 짜증을 일으킨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행복도 좋지만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할 한가지가 빠졌다. 자연과 조우도 어떨 땐 외롭다. 무심코 손에 든 카메라는 움직이는 피사체를 찾았고 속절없는 바람은 조용히 움직일뿐 주위의 모든 건 이미 움직이지 않는 현상된 사진이다.
우도봉의 정산 부근 등대가 바라보일때 쯤 "나타나라 나타나라" 주문을 외어본다. 지칠때도 지친 바람이다. 목도 타고 가슴도 타들어 간다. 그순간 모든 감각을 일깨우는 녀석이 나타났다. 바람보다 더 조용히 다가와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는 길이 40Cm, 폭 2cm의 혀를 낼름거리는 뱀이란 녀석의 출몰이다. 제주의 들판을 거닐던 그 흔한 말 조차 뜨거운 태양의 그림자에 손사레를 치며 몸을 숨겼다. 스스어떤이는 뱀을 보면 귀엽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뱀띠인 나조차 징그럽다.
'넌 아니야 뱀아! 뱀아' 원하는 녀석의 만남의 조우는 아니다.
뱀과 만남이 잦은 하루 하루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 걸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징조일까?
파충류 =< 사람, 아무리 머리를 굴러도 해답을 나오지 않는다. 그저 뱀띠라서 뱀이 이끌리는 것일까? 물음은 질문을 던지고 또다시, 질문은 물음을 만들었다.
나무 사이를 걷고 세계 미니 등대를 전시한 등대공원을 지나면 1906년 처음 붉은 밝힌 하얀 등대가 바라보인다. 2003년 12월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된 IT 기술을 접목한 회전식 등명기의 설치로 50km 밖에서도 바다를 나간 우도 주민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불을 밝힌다.
파충류인 뱀과 만남이 필요에 의한 것일지 모른다. 내가 뱀띠라서? 너희 말고 나처럼 사람이란 척주동물을 원하나 당장은 불가능하다. 완성의 이름보다 주위를 감싼 기운은 불완전한 미완성이 더욱 붉어졌다.
20. 7.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