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28코스 역주행 호산 버스터미널 -> 부안 삼거리
2022년 산불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월천리의 뒷산을 오르기에 앞서 난관에 봉착했다. 갑작스러운 월천교의 통행금지라는 푯말을 맞닥뜨렸다. 9월 2회차 해파랑길 활동에 그나마 공사로 마무리되었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한국의 길과 문화 즉, 해파랑길을 담당하는 분으로부터 일전에 우회하라는 요청으로 돌아갈까도 했다. 그런 말을 씹듯 안전모를 쓴 아저씨 한 분이 리본을 제거하는 나를 보며 한마디를 던진다. “왜 그걸 때어요.” 리본을 가리키는 말이다. “월천교로 갈 수 없어 우회하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곳으로 가는데 떼버리면 안 돼요.”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월천교는 앞에 있는 푯말을 보아선 절대 갈 수 없는 손짓이다. 무슨 말씀을 하는 거지?
아저씨의 왈 얼마 전 월천교 옆으로 가교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물론 대형 트럭은 운행할 수 없다. 보행과 자가용 정도뿐이다.
산불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숲은 다시 심어 놓은 어린나무를 품고 키우듯 퉁명스럽지만, 아저씨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엉망진창이 될 뻔한 28코스의 길이 다행히 안전지대로 돌아섰다. 4km 정도의 우회 길을 뚫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10km의 짧은 해파랑길 28코스라지만 혼돈 속에 빠지고 말았을 것이다.
나무가 사라지고 숲은 풀숲으로 변했다. 그러나 지금은 숲 조성으로 길도 넓히고 풀도 모두 사라졌다. 길을 걸으며 자연의 소중함을 한번 더 느낀다.
숲길을 빠져나와 아스팔트 도로를 만난다. 강원도 삼척에서 경북 울진으로 넘어가는 구간. 아스팔트 도로는 28코스가 끝나는 시점까지 이어진다. 지루하지만 편안한 길이 될수도 있다.
도화동산. 나곡리의 아름다운 석호 해변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28코스의 시작점인 부구 삼거리에 닿는다. 그러고 보니 28코스에는 아픔과 아름다움뿐이 아닌 교훈도 녹아있다.
해파랑길 29코스. 호산 버스터미널 -> 용화레일바이크역
호산 터미널 앞 호산교를 지나 해파랑길 29코스 원래 코스로 발길을 돌렸지만, 공사 중. 1년째 공사 중이라니 해파랑길 1회차 점검 시점부터 난관봉착이다. 우회 길로 돌아가는 길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원덕읍을 뱅뱅 돌아야 한다. 읍내도 구경하고, 당장은 들릴 수는 없지만 맛집도 눈여겨 봐둔다는 의미에 돌아가게 되더라도 좋게 좋게 마음을 다진다.
읍내를 빠져나와 황량한 아스팔트 도로가 시작되고 몇 시간을 혼자 보낸다. 외적으로 짙게 물든 가을 풍경이 같이 놀아주지만 오로지 안전과 오늘의 숙제를 위해 해파랑길 코스 점검에만 몰두. 오로지 가을을 맞이 할 수 없는 아쉬움이 다음을 기약하게 만든다.
아스팔트 도로 위의 나 자신과 싸움은 시끌벅적 원덕읍 임원항에 들어서서 숨을 돌린다. 편의점이 유혹하는 사이 항구 옆 너른 공터에 주차된 관광버스에서는 사람이 물밀듯 쏟아져 나온다. 외로움과 사투중인 나와는 엄연하게 다른 그림을 그린다. 돌다리 건너 밀집한 횟집이 목적인듯 아무런 의구심도 없는 표정을 지은 채 바삐 이동에 몸을 맡겼다. 어떤 음식을 먹을까? 동해니까. 곰치탕, 물회, 회덮밥, 매운탕 등도 좋지만 뭐니뭐니 해도 총총 썰어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회가 최고이지 않을까. 상상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여버린다.. 그것도 잠시 사람 냄새를 듬뿍 마시고 다시 숨죽인 듯 고요한 들판의 풍경을 마주한다. 봄이었다면 임원천의 산책로 29코스의 벚꽃이 마중을 나왔겠지만,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의 붉게 물든 가로수에 눈이 멀고 만다. 그에 덩달아 높은 산 능선에는 아름다운 불꽃이 인다. 부러웠던 여행자들의 모임은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났다. 누구에게나 허락된 자연이 내어준 선물은 힘듦을 잊고 낭만을 선사한다. 29코스의 대부분은 아스팔트 도로로 이어져 있지만, 간혹 만나는 매력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기 여기에 있다.
해파랑길 30~31코스. 용화바일레이크 – 궁촌바일레이크 – 맹방해변까지 (총 거리 17km)
용화레일바이크 역에서부터 시작되는 30코스의 시작으로 맹방 해변이 기다리는 31코스까지를 마무리하는 하루다. 두 개의 코스를 합쳐서 17km 정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마저도 체력이 뒷받침해줘야 한다. 하지만 시작의 발길이 가볍지만 않다. 처음부터 시작되는 검게 거슬린 듯한 아스팔트 도로가 녹록하지 않아서다. 30코스의 끝, 초곡리 용굴 촛대바위가 있는 초곡항까지의 무한의 아스팔트로 빨려 들어간다. 때론 스마트폰에서 흘러 나오는 노랫 소리에 장단을 맞추어 아무 대꾸 없는 아스팔트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초곡항을 지나선 바다를 감상하며 갈 수 있다는 것에 미소가 번진다. 초곡리 앞바다에 펼쳐진 비경, 좁은 골목 언덕 한쪽에 핀 꽃. 지루함을 달래줄 마지막 종점의 피날레를 선사해준다.
아름다움을 보는 것도 좋지만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걷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코스로 딱이다.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는 순간을 맛본다.
궁촌 레일바이크역에서 다시 시작되는 해파랑길 31코스는 새로움이기 이전에 도전이다. 비록 짧지만 두 개의 코스를 걷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나의 두뇌는 그렇게 여기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성취감이 뿜어져 나온다. 30코스에서 아스팔트 도로에 몸을 맡겼다면, 해파랑길 31코스는 마읍천을 따라 농로로 이어진 고즈넉한 농촌을 느낄 수 있다.
동막교를 지나면 마읍천과 함께 걷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읍천과 짝꿍이 돼버린다. 31코스를 걷기 시작한 후 약 5km 지점에 다다르면 가을도 겨울도 아닌 이른 봄을 찾은 듯싶다. “음메~” 우는 소들이 있고 그 옆으로 청초한 푸른 밭이 펼쳐진다. 추운 겨울이 다가옴에 있어 더욱더 믿을 수 없는 경관을 보여준다.
11월 늦가을의 들판은 수확이란 단어에 텅 비었고, 짙어가는 가을에 낭만만 더욱 커 간다. 어쩌면 이 시간만큼은 시인도 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30코스와 360도로 색다른 공간의 길. 들판위에선 누구 하나 만날 수 없었지만, 따스함이 전해져 오는 건 따스한 여유에서 베어나온다.
여기까지 서툰 나의 2024년 해파랑길 28~31코스의 짧은 여행이었습니다.
2024년은 이른 여름에 유독 많이 더웠습니다. 그로 인해 땀도 한 바가지 흘렀어요.
해파랑길 걸으면서 끝없이 이어진 아스팔트 도로 때문에 짜증도 많이 났지만, 한편으로는 생각을 정리하고 삶의 여유라는 단어를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
혼자라서? 가끔 길을 지나가며 던지는 인사 한마디가 그렇게 반가울 수 있을까요? 혼자가 아닌 동행과 늘 다니셨다면 꼭 홀로 걸어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해파랑길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그 길 위에 늘 불타고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