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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로 Mar 20. 2022

대바늘로 만든 리본

Augustins No.22

실과 바늘로 못 만드는 것은 없다.


옷이면 옷, 가방이면 가방, 한 분야만 진득하게 판 끝에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책을 내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그럴 만한 위인은 아니다. 대바늘로 가디건을 만들었으면 다음에는 코바늘을 잡고 가방을 떠야 한다. 동물 인형도 깔짝, 양말도 깔짝. 붕어빵처럼 왜 뜨는지 모를 아이템을 뜨기도 한다.


고양이 인형 앞에 두면 무척이나 귀엽다. 쓸모는 그걸로 끝.


그러다 보니 100m 밖에서 봐도 ‘아, 그 사람 작품!’ 할 정도로 세계관이 뚜렷한 디자이너를 좋아한다. 덴마크의 니트 디자이너 Augustins도 그중 한 사람이다. Augustins의 디자인은 딱 세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모헤어, 드레이프, 러플.


그런 옷을 좋아하다 보니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기만 해도 행복해진다. 하지만 만들 엄두는 나지 않았다. 드레이프와 퍼프 소매를 넣다 보면 콧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힘들게 완성해도 쑥쓰러워서 몇 번 못 입고 옷장 안에 처박아 둘 것 같았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 신작 소식이 올라왔다. ‘Augustins No.22’ 그런데 옷이 아니라 리본이다. 큼직하지만 모헤어를 합사해 하늘하늘한 느낌이 들어 부담이 덜하다. 리본 하나에서도 자기만의 스타일이 드러난다.


사실 크고 눈에 띄는 헤어 액세서리를 좋아한다. 귀걸이나 목걸이를 즐기지 않는데, 그 반대급부인 걸까. 나는 요란하다거나 눈에 띈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대학교 때 친구들이 “너 하고 다니던 왕리본 요즘 유행하더라.” 하는 걸 보면 나만 그렇게 여긴 모양이다.


원작은 가는 메리노 울과 모헤어를 합사해 유연하면서도 보송보송한 느낌이 특징이다. 집에 인형을 만든답시고 색깔별로 면사를 사 놨는데, 굵기가 딱 맞았다. 모헤어는 굳이 새로 살 필요가 없었다. 모헤어는 무게에 비해 길이가 길어 소요량을 가늠하기 힘들다. 어떤 때는 사용한 양보다 훨씬 많이 남았다. 그런 모헤어를 처리하기에 안성맞춤인 도안이다.



완성 사진만 봐서는 어떻게 만든 건지 감이 안 잡혔는데, 도안을 보니 이해되었다. 원리만 알면 시작 콧수나 코줄임 횟수를 자유롭게 가감해 리본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이니 만큼 이번에는 도안을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200여 코로 시작하다 보니 꼬리실 길이를 정하는 것부터 문제였다. 너무 짧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고, 너무 길면 실이 아깝다. 게다가 코를 세다 보면 자꾸 숫자를 헷갈려(20코마다 콧수링을 걸긴 하지만) 코 잡는 과정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딥 러닝으로 코를 인식해서 몇 코인지 세어주는 앱이 있으면 좋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무지막지하게 긴 꼬리실이, 그것도 잔뜩 엉킨 채 남았다. 하지만 코만 잡고 나면 어렵지 않다. 겉뜨기로 원통뜨기를 되풀이하다 마커가 나타날 때마다 코를 줄이면 된다.



도안에 나오는 대로 모양을 잡아 남는 실로 중간을 묶어주면 리본 완성. 원래는 고무줄을 고정하지만, 8mm짜리 자동 핀대를 주문해 집에 있던 글루건으로 붙였다.



면사를 써서 그런지 한들한들한 느낌은 떨어지지만, 리본 모양이 잘 잡힌다. 모헤어만 두세 겹 잡고 만들어도 코지한 느낌이 들어 괜찮겠다. 집에 애매하게 남는 실이 많은데, 다음에는 갈색 링구사를 써서 좀 더 작게 만들어 볼 계획이다.




실: 헤라코튼 227 + 니팅뜨데이 키드모헤어 애프리콧

바늘: 대바늘 4.0mm

무게: 36g

도안: Augustins No.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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