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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로 Oct 06. 2022

모티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나

모티브로 만든 여름용 버킷햇

지난 겨울, 지지햇 막차에 올라탔다. 그냥 막차도 아니다. 시동을 걸고 떠나려는 열차에 대롱대롱 매달리다시피 했다. 하지만 링구사로 뜬 모자로 사계절을 보낼 수는 없는 법. 여름이 다가오니 면사로 뜬 모자를 쓰고 싶어졌다. 그러던 차에 눈에 띈 것이 야닝야닝 님의 여름용 데이지 버킷햇 영상. 하관이 두드러지는 편이라 챙이 좁은 모자는 피해 왔는데, 그런 나조차 혹할 만한 디자인이었다.


직접 색 배합을 해도 좋겠지만, 그래픽으로 만든 배색 예시 중에서 민트초코를 떠올리게 하는 애쉬민트+아이보리+카퍼브라운을 선택했다.


티슈 케이스 커버를 뜨는 사이 택배는 도착하고, 패키지를 앞에 둔 나는 한참이나 마음을 가다듬었다.



모티브 16장을 뜨는 여정은 충분히 그럴 만하니까(…)




도안에서 발견했을 때 슬그머니 뒷걸음질 치는 단어가 세 가지 있다. 모티브편물 잇기덧수 놓기다. 실 정리도 만만치 않게 번거롭지만 1kg짜리 콘사로 옷을 떠도 처음과 끝, 두 군데는 실 정리가 필요하다 보니 반쯤 체념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닌 모양인지 SNS를 돌아다니다 보면 실 정리만 남겨 놓고 문어발을 늘리는 니터나 편물 잇기가 귀찮아 탑다운만 뜬다는 니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뜨개가 익숙해지면 실을 사용하는 다른 공예로 슬그머니 눈길이 간다. 그간 쌓아 놓은 것이 있으니 금방 숙련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을 테지만, 다른 공예를 배워 두면 뜨개질에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마크라메, 펀치니들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바느질(미싱)이나 자수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뜨개질이 면을 만든다면 바느질은 만들어진 면과 면을 선으로 잇고, 자수는 만들어진 면에 무수한 점을 찍는다. 몸통과 소매를 따로 떠서 잇는 바텀업 방식은 뜨개질과 바느질의 결합이다. 다이아몬드 무늬로 뜬 편물에 사선으로 덧수를 놓는 아가일 패턴은 뜨개질과 자수의 결합이다. 바느질과 자수 모두 각각 놓고 보면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어엿한 취미지만 뜨개질과 만나는 순간 뜨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이 된다.


우회로가 존재하는 것도 문제다. 바텀업 대신 탑다운 방식으로 뜨면 편물을 잇지 않아도 된다. (물론 초보에게는 코줍기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지만) 덧수도 배색 뜨기로 처리하면 두 번 수고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서버실을 방불케 하는 뒷면을 감당해야겠지만)


그러고 보니 편물 잇기와 덧수 놓기와 실 정리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돗바늘이다. 다 끝났다 싶은 마음에 젖어 있을 때면 돗바늘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서서 ‘아닌데?’ 하고 핀잔을 준다. 게다가 돗바늘은 니터의 수집욕을 자극하지도 못한다. 대바늘과 코바늘은 길이나 색깔, 케이블의 부드러운 정도, 파우치 디자인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지만 돗바늘은 사은품으로 끼워 주는 손가락 만한 은색 기본형이면 그만이다. 물론 팁이 구부러져 있거나 코 부분이 고리 형태로 된 것도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개량 수준이다. 어떻게 하면 돗바늘을 기꺼워할 수 있을까. 단수링은 아기자기한 오너먼트를 달아서 꾸미기도 하던데, 좋아하는 색깔 돗바늘을 사면 실을 정리하는 시간도 조금은 즐거워지려나.





모티브 16장을 다 뜨고 나면 빼뜨기로 이어 준다. 잇기 전에는 한 마리 해파리를 보는 듯하다.



마지막으로는 코를 주워서 세 단을 더 뜬다. 맨 마지막 단은 배색실로 뜨면 되는데, 정해진 색이 없다 보니 아이보리와 카퍼브라운 중에서 한참 고민했다. 민트초코라는 원래 계획을 살리기 위해 카퍼브라운을 선택.



버킷햇을 만들면서 모티브 뜨기와 연결에 자신감이 붙었다. 지금의 나라면 도전해도 되지 않을까. 나는 잡지 <케이토다마>에서 보고는 마음에만 담아 둔 여름 블랭킷을 떠올렸다. 심지어 단색 블랭킷이라 실 정리 걱정도 훨씬 덜하다.



121장… 이라고요?




실: 코튼필드 애쉬민트, 아이보리, 카퍼브라운

바늘: 코바늘 6호

도안: 야닝야닝 여름용 데이지 버킷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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