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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로 Sep 22. 2023

1년 전에서 온 편지

느린우체통에 넣은 편지가 도착했다

우편함 앞을 지나다 말고 K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확히는 웃음과 탄성의 중간쯤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되돌아간 내게 K는 엽서를 닮은 편지를 내밀었다.



“벌써 1년이 지났다고?”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기억이 또렷이 되살아났다. 10년 넘게 면허증을 신분증으로만 쓰던 K는 지난해 자차를 장만하면서 본격적으로 운전대를 잡기 시작했다. 그 전에 여섯 시간에 걸쳐 운전 연수도 받았다. 우리가 향한 곳은 초보 운전의 성지인 영종도. 초보 운전인 K와 무면허인 나는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놓고 이 길이 맞나 저 길이 맞나 머리를 싸매고, 자리가 없어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현실을 애써 부정했다. 차창 양쪽으로 펼쳐진 바다를 즐길 여유 따위는 없었다.


오래 운전하기가 힘들었던 우리는 영종도 휴게소에 들렀다. 영종도 휴게소의 명물인 거대한 곰 조형물과 사진을 찍기에는 햇빛이 너무 밝아 강화순무국밥을 먹고 느린우체통에 넣을 편지를 (나만) 썼다.



“2023년의 너와 나는 운전이 늘었으려나?”


이 구절을 보자 기분이 복잡해졌다. K는 수많은 장거리 운전을 거치면서 운전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요즘은 초보운전 스티커도 붙이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은 여전히 둘이서 봐야 하지만) 나는 저 편지를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면허를 땄다. 필기와 실기 모두 한 번에 합격했지만, 실제 도로 주행은 또 다른 문제라 애꿎은 운전자보험료만 허비했다.


편지에 쓴 대로 2022년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혼인신고를 하고 ‘내 집’을 마련하고 리모델링을 위해 부지런히 손품을 팔았다. 개인적으로는 첫 번역을 맡고 첫 책이 세상에 나왔다.


그렇다고 해서 올해가 한가한 것은 또 아니다. 결혼식이 남았기 때문이다. 큰 산이었던 스튜디오 촬영을 마치고 종이 청첩장도 만들었다. 하지만 모바일 청첩장 만들기, 식전 영상 만들기, 식순 정하기, 드레스 가봉 등… 큰 산을 넘었다고는 해도 결혼식 전날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내년에는 또 다른 일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내후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11월에는 내가 모는 차를 타고 다시 한 번 영종도로 가려고 한다. 이번에도 영종도 휴게소에 들러 강화순무국밥을 먹고 K가 커피를 사는 동안 2024년 나름의 일로 바삐 돌아다닐 우리를 위해 편지를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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