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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로 Mar 15. 2024

전국노래자랑 예심 참가 후기

노래 잘하는 사람 여기 다 모였네

인천 서구편 전국노래자랑 예심에 참가했습니다. ‘전국노래자랑 예심’으로 검색해서 들어오신 분이라면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보다 합격 요령이 더 궁금하실 테니 간단하게 세 줄 요약 들어가겠습니다.


1. 1절만 봅니다. 즉 2절에서 터지는 노래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2. 막걸리 한 잔… 제발 그만….
3. 실력자 티오는 몇 자리 안 됩니다. 노래 말고 다른 장기가 있다면 그 장기를 무조건 살리고, 없다면 예심 자체를 즐기는 마음으로 참가합시다. 우리 동네에서 난다 긴다 하는 재주꾼들을 한자리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경험입니다!
4. 2차 예심에서 떨어진 제게서 합격 요령을 바란다고요…?


네 줄 요약이 되어 버렸군요.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노래 좀 부른다 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나가 봤으면 합니다. 성인이 되고 나면 무대에 오를 일도, 방송용 마이크를 써 볼 일도 좀처럼 없으니까요. 2차 예심에서 떨어졌지만 오히려 노래에 대한 열정이 타오르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2022년은 리모델링, 2023년은 결혼식. 어쩌다 보니 매년 대형 프로젝트를 하나씩 치르고 있습니다. 2024년의 대형 프로젝트는 ‘전국노래자랑 도전’. 당초 계획은 보컬 레슨을 받으면서 우리 동네 촬영을 기다리는 것이었는데, 너무 일찍 오고 말았습니다. 나고 자란 곳인 김해나 외갓집이 있는 정읍도 참가해 볼 만하지만 정읍편은 불과 한 달 전에 방영해서 이판사판이라는 마음으로 인천 서구편에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참가 신청 방법은 방문 접수(행정복지센터)와 이메일 접수 두 가지입니다. 담당 직원과 얼굴을 마주하고 신청서를 제출할 용기는 없어서 이메일로 접수했는데 사나흘 뒤에 무사히 확인 메일과 안내 문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방문 접수와 비교했을 때 디메리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선착순이라고는 하지만 당일 현장 접수도 가능하니까 너무 조바심 낼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예심은 1시부터 시작이지만 가나다 순서대로 진행된다고 해서 송 씨인 저는 느긋하게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출발 직전에 신청자가 600팀이 넘어서 둘로 나누어 진행한다는 문자가 도착하네요? 운 나쁘면 차례를 놓쳐서 맨 뒤로 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다행히(?) 230번대여서 차례 놓칠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참가 자체에 의의를 두고 간 터라 다른 분들의 무대를 보면서 노래 실력에 감탄하거나 아는 노래가 나오면 속으로 따라 부르면서 현장 자체를 즐겼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회사에서 직장 동료들과 노래방 회식을 간 기분이었습니다. 탬버린을 치면서 내가 예약한 노래는 언제쯤 나올까 기다리는 거죠(노래방 회식 좋아하는 편).


그렇다고는 해도 제 차례가 다가오니 긴장감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게 태어나서 열 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처음이었거든요. 무대 경험은 유치원 학예회 때가 마지막이고요.


당연히 1차 예심을 통과할 거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고, 무대 위에서 얼어붙거나 가사를 까먹지만 않으면 성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청서에 쓴 노래는 혜은이의 ‘제3한강교’김건모의 ‘첫인상’. 무대를 넓게 쓴답시고 썼는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는지 심사하시는 분이 좀 더 동작을 곁들이라고 하셔서 부랴부랴 퍼덕거린 것만 기억에 남네요. 그래서 2차에서 다시 보자고 했을 때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곡 덕을 본 것 같은 게, (전국노래자랑에서) 오랜만에 듣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예심이 목요일, 녹화가 토요일이니까 새로운 곡을 연습할 시간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100점짜리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게 새로운 노래를 시키기’에는 리스크가 있습니다. 대신 ‘80점짜리 노래를 부르지만 선곡이 좋은 사람’을 무대에 올리는 쪽이 안정적이지요.


무대가 처음이라 시선 처리고 뭐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는데 관객석을 쭉 둘러보니 맨 앞에 앉은 여자 분께서 (제3한강교라는 노래를 좋아하셨던 모양인지) 박수를 쳐 주셔서 정신줄 붙잡고 그 분만을 위한 팬 서비스 느낌으로 이런저런 모션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헤헤). 가수들이 무대에서 힘을 얻어 간다고 하는 말도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1차 예심이 끝난 뒤 30분 정도 정비 시간을 갖고 2차 예심이 시작되었습니다. 오후 6시쯤 시작했던 것 같네요. 저녁 식사는 눈치껏 알아서 해결해야 합니다. 1차 예심을 통과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서 매점에서 양갱 하나를 사다가 물과 함께 먹었습니다.


무반주로 이루어지는 1차 예심과 달리 2차 예심에서는 MR에 맞춰 노래합니다. 더 쉬울 것 같지만 노래방 자막이 없다 보니 첫 소절 들어가기가 까다롭더라고요. 다행히 첫 소절은 놓치지 않았지만 ‘무대’라는 것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동작은 뚝딱거리고 노래는 불안해졌습니다(첫 소절을 놓치더라도 기회는 충분히 주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신청서에 적은 개인기를 아무도 언급하지 않아서 ‘여기까지구나’ 싶었습니다.


편안한 마음(과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몸)으로 다른 분들의 무대를 감상했습니다. 다들 어찌나 노래를 잘하던지 이 사람도 붙을 거 같고, 저 사람도 붙을 거 같고… 나중에는 제가 떨어지지 않는 쪽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2차 예심 결과는 모든 무대가 끝난 뒤 회의를 거쳐 발표되었습니다.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제목을 듣자마자 ‘아, 그 사람!’ 싶었던 분이 여럿 있었던 걸 보면 뽑힐 만한 사람이 뽑히지 않았나 싶네요. 기억에 강하게 남은 참가자는 서너 분 정도였는데 한 분은 ‘방영하고 나면 무조건 뜬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K군에게 그 분 이야기를 한참 했네요.


2차 예심은 11시를 훌쩍 넘겨서 끝났습니다. 정오부터 12시간 동안 양갱 하나랑 물 두 병으로 버텼네요. 노래 실력에 자신 있는 분은 간단한 주전부리라도 꼭 챙겨 가시길. 대기하다가 노래 두 곡 부르는 것만 해도 이렇게 힘든데 600명 넘는 사람들의 노래를 듣고 피드백하는 제작진은 진짜(…)


예심 분위기가 궁금하다면 유튜브 ‘KBS Entertain’ 채널에 올라온 ‘1차 예심 현장 라이브’ 영상이 도움 될 듯합니다. 네 달 전부터는 올라오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예심을 볼 때도 카메라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심 현장 라이브를 통으로 보고 나면 세 줄 요약 2번 항목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지도(…)




예심을 일주일 남겨 두고 참가 사실을 가족 단톡방에 알렸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습니다. ‘네가? 노래를? 언제부터?’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게 어머니 앞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15년 넘게 노래연습장을 운영했는데 말이죠.


지하 특유의 축축한 공기, 잊을 만하면 칙 소리를 내며 라벤더 향을 풍기는 방향제, 디시디아처럼 줄기를 이리저리 뻗은 채 빙글빙글 돌아가던 조명, 아무도 찾지 않아 내 몫으로 떨어지던 실론티, 누군가 음료수를 흘리는 바람에 책장이 쩍쩍 소리를 내며 떨어지던 노래방 책자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어릴 때는 막연히 ‘노래를 좋아하니까 노래연습장을 하셨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가 노래방을, 노래하는 걸 싫어한다는 사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알았습니다.


어머니가 싫어하는 일을 꿋꿋이 해 오신 덕분에 지금의 저는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혜은이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가수였습니다(어머니의 덕질 에피소드를 듣고 저와 제 동생이 덕후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어머니는 ‘당신은 모르실거야’를 신청하셨지만 제 톤과는 맞지 않아 ‘제3한강교’를 밀어붙였습니다(답정너).


코인노래방에서 부른 다음 영상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드렸더니 며칠간 반응이 없기에 ‘별론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이모에게 자랑하셨더라고요. 다른 노래도 불러달라고 하시는 걸 보고 ‘예심에서 떨어졌지만 참가하기를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기회라도 없으면 언제 어머니에게 노래를 녹음해서 들려드리겠어요:) 전국노래자랑은 이렇게 매주 방송에 나가든 나가지 못하든 수많은 사람에게 수많은 추억을 안겨주며 명맥을 이어 온 것 아닐까요.


그치만 엄마, 유튜브에 올리는 건 참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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