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경찰의 재난현장 대응일지 - 눈이 배웅해준 길
2021년 1월 25일 월요일
K형에게 당장 오늘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일전에 지원했던 기관에 합격하여 내일부터 출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직하려는 사유는 충분히 알고 있었으나,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가슴이 먹먹했다. 단순한 한 달이 아니라 고락을 함께했기에 깊게 의지했던 사이다.
정든 사람과 더는 같이 일하지 못하고 떠나보낸다는 것은 언제나 섭섭하다. 차라리 나와 사이가 좋지 않거나, 직종에 환멸을 느껴 떠나는 것이라면 침이라도 뱉어주련만. K형도 고민 끝에 부득이 옮기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아 더 씁쓸했다. 형이 그만두는 이유가 호봉산정에 대한 불합리뿐이랴. 아무리 앉아서 근무할 수 있고 난로가 생겼다 해도 공무원도 민간인도 아닌 이중적 신분에서 재난 현장에 배치된 사람이 겪는 고충. 그것은 경험해본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공감할 수 없는 문제라 낱낱이 일기에 적지 않을 뿐이다.
사직서를 제출하기 위해 K형이 시청에 간 사이에 진료소에는 눈이 내렸다. 펑펑 내리는 그 눈은 K형을 붙잡는 걸까 배웅해주는 걸까.
말없이 진료소에 쌓인 눈을 쓸어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계속 비질을 했다. 청원경찰은 배치받은 기관의 인명과 시설을 지키는 사람이다. 모든 사고와 범죄에 대해 예방의 책임이 있는 경찰이다. 눈도 마찬가지다. 눈 때문에 누군가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또 눈 때문에 질서가 혼잡해지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 떠난 사람은 떠난 사람이고 불만은 불만이다. 열악한 처우는 건의와 제도개선으로 해결할 문제지, 그것 때문에 내 직무를 소홀히 해도 된다고 정당화한 적은 없었다.
먹고사는 문제가 철학보다 급한 세상에 거창하게 사명감이 있다고는 자신할 수 없다. 만약 나도 나이가 많고 책임질 가족이 있었다면 이 일을 그만두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단 남기로 한 이상 내 본분은 시민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적어도 봉급을 받는 동안은 관청을 찾아오는 민원인들과 그들을 상대하는 직원들이 다치지 않도록 경계하고 대응하는 것이 나의 직무다.
출입구의 문은 적절하게 열려있는지, 사람들의 발에 걸리는 것은 없는지, 동선이 꼬일만한 배치가 있는지, 질서가 혼잡할 만한 구조물이 있는지, 개선할만한 안내 문구나 수신호가 있는지, 보건소의 행정이 민원인들을 불편하게 할만한 것들이 있는지, 나의 안내를 받지 못해 밖에서 서성이는 사람은 없는지, 다리가 불편한 사람에게 내어줄 의자가 있는지, 에탄올 소독을 할 때인지, 화를 내는 사람이 직원에게 손을 대는지, 누군가 새치기를 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나는 믿는다. 비록 서로 사소한 오해들이 생길지언정, 떠나지 않고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든 직원이 같은 마음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는 그 마음을 누군가가 이어받아 세상에 도움 줄 것을. 우리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더 나아질 거라는 것을.
쌓인 눈을 쓸어내며 불만과 걱정들도 함께 빗자루로 쓸어냈다. 그것으로 K형을 그리워하는 마음마저 쓸어내지는 못하겠지만, 그가 가는 곳에 언제나 평화와 번창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며 한없이 비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