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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스 Jul 02. 2021

코로나와 싸운다 (12) - 바깥은 지옥이야

청원경찰의 재난현장 대응일지 - 바깥은 지옥이야

2021년 2월 5일 금요일


2월부터는 기존 근무방식보다 처우가 많이 개선되었다. 평일에 종일 투입했던 근무를 오전조와 오후조로 나누어 교대근무한다. 주말근무는 오전과 오후에 각각 투입되었던 두 개 조를 3시간으로 합쳐서 한 개 조만 투입시킨다. 즉, 주말 근무 횟수가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새로 채용한 직원들과 파견된 경찰의 지원 덕분이다.     


그래서 오늘은 오전 근무만 하고 오후에 시청을 갔다. 공직자 나라사랑 헌혈운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접촉을 꺼리고 헌혈하는 인원이 감소하는 바람에, 수혈에 쓰일 피가 부족하단다. 그래서 공무원들에게 헌혈을 장려하기 위해 시청에 직접 헌혈버스를 보낸 것이다. 헌혈을 하면 반나절의 휴가를 준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헌혈 베드에 누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동안 너무 불평만 한 게 아닌가 싶었다. 현재의 근무 여건이 나쁘긴 해도 처우는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초과근무를 하면 수당이 보장되고, 이제는 휴식시간도 보장된다. 휴가도 정해진 일수를 모두 쓰는데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이렇게 봉사나 헌혈을 하는 것마저 대가를 받는다. 세상에서 무언가를 한만큼 정확하게 셈하여 돌려받을 수 있는 직업이 얼마나 있을까.     


“기념품은 뭘 선택하시겠어요?”     


직원이 기념품 선택 메뉴를 보여준다. 특이한 메뉴가 있었는데 ‘기부’였다. 기부를 선택하면 기념품을 받는 대신 걸식아동들에게 3500원의 기부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잠깐 망설였지만 나 먹고살기도 힘들다며 애써 외면했다. 나는 먹는 게 남는 거라고 맥도널드 세트교환권을 골랐다.     


“오늘 담당 주무관님이 휴가라고 하셔서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헌혈이 끝나고 여유가 생겨 시청을 돌아보는데, 어떤 회사원이 전화로 무언가 얘기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영업해야 하는 담당 공무원을 만나지 못해 그 결과를 상사에게 보고하는 내용 같았다. 타이밍을 보아하니 담당 공무원도 헌혈 후 휴가를 받아 조기 퇴근한 것이리라.     


회사에서 근무할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회사와 관련한 사업예산을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계약을 따내려고 영업하거나 입찰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부지런히 공공기관을 돌아다녔던 적이 있다. 대부분은 거절이었고 그 거절을 상사에게 어떻게 보고해야 하나 고민하는 것이 일상적인 하루였다.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11시에 퇴근하는 것도 당연했지만 초과근무 수당 같은 것도, 1년을 버텼다는 이유로 연봉이 올라가는 일조차도 없었다.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애초에 저런 일이 싫어서 직장을 그만뒀고, 지금의 일을 얻기 위해 공부, 운동, 면접준비를 하여 2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지금의 직업을 얻었다. 회사원들은 회사를 선택한 것이고, 나는 내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럼에도 저 사람에게 빚진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왜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빚진 기분을 느껴야 하는지 반감도 동시에 들었다. 결국 저 사람이 겪어보지 못한 힘듦을 나는 겪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아무리 변명을 해도 어떤 부끄러움이 느껴졌고 그 이유가 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었다.     


오늘은 K형이 떠날 때처럼 눈 대신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지만 자꾸 형이 생각났다. K형이 떠나기 전에 지금처럼 근무형태가 교대조로 바뀌고 헌혈휴가도 받았다면 그는 떠나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전화기를 붙들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회사원과 헌혈 후 바로 퇴근하는 공무원이 뇌리에 계속 떠올라 혼란스러운 와중에 헌혈버스 입구에 서 있는 K형의 모습을 보았다. 물론 헛것을 봤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다시 헌혈버스에 올라선, 무슨 일이냐고 묻는 직원에게 말했다.     


“기념품 받는 대신 기부를 할게요.”     


아마도 살면서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사명과 의무를 져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영원히 회피하지는 못할 것이다. 매일 고민하고 항상 질문하겠지. 정답보다 오답을 선택하는 날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또 생각할 거다. 내가 사회에 갚아야 할 빚은 무엇인지. 공정함이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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