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경찰의 재난현장 대응일지 - 안 되는게 어딨어
2021년 2월 22일 월요일
“다른 곳은 다 해주는데 왜 여긴 안돼요?”
진료소가 소란스러워 둘러보았더니, 민원인이 검체요원에게 따지고 있었다. 말투가 점점 무례해지고 행동이 험악해져서 내가 막아서면서 얘기했다.
“질문이나 건의사항이 있으면 저에게 말씀해주세요.”
“저는 음성판정받았다는 확인서가 필요해요.”
“결과는 내일 핸드폰 문자로 발송됩니다.”
“종이로 된 확인서가 필요하다고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xx시 진료소는 해주는데 왜 여기선 안 된다는 거죠?”
“그게 정 필요하시면 방금 말씀하신 xx시 진료소로 가세요.”
민원인은 별수 없이 돌아갔다. 그가 따지고 들었던 검체요원은 키가 작고 나이드신 선생님이었다. 그것이 괘씸해서 나도 조금은 무례하고 위협적으로 굴었다. 그들은 안되는 것을 요구할 때 상대를 봐가며 화를 내고 따진다. 물론 개중에 내가 생각해도 억울할만 한 민원이 있어 죄송스럽고 공감되는 때는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민원인의 착각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종이로 된 확인서를 요구하는 직장이나 병원 등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에서 법으로 정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다른 사례로서 보육교사 등 특수 직업군이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도록 지침을 내리고 있지만, 검사만 받으면 되지 확인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확인서를 요구하는 곳은 정부 지침이 아니라 본인들의 편의를 위해 그러한 정책을 고수하고 있을 뿐이다. 사기업의 편의를 위해 애초에 공무를 수행하는 보건소에서 그 요구에 맞춰 확인서를 떼어줄 의무는 없다. 민원인들이 따져야 할 곳은 보건소가 아니라 확인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조직인 것이다. 본인이 정 확인서가 필요하면 민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확인서를 요구하면 된다. 물론 진료비가 만만치 않게 나오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고도 민원인들은 우리에게 와서 떼를 쓴다.
xx시가 확인서를 발급해준다는 것 때문에 그것이 우리 의무사항이 될 수도 없다. 사람들은 코로나 선별진료소가 마치 전국적으로 정부의 일사분란한 지휘하에 천편일률적으로 운영되는 줄 알겠지만, 지자체 보건소의 사정마다 제각기 다르게 운영된다. 거주지와 상관없이 검사를 원하는 사람은 모두 받게 하라는 커다란 지침은 동일하나, 그 안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일이 전부 같지는 않다. xx시는 인력 여건이 되니까 확인서를 발급해주는 것이고, 우리는 여건이 안되니까 발급을 못 해주는 것이다.
종이 한 장 이름 넣어서 출력해주는 간단한 작업에 왜 옳고그름을 따질까 원망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종이를 출력해주는 것은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 확인서가 필요해서 증상이 없는데도 어쩔 수 없이 검사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만약 우리가 확인서를 발급해줘야 한다면 그 사실을 알고 오게 될 민원인을 받기 위해 선별진료소에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해야 하고, 확인서를 발급해줄 인력을 추가로 배치해야 한다. 그 말은 그만큼 다른 분야의 보건 서비스를 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확인서가 필요한 사람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그만큼 임산부나 치매에 걸린 노약자들을 돌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런 원론적인 내용까지 구구절절 민원인에게 설명하거나 토론할 시간도 없다. 차라리 그 민원인에게 안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빨리 다음 사람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엄밀히 따지면 그 민원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이 과정에서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
굳이 따지자면 행정편의주의를 가진 확인서 요구 기관의 잘못이다. 원론적으로 정부는 민원인들이 어리석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누가 와도 속 시원하게 해결해주거나 해결방법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주겠다는 태도를 가지는 게 맞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가 만족할수 있는 동화나 영화속에 사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는 부족하거나 불완전할 것이다. 완벽하지 못한 서비스에 대해 민원인들이 조금만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줬으면 하는 안타까움을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확인서를 요구하여 민간 병원에 비싼 진료비를 내도록 몰아가는 주체가 누구인가. 그것은 보건소가 아니라 확인서를 요구하는 기관이다. 그러니 차라리 그 기관의 잘못된 행정과 불공정한 거래 행위를 규탄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나도 이해한다. 한국인이라면 관공서에서 점잖게 행동하면 얻어내지 못하고 떼를 쓰면 얻어낸 경험들이 한 번씩 있을 테니까. 이미 신뢰가 무너진 마당에 무조건 공공기관을 믿어달라고는 못 하겠다. 하지만 안된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한 번만이라도, 안된다고 말하는 이유를 고민한 뒤에 항의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