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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채 May 21. 2024

[EP.0] 대장정의 서막

오사카 여행 준비

  2018년 겨울, 난생처음 홀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우연한 시작이었다. 그해 11월, 뉴스에서는 나날이 엔화가 하락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연일 이어지는 사상 최저치라는 소식에 '미리 환전해 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20대 중반이 되도록 해외여행 한 번 가본 적 없었는데 심중에는 언젠가 반드시 오사카를 방문하겠다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열렬한 팬으로서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해리포터 존을 꼭 방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국내 여행조차 자주 가보지 못했기에 해외여행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느덧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적지만 수입이 발생하니 미래를 위한 투자 명목으로 환전해 두는 게 어떨까 싶었다. 재테크가 아닌 나중에 있을 내 여행을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말이다. 마침 수중에는 비상금으로 모아둔 여윳돈이 조금 있었다. 사정이 궁핍해질 때마다 야금야금 꺼내 쓰는 바람에 갈수록 소박해지고 있긴 했지만.  

 

  당시 나는 서울에서 방송 작가로 생활하고 있었다. 지방에서 상경하여 방송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한 외주 제작사에 신입으로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내 직장은 업계 평균에 비하면 비교적 유한 편이었으나 방송 업계의 불확실성은 내 성향과 잘 맞지 않았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계획에 의존해 생활하는 나에게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또한, 처음 겪는 사회생활에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이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듣게 된 엔화 하락 소식은 나를 결국 은행으로 이끌었다. 어차피 흐지부지 사라질 바에야 미리 환전해 두는 편이 훨씬 이득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근처 은행에서 비상금 일부를 엔화로 바꿨다. 그때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 낯선 지폐 몇 장이 이토록 강렬하게 나의 첫 여행에 불씨를 댕길 거라곤 말이다.   


  애초에 가졌던 마음이 무색하게 막상 외화를 손에 쥐고 보니 마음이 동했다. 내게 여행은 언제나 ‘돈’이었는데 이젠 적을지언정 수입도 있고 가고자 하는 의지도 있으니 떠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내친김에 다녀올까 하는 생각까지 미치자 그 이후로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자는 명분으로 난 떠나기로 했다.      


  당시 막내 작가 페이는 서울에서 겨우 입에 풀칠하고 살 정도의 적은 돈이었다. 방 한 칸 구하지 못하고 고시원에서 생활했는데 그런 형편에도 아끼고 아껴 여행 자금을 마련했다. 프로그램 종료 시기에 맞춰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하고 오매불망 기다린 두 달의 시간이 지나 드디어 도래한 출국일.  설렘으로 잠 못 이루고 뜬눈으로 밤을 새운 채 공항으로 향했다. 오전 9시 비행기였기에 이른 새벽에 출발했다. 여행 직전까지도 바람 잘날 없었던 방송계였다. 그러나 D-Day가 되자 모든 고통은 휘발되고 눈앞의 행복만이 선명해졌다. 아직 세상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꿈과 현실의 경계에 있는 1월의 새벽을 경쾌한 발걸음으로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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