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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주 Oct 03. 2023

00. 살아남기에서 살아가기로

2019년 2월부터 2023년 9월까지의 기록을 돌아보며,


이 매거진의 원래 제목은 <타지에서 살아남기>였다. 2019년 프라하에 오던 첫 해에 낯선 땅에서 잘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다. 어릴 적 본 만화책 어디 어디에서 살아남기 시리즈를 차용한 제목이었다. 방사능에서도 살아남고 정글에서도 살아남는 스토리처럼 강렬하지는 않지만 프라하라는 낯선 땅에서 어떻게 적응해 나갈지, 말 그대로 잘 살아남을지 걱정하며 스스로를 다독인 과정을 담았다. 겨울 어느 날 도착해 눈이 내리는 풍경을 보았던 때가 생각난다. 작은 스노우 볼을 흔들어 그 안의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 정확하게는 이질감이었다. 내가 있는 이곳은 마치 꿈속의 한 장면처럼 현실 같지 않고 어딘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면 어깨가 빳빳하게 긴장되었다. 집은 구할 수 있을지, 인사말도 어려운 체코어는 언제쯤 잘하게 될지, 체코 사람들과 동화되어 잘 살아갈 수 있을지... 크고 작은 질문들에 답하며 살아온 것이 어느덧 4년 하고 몇 개월이 되었다.


코로나가 지난 이후는 매년 여름 한국에 갔다. 한국에 갈 때마다 동생은 물었다. 이제 며칠 후면 다시 프라하에 가야 하는데 기분이 어때. 아직도 프라하에 다시 돌아가고 싶어? 그때마다 생각에 잠겼다. 0.1초 만에 '응, 다시 가고 싶어'라고 하기에는 타지 생활이 즐겁지만은 않았고 '아니, 한국에 있고 싶어'라고 하기에는 아쉬웠기 때문이다. 천천히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응, 다시 가고 싶어. 지금까지는 살아남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 이제부터는 살아가는 과정인 것 같고. 그래서 다시 가서 잘 살아가보고 싶어." 지난 4년은 과도기였다. 살아남기에서 살아가기로 가는 여정이기도 했다. 삶의 기본적인 틀을 마련하는 데에는 많은 품이 든다는 것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지금부터 쓰는 글에는 바뀐 제목처럼 타지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담을 예정이다. 만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자주 가는 소모임들을 하나씩 만들고 이런저런 축제에도 가면서 삶의 반경을 조금씩 넓혀나가는 과정이 담기기를 바란다. 


어느 책에서인가 인생은 텅 빈 선물 상자와도 같다는 말을 읽었다. 인생은 텅 빈 선물 상자와도 같아서 그 상자를 받으면 인생에 무엇을 채우고 싶은가 고민하고 채우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는 것. 타지에서의 삶은 어쩌면 무엇을 채우고 싶은지를 좀 더 맹렬하게 고민하게 해 준 환경이었다. 나고 자라온 곳을 벗어나 익숙한 모든 것에 거리를 두고 나면 불현듯 의문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당혹감은 잠시 뿐, 이후에는 내 선택으로 가치를 고를 수 있다는 자유가 주어진다. 조금 더 넓어진 선택지 안에서 인생의 선물들을 고르고 상자에 담고 또다시 선택지를 넓혀나가는 과정은 계속될 것이다. 


<타지에서 살아가기>로 투 비 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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