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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주 Jun 17. 2021

#근황#글 손실#프라하 생활#2021

오랜만에 근황을 전한다. 글을 잠시 놓고 지낸 지 3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프라하는 해가 길어졌고 내 옷소매는 짧아졌다. 일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는 날과 일이 많아서 허덕이는 날을 오가며 하루하루를 보냈더니 어느새 6월 중순이 되었다. 2월부터 꾸준히 뛰던 조깅도 5월 말이 되며 쉬기 시작했다. 그 덕에 몸이 이곳저곳 물렁해졌다. 몇 없던 근육이 다 살로 바뀐 것인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근손실에 이어 글 손실도 오고야 말았다. (김이나 작사가가 인스타그램 피드에 쓴 말이었는데, 운동을 안 하면 근육이 손실되는 것처럼 글도 자주 안 쓰면 실력이 사르르 사라지는 듯하다고 말했다.)


무엇이든 왜 이렇게 다 집안일 같을까 하고 생각한다. 엄마는 늘 집안일이 '해도 티가 안 나, 그런데 안 하면 티가 나. 지겨워 죽겠어 증말.' 같은 것이라 표현했다. 이것이야말로 아주 문학적인 표현이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집안일 같은 것이 많은 지 모르겠다. 친구는 100일 복근 챌린지를 시도했다가 100일이 다가오는데도 많이 변하지 않은 몸을 보고 적잖이 의욕이 사그라들었다고 했다. 이 정도 했으면 복근이 눈치껏 나와줘야 하는데 우리의 복근은 눈치가 없는 모양인지 100일이 지나도 적당히 단단해질 뿐 뿅 하고 튀어나와주진 않는다. 


어쩌면 그 복근 챌린지 같은 것이 지금 나의 생활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매일매일 무언가를 하는데, 그 성과가 생각보다 눈에 쉬이 안 드러나서 지치고 의욕을 잃고 그만두다가도 또다시 내게 없는 무언가를 꿈꾸며 움직이기를 반복하는 것 말이다. 프라하에서 살며 한국에서는 하지 못 했고 이룰 수 없을 듯했던 것들이 뿅 하고 이뤄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나의 복근을 믿는 것보다도 더 어리석은 믿음이었고, 100일이 아닌 1년, 2년, 어느덧 3년 차까지 꾸준히 열정을 보이며 산다는 어느 부분이 소진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로 1년 가까이 비자와 생활비 문제를 계속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몸을 자주 굳게 만들었다. 자주 긴장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이제는 한국을 한 번 다녀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신경 쓰지 않아도 말이 들리고 말이 나오는 곳에 잠시 있어야 하지 않나, 엄마 밥도 먹고 내 냄새가 빠지지 않은 침대에 누워 드렁드렁 잠을 잘 때이지 않나, 그런 생각을 자주 하며 프라하 생활을 하고 있다.


복근 이야기를 들려준 친구는 통화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야, 현주야. 그런데 우리 대화 너무 좋다. 뭐 파이팅! 다시 힘내자! 이런 게 아니어도 그냥 가끔 이렇게 힘들다, 지친다, 의욕이 없다 하고 말하는 게 너무 건강하다. 그래 그냥 가끔 이렇게 지자.' 친구는 아이유 가사 같은 말을 그 이후로 한참 해줬다. 이왕 지는 거 좀 적극적으로 져야겠다 싶어서 많이 쉬고 먹고 자고 눕고 또 누워있기를 반복한 끝에 무거웠던 긴장을 조금 내려놓았다. 


미래의 일은 미래의 현주에게 맡기고 그런 미래의 현주를 믿기 위해 현재의 현주는 복근을 만들고 공부를 하고 과거의 현주는 좋은 기억으로 현재의 현주를 즐겁게 하시기를. 


오늘은 여기에서 마무리하며 두서없는 근황 이야기를 정성껏 읽어준 이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다음에는 근육과 글솜씨를 조금 챙겨서 찾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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