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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 Jul 14. 2023

[전하고 싶은 음악⑧] 바다를 보았네 - 솔가

열다섯 소녀가 새삼스럽게 만나게 될 세상에 대하여

나는 어머니,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부모님은 일찍부터 직계 가족 없이 살아 오셨고 그러다보니 마음을 나눌 가까운 친척이나 사람들이 말하는 ‘시골’ 역시 없었다. 여름방학 때 친구들이 외할머니네 다녀왔다고 하면 그게 어떤 느낌인지도 모른 채 마냥 부러워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지역을 막론하고 사투리, 방언을 잘 알아 듣는 편이다. 또래의 화법만이 아니라 지긋한 노인들의 대화에서도 대략적인 의미를 바로 알아차린다. 내 눈치가 빠르거나 사람 간의 기류를 읽는 예민함이 어딘가에 장착되어서 그럴 수도 있다. 혹은 대학생 시절 오갔던 남원의 풍물굿 전수관에서 만난 전국의 젊은이들이 제각기 구사한 말투에 제법 익숙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곰곰이 귀 기울여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동네가 있다. 제주. 그 곳의 언어는 여느 방언들과 새삼스럽게 다르며 서울과 비슷하다 생각했던 단어는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인다. 십수 년 전 어느 여름, 친구와 나는 쨍쨍 내리쬐는 뙤약볕을 걷다가 제주시외버스터미널 앞 허름한 백반집에서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조용하던 공간이 갑자기 시끌시끌해져서 소리의 발화점을 돌아보게 되었다. 밥집에 정기적으로 야채를 대어 주는 할아버지와 가게 주인아주머니가 말다툼을 하는 듯 했다. 전반적인 분위기로는 야채 값 흥정을 하다가 그리 된 듯 했으나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도통 뜻을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제주말은 사투리가 아니라 독자적인 다른 언어가 아닌가 생각했다. 


왁왁한 바다숲 소리가 멈추고
햇살 물결치고 어린 물고기들 햇살이 되네
바다를 보았네 바다를 보았네
늘 알던 바다에서 처음 만나는 바다


솔가의 “바다를 보았네”는 정금주라는 해녀 할머니가 열다섯 살에 경험한 첫 물질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따 온 노래다. 그 안에는 ‘허우쳐’, ‘왁왁한’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허우치다’는 허우적거리다, ‘왁왁하다’는 어둡다, 컴컴하다는 뜻의 제주말이다. 과연 음악을 듣는 ‘육지’ 사람들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을까? 방언과 언어의 구별은 상호의사소통의 가능 여부에 초점을 둔다고 한다. 즉, 표준어를 쓰는 사람과 방언을 쓰는 사람 간의 의사소통은 어휘나 억양의 차이가 있다 해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유네스코와 제주도 의회, 국제표준화기구에서는 ‘제주도 방언’이 아니라 ‘제주어’로 분류하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원형과 가장 많이 닮아 있다는 ‘제주어’는 약 200년 간 지속된 조선시대의 출륙금지령, 4.3 항쟁 등의 인위적인 고립과 탄압으로 인해 현재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생생생 Vol.3 단오 <기후위기 문제를 바라보는 세대 간 세대 잇기> 중 솔가 공연 | 사진 @foto.mooool (Dogyun Kim)

https://youtu.be/iNZIkjCt2Cc

[Official Audio] solga(솔가) - My first ocean(바다를 보았네)


“바다를 보았네”는 싱어 송라이터 솔가가 처음으로 타인에게 ‘받은’ 가사다. 이를 쓴 이혜영 작가는 얼마 전 <제주 사람 허계생>이라는 책을 냈다. 계사년(1953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계생이란 이름을 얻게 된 제주 여성 허계생은 살아 내 온 본인의 삶을 입말로 뱉어냈고 이는 이혜영의 통찰과 문장으로 촘촘하게 엮이어 이내 책이 되었다. 가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네들 삶을 오롯이 들여다보고 있는 작가의 시선이 듣고 읽는 사람에게 닿아 저마다의 마땅한 위로를 준다. 제주어만이 표현할 수 있는 제주 사람의 삶을 전하고 싶은 저자의 의지를 담아 표준어 대역을 함께 싣지 않고 제주 사람의 입말을 고집했다 한다. 본문의 제주어에는 설명을 달고, 책의 말미에는 이 책을 위한 ‘작은 제주어사전’을 덧붙여 뒀다.


“제주 사람 허계생” 책 표지


한사람 생활사’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개인의 삶을 통해 시대와 사회를 이해하려는 책이다. 개인의 삶은 알고 보면 특별함으로 가득하다. 허계생 ‘삼춘’의 이야기에는 제주 사람들의 지혜로운 삶의 모습이, 공동체와 함께했던 연대의 풍경이,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여성의 한 생애가 펼쳐진다. - 책 소개 중(제주출판사 한그루)


‘한사람 생활사’라는 말이 특히 마음에 와 닿는다. 모든 역사는 그렇게 한 사람의 삶으로부터 시작되고 온 세상이 되었다가 다시 한 사람으로 돌아와서 끝나는 게 아닐까. 한 사람의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한 사람의 걸음과 선택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는 그 본연의 성격을 잃어버린 셈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세상 구석구석의 이야기와 사건, 사고, 변화하는 정세를 통해 이런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음악가이자 지구인으로, 여성이자 한국 사람으로 살아가는 솔가와 모호(연대와 소통 65호, 2022가을 게재) 그리고 나는 각자 살아 온 사회 속에서 마주친 여러 층위의 문제의식을 풀어낼 방법을 고민해 왔다.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을 차용하며 재앙처럼 번지는 난개발과 그로 인한 삶터의 파괴, 차별과 혐오,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재앙이 된 지구의 변화 등 도통 회복될 것 같지 않은 위기의 순간을 만나왔고 ‘음악가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과 ‘공존’, ‘공생’하는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실천적 고민을 나누고 싶었다. 재난의 시기에 배제되고 정해진 방식의 애도 앞에서 밀려나는 음악, 늘 손님처럼, 도구처럼, 배경처럼 쓰여 온 음악이 아니라 작더라도 스스로의 질문으로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우리의 모임 “요란한 고사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요란한 고사리”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생생생 : 생태, 생활, 생음악>이다. 일종의 토크 콘서트로 음악가들이 화두를 던지는 주체가 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초대하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 음악, 그 시기에 어울리는 음식을 나누는 형태다. 첫 번째 ‘예술가가 만나는 계절 이야기’를 시작으로 두 번째 ‘보이지 않는 바다 속의 바다 이야기’를 거쳐 세 번째 ‘기후위기 문제를 바라보는 세대 간 세대 잇기’라는 주제로 이어졌다. 작가, 활동가, 음악가, 채식요리연구가, 청소년 기후행동 모임의 일원 등이 만났고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진 많은 관객들이 모였다. 미처 몰랐던 세상의 면면을 새로이 알게 됐고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걷고 있는 사람들의 활동을 서로 응원하는 힘이 느껴졌다.


매달 절기나 명절에 어울리는 음식을 준비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늘 초대 손님들의 기지와 솜씨가 더해진 덕분에 아름답고 풍성한 상차림을 할 수 있었다. 그 동안 만들고 먹었던 화전, 후무스, 송편, 한치회, 민들레나물, 감바스, 두릅 숙회, 바지락 미나리전, 쑥떡, 카나페, 화채 등 무엇 하나 귀하지 않은 음식이 없었다. 그 귀한 음식을 나눠먹다 보면 자연스럽게 곁에 있는 사람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짧은 순간임에도 우리들이 이어져 있음을 분명하게 느끼게 된다. 


두 손을 뻗어 그 숲을 잡고파
마지막 남은 숨 움켜쥔 주먹
바다를 보았네 바다를 보았네
늘 알던 바다에서 처음 만나는 바다


앞으로 “요란한 고사리”가 무엇을 하게 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생생생 프로젝트’를 이어갈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방식의 말걸기를 하게 될 수도 있다. 혹은 누군가의 제안을 받아 더 요란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도 있다. 우리들의 요란함이 함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그만 파문으로 번졌으면 좋겠다.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가 숲이 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우주가 되듯이, 열다섯 소녀가 새삼스럽게 바다를 만났던 일처럼 새삼스러운 감각으로 세상을 만나고 싶다.



*솔가(Solga) | Instagram @sol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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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되지 못한 말들을 담아 짓고 부르며 자연에 깃댄 삶을 노래하는 음악가. 숲에서, 바다에서, 시장에서, 지진으로 무너진 히말라야에서, 삶에 지친 사람들과 할머니들과 아이들과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노래해 왔다.


*요란한 고사리(Yoranhan Gosari) | Instagram @yoranhan_gos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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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 솔가, 이호

요란한 고사리는 생활, 생태와 연결된 음악과 예술을 지향한다. 

변혁하며 생을 이어온 고사리처럼, 보다 요란한 인간으로서 세상에 연대하려 한다.



*<바다를 보았네>는 각종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 소통> 68호(2023년 여름호)에 전게(前揭)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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