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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 Apr 22. 2022

[전하고 싶은 음악③] 고래의 말-이호

- 2014년 4월 16일

줄기차게 쏟아붓는 비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출발할 때 내리기 시작하던 비는 서울을 빠져나갈 때 즈음엔 제법 굵은 빗방울로 변해있었고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세찬 물줄기가 되었다. 전라도에 들어서자 폭포수 아래 들어선 것처럼 전방 시야 확보가 불가능했고 숨가쁘게 움직이는 와이어는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터널에 들어서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지만 맞은 편 구멍으로 나가는 순간, 세상은 다시 물에 잠겼다. 2020년 8월 7일, 우리는 시속 15km도 되지 않는 속도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뉴 무쏘’에 몸을 싣고 간신히 광주에 도착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미뤄졌던 전국오월창작가요제 본선이 바로 내일이다. 나는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고래의 말’을 부르리라.


수년 전 그 날, 나는 평소에 잘 챙기지 않던 아침 뉴스를 봤다.

‘뉴스속보’라는 빨간색 글씨와 함께 안산 단원고 “학생 338명 전원 구조”라는 뉴스가 이어졌다. 아마도 수학여행을 떠났던가 본데 큰 사고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외출준비를 했다. 그리고 몇시간 뒤 그 뉴스가 사상 최악의 오보임을 알게 되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세월호가 전복되어 침몰했다. 이 사고로 탑승 인원 476명 중 시신 미수습자 5명을 포함한 304명이 사망했다. 이틀 뒤 배가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전 국민이 TV 생중계를 통해 그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사고 당일 기상악화가 없었다는 사실, 사고 초반에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을 하고 먼저 탈출한 선장, 구조에 소홀한 모습을 보이던 해경, 횡설수설하는 대통령.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비현실적인 현실이 우리의 일상을 마비시켰다.


한동안 ‘바다’라는 단어는 금기어가 되었다. 사람들은 ‘빠졌다’라거나 ‘잠겼다’ 혹은 ‘가라앉았다’는 말도 소리 내 말할 수 없었다. 사회적・집단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트라우마가 발현됐고 나와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엇이든 해야만 했고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음식을 만들다가, 자전거를 타다가, 양치질을 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줄줄 흘렀다. 방송, 영화계는 물론 공연계에서도 행사와 공연 취소가 이어졌다. 공연은 오직 길 위에서, 노란 리본을 달았을 때 할 수 있었다. 2014년 5월부터 2018년 5월까지 일요일마다 홍대입구역 8번 출구 앞에서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버스킹과 서명운동이 이어졌고 나 역시 자주 그 곳에서 노래했다. 간혹 차가운 광화문 광장에 서서 유족들을 앞에 두고 노래할 때면 죄스러운 마음에 눈 둘 곳이 없었다. 그 마음을 헤아려 웃어도 되고 노래해도 된다며 내 손을 잡아주시던 분들을 기억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두 번째 봄이 찾아왔을 때 곡을 만들었다. 제목은 없었다. 꺼내어 노래로 부를 자신이 없었기에 컴퓨터 안에 고이 모셔두기만 했다. 그해 가을부터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을 들었고 12월 9일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이듬해 3월에 탄핵 심판 선고가 내려졌다. 6대 긴급 현안 중 하나였던 ‘세월호 진상 규명’에 대한 기대도 높아졌지만 헌법재판소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청와대의 의무 위반은 탄핵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탄핵과는 별개의 과제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탄핵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 때 여러 차례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 밝혀진 내용은 미비하고 구체적 진실 없는 의혹만 지금까지 난무한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구슬픈 고래의 울음이 들려

검푸른 꼬리 철썩이며

먹먹한 눈으로 이야기하네”


만든 지 4년이 되어서야 나는 묵혀두었던 곡을 마주했다. 편곡을 새로 했고 동거인의 아이디어로 곡의 제목이 생겼으며 첼리스트 친구의 연주가 더해졌다. 나는 이 거대하고 끔찍한 사건을 목격한 우리들의 기억마저 파편이 되고 점점 흐려져 가는 것이 애달팠다. 그리고 ‘고래의 말’을 빌어서라도 노래하고 싶었다. 그날의 진실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나와 당신이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예선을 지나 빗물에 잠긴 세상을 통과하고 오른 본선 무대에서 나는 주먹을 꼭 쥐고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결과는 제10회 전국오월창작가요제 은상 수상이었다.


2022년, 여덟번째의 봄이 왔다. 그리고 지난 3월 9일에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바로 다음 날, 서울교통공사는 4・16 해외연대가 서울 지하철 3·4호선에 게시를 신청한 세월호 8주기 추모 광고 게재를 불허했다. ‘정치적 주의, 주장, 정책이 표출되어 공사의 정치적 중립성에 방해가 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였다. 불허한 추모 광고 내 문장은 다음과 같다.


“얘들아 잘 지내니?...

지금도 알고 싶습니다.

왜 구하지 않았는지.

진실을 밝히는 일

살아있는 우리의 몫입니다.”


“정치적 중립 방해”…서울교통공사, 세월호 8주기 추모 지하철 광고도 불허 (2022.03.14/한겨레/장예지 기자) 기사전문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34826.html 


<고래의 말>

https://youtu.be/1C3PWpq-n1k


*

이호 | https://linktr.ee/eeeho

(싱어송라이터 | 밴드 ‘호와호’)

※ ‘고래의 말’은 각종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 소통> 63호(2022년 봄호)에 전게(前揭)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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