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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티 Aug 18. 2019

모서리 위의 컵

_수필, 수필.......

거실 TV로 일일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황당한 이야기 때문에 욕을 하면서도 중독성이 강해 계속 보게 된다는 유명 작가의 드라마였다. 여주인공이 결혼을 반대하는 남자 친구의 의붓어머니를 찾아가 폭탄 발언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바르르 떨며 말했다.

 “당신이 낳아서 버린 딸이 바로 저예요!”

 그녀가 드디어 출생의 비밀을 밝혔다. 궁금해서 드라마를 뚫어지게 바라보는데, 무언가가 주방에서 나와 방으로 휙 사라졌다. 막 초등 6학년이 된 아들이었다. 화면에서는 여주인공과 그녀의 예비 시어머니 아니, 친어머니가 절규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갑자기 몰입이 되지 않았다. 주방에서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내 뒤통수를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이봐. 네 아들이 방금 주방에서 나와 방으로 들어갔어. 휘리릭 지나갔다구! 그건 마음이 급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방에서 하던 놀이를 계속하려고. 그런 아들이 주방에 들어갔다 나왔어. 과연 너의 주방은 괜찮을까? 좋아하는 것에 정신이 팔리면 뒤죽박죽 행동하는 아들의 성격을 아는데도 드라마가 눈에 들어와?’

 이런 예감은 틀린 적이 거의 없었다. 주방으로 갔다. 불길한 기운은 식탁 모서리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모서리 위에 사기 컵이 아슬아슬하게 놓여있었다. 물이 반쯤 채워진 채로. 아들이 놓은 컵이 분명했다.

 컵은 금방이라도 툭 떨어져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았다. 외줄 위에 홀로 서 있는 광대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불안은 컵 밖으로 넘쳐흘러 식탁의 균형을, 주방의 균형을 깨고 있었다. 컵 하나 때문에 주방 공간 전체가 한쪽으로 갸우뚱 기울어져 있었다. 컵은 미동 없이 놓여 있었지만, 그 평형상태는 미세한 변수에도 ‘쩍’하고 금이 갈 듯 보였다. 

 평형을 깨는 미세한 변수는 세상 구석구석 널려있다. 그것은 작은 포자처럼 공기 속을 떠돌다 인간의 방심을 틈타 기습적으로 공격한다. ‘아차’하는 그 순간, 공기의 흐름은 질서에서 무질서로, 안정에서 위험으로 둔갑한다.

 아들은 왜 모서리의 위태로움을 보지 못할까? 곳곳에 웅크리고 있는 불안의 씨앗을 잘못 건드려 상처를 입을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불안은 내 안의 공포를 불러내고 공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불행을 마치 일어난 일인 듯 선명하게 보여줬다. 

 겁이 났다. 그리고 화가 났다. 실제로 모서리에 컵을 놓았다가 깨트린 적도 있어 수백 번 조심하라고 주의를 시켰다. 그런데도 여전히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다니! 속에서 열이 훅 올라왔다.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이번엔 정말 가만두지 않으리라. 눈을 부릅뜨고 아들을 부르려 고개를 휙 돌리는데, TV 속 여배우가 눈에 들어왔다. 

 “당신 때문에 우리 아빠도 오빠도 죽었어. 당신도 살이 찢기는 고통을 느껴봐야 해!”

 그녀의 삶은 친모에게서 버려진 순간부터 조각조각 깨져버렸다. 겹겹이 쌓여 곯아버린 상처의 파편이 브라운관을 통과해 내 앞에 떨어진 듯했다. 파편의 날카로움이 느껴져 나는 움찔했다. 주인공은 눈을 부릅뜨며 울부짖고 있었다. 부릅뜬 눈 속에 분노가 가득했다. 

 순간, 그냥 머쓱해졌다. ‘부릅뜨고’ 있던 내 눈이 풍선 바람 빠지듯 스르르 풀렸다. 컵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흥분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생의 비밀도 아니고, 가족의 죽음도 아니고, 그냥 컵일 뿐인데…. 야단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나의 꾸지람은 아들의 철통 고막에 반사되어 허공을 떠돌다가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 뻔했다. 아들과 나 사이엔 장렬히 전사한 꾸지람의 잔해가 이미 63빌딩 높이만큼 쌓여 있었다. 거기에 한 조각을 더 얹는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심호흡을 했다.

 모서리에 놓인 컵 속에 담겨 있는 것은 물이 아니라 나의 불안이었다. 컵이 떨어져 깨질까  불안하고, 그 깨진 사기 조각에 발이 찔려 다칠까 불안하고, 발의 상처가 깊어질까 불안한, 불안의 연속 고리. 어쩌면 나는 그 고리에 갇혀 불안의 궤도를 빙글빙글 돌며 일어나지 않은 공포를 만들고 있었는지 모른다. 모서리 위의 물 컵, 고작 그 컵 때문에.

 “엄마, 여기서 뭐 해? 드라마 안 봐?”

 어느새 아들이 옆에 와 있었다. 아들은 과장되게 ‘씨익’ 웃더니 모서리 위의 컵을 재빨리 들고 돌아갔다.  

 “컵에 있는 물, 남기지 말고 다 마시고 가져와.”

 컵과 함께 방으로 사라진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이 내 불안까지 싹 다 마셔주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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