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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티 Aug 04. 2019

존 레논 때문에 울지 말자

수필

 비틀스(The Beatles) 주연의 영화 <하드 데이즈 나이트, A Hard Day's Night>에서 존 레논(John Lennon)이 링고 스타(Ringo Starr)에게 다가가며 <If I fell>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방송국 직원의 장난으로 토라진 링고 스타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듯이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다소 거칠지만 담백한 존 레논의 목소리와 따스한 눈빛이 <If I fell>의 선율을 타고 나를 에워쌌다.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는 부드러운 화음으로 존 레논의 노래를 받쳐 주었고,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은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기타를 연주했다. 화가 풀려 다시 천진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온 링고 스타는 웃으며 드럼을 두드렸다. 


 존 레논의 노래가 흘러나오자 갑자기 심장 주위가 시큰거렸다. 한번 시작된 감정의 동요는 점점 확대되어 주책없게도 눈물샘까지 자극했다. 슬픈 장면이 아니었다. 영화에서 비틀스는 신나게 연주하고 장난치며 웃고 있었다. 이런 장면에서 눈물이 나오려 하다니. 나는 비틀스 세대도 아니고, 비틀스 팬도 아니며, 비틀스 곡에 관련된 어떤 추억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 눈물이라니!

 그곳은 다양성 영화를 상영하는 소규모 극장으로, 스무 명 정도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울 이유가 하나도 없는 영화를 보며 혼자 훌쩍거리는 이상한 아줌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두 눈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눈물이 시작되는 곳, 거기가 어디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심장 부근이라 여겨지는 그곳에도 힘을 주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눈물은 기어코 눈 밖으로 흘러나왔다. 가방 속에서 주섬주섬 티슈를 꺼내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 모든 사람이 다 나간 뒤에 마지막으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If I fell>을 노래하는 스물네 살의 존 레논은 청춘의 광휘, 그 정점에 서 있었다. 젊은 그는 환하게 빛났고, 세월의 탁한 빛에 바래지 않은 그의 노래는 맑고 순수했다. 영화 속 그의 청춘은 선명하게 현재진행형이었다. 하지만, 객석에 있는 내게 그것은 과거형이었다. 그 괴리감 때문에 마음이 저릿했다. 나의 청춘이 이십 년 넘은 시간을 먼지처럼 뒤집어쓰고 추억 속에 묻혀 있다는 것을 불현듯 깨달았을 때처럼 가슴이 아렸다. 시간은 매몰차게 흘렀고, 그 흐름 안에서 청춘의 기억은 흐릿하게 사라져 갔다. 멀어지는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아련하다’라는 단어가 한숨처럼 새어 나왔다. 영화에서 찬란한 청춘의 한때를 보내고 있는 존 레논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세월이 존 레논의 청춘을 삼켜버렸다. 


 거리로 나왔다. 비구름이 지나간 후라 초저녁 하늘이 맑았다. 주위는 어스름해졌고 별 하나가 또렷하게 보였다. 그 별을 오래 바라봤다. 별을 볼 때마다 나는 습관처럼 별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광대한 우주 공간을 상상한다. 오랜 시간 그 공간을 뚫고 내 눈에 도착한 별빛, 그것은 까마득한 과거의 영상이었다. 

그때, 문뜩 떠올랐다. 우주 멀리서 지금 누군가 태양을 발견하고 태양 빛에 반사되어 보이는 지구를 보게 된다면, 그의 눈에 비친 지구는 현재가 아닌 과거일 것이다. 내가 먼 과거의 별빛을 바라보고 있듯이 그도 과거의 지구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1964년 존 레논이 <If I fell>을 부르는 순간과 1970년 비틀스가 해체되는 순간, 그리고 1980년 존 레논이 정신질환자에 의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순간을 포함한 모든 과거의 빛이 지금 우주 어딘가를 지나가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 우주는 빠른 속도로 팽창 중이고 과거의 빛들은 그 안에서 끝없이 뻗어 나갈 것이다.

 시간은 매 순간 휘발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지구를 떠나 우주 속으로 무한한 여행을 하고 있다. 그러니 존 레논 때문에 울지 말자. 우주 어딘가 <If I fell>을 부르는 존 레논의 모습은 분명 존재하고 있을 테니. 그의 청춘은 소멸한 것이 아니라 이 우주 안에서 영원히 진행 중이니까….




사진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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