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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티 Aug 02. 2019

엘비스라는 외계인

수필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1935∼1977, 로큰롤의 황제라 불린 미국 가수)는 ‘초강력 울트라 파워 성대’(요즘 신조어로 말하자면 꿀성대)를 장착하고 지구에 잠입했다. 그의 첫 임무는 지구인들을 노래로 매료시키는 것. 임무의 최종 목표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지구 공기를 아름답게 울리는데 최적화되어 있었다. 특히 '바이브레이션(vibration, 떨림)'은 거부할 수 없는 범우주적 매력을 발산하는 사랑의 울림 그 자체였다. 엘비스의 노래는 지구 곳곳으로 퍼져나가 1950∼60년대 많은 청춘의 영혼을 살랑살랑 흔들어 놓았다. 그는 세계 최초 ‘아이돌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1977년 여름, 홀연히 지구를 떠났다. 


 1987년 중 3 여름이었다. 방학은 내게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많은 시간을 던져주었다. 스마트폰은커녕, 인터넷도, 케이블방송도, 공중파 낮 방송도 없던 시절이었다. 방에서 뒹굴뒹굴 책을 보거나 공상을 하며 주어진 시간을 무료하게 허비하고 있었다. 오후엔 라디오를 들었다.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 아니면 ≪김기덕의 두 시의 데이트≫이었을 것이다. 때마침 엘비스 프레슬리 사망 10주년 기념이라 그의 노래만 계속 흘러나왔다. 처음엔 관심이 없었다. 그는 흘러간 가수였고 나는 파릇파릇한 십 대였다. 김광한 아저씨, 혹은 김기덕 아저씨가 틀어주는 노래들을 적막함을 방지하기 위한 배경음 정도로 여기며 흘려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배경음이 아니었다. 외계인 엘비스의 노래는 그가 지구를 떠난 10년 후에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했다. 라디오 전파를 타고 방에 침투한 엘비스의 바이브레이션은 가볍게 공기를 흔들며 부드럽게 내 귓속으로 들어와 고막의 경계심을 이완시키더니 사나운 독수리처럼 재빠르게 심장 중심을 내려찍었다. 심장은 깊은 상처를 입었고 중독이라는 후유증을 낳았다. 그렇게 나는 느끼한 옛날 노래를 좋아하는 십 대 소녀가 되었다. 내 음악 취향은 당시 대한민국 청소년 표준 치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사춘기 소녀인 내가 어떻게 구식 냄새가 폴폴 나는 엘비스의 공격에 쉽게 무너졌을까? 초등학교 때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한때 내가 외계인의 후손일지도 모른다는 공상에 빠졌었다.  

 외계인의 후손이라 지구 어린이가 좋아하는 피구,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등의 놀이에 전혀 관심이 없고, 지구에 대한 호기심이 커서 길을 걷다가도 돌을 주워 집으로 가져왔으며, 지구가 낯설어 낯가림이 심하고, 지구에 적응하기 힘들어 자주 아픈 것으로 생각했다. 한때 스스로 외계인의 후손이라고 의심했었기에 외계인 엘비스의 목소리에 취약했는지 모른다. 그의 음파가 내게 전달되는 순간, 나의 뇌파는 비정상적으로 크게 공명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엘비스 프레슬리에 중독되어 학창시절 내내 그의 음악을 들었다. 하지만 교육의 힘은 대단했다. 평준화를 지향하는 학교 교육을 받으면서 내 취향도 평준화의 규격에 점점 맞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결국, 대학 입학 후엔 엘비스의 음악을 더는 듣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보니 세상 도처엔 흥미로운 것들이 널려있었다. 외계인 엘비스의 바이브레이션은 그것들에 밀려 조용히 내 안에서 소멸했다.


 최근 엘비스 프레슬리에 관한 기사를 우연히 읽었다. 그의 돌연사 원인은 만성 변비였고 비대해진 대장 때문에 인공 항문 수술이 필요했지만 엘비스가 거부했다는 기사였다.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그의 사망원인 때문에 이런저런 소문들이 무성했다. 생존설, 외계인설, 외계인 납치설, 마피아 암살설 등. 이제 그 소문들은 증발되어 사라졌고 엘비스는 만성 변비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대표 인물이 되었다. 엘비스 죽음의 원인을 알게 되니 이상하게도 그의 노래가 다시 듣고 싶어졌다. MP3 몇 곡을 인터넷으로 구입해 카오디오에 연결했다. 

 차들로 꽉 막힌 테헤란로에서 운전을 하고 있었다. 만년 초보운전 실력으로 도로에 갇혀있게 되니 신경이 곤두섰다. 요즘 여러 일들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상황이라 더 짜증이 났다. 그때 카오디오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I'm yours>가 흘러나왔다. 고층 빌딩 유리창이 태양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엘비스의 노래와 함께 거리가 반짝였다. 탄산음료처럼 기포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가 테헤란로에 빨대를 꽂고 훅 입김을 불어넣고 있었다. 거리가 둥실둥실 떠오르는 듯했다. 


And as the years roll along, your joy and tears I'll gladly share.   
And when things go wrong dear just hold out your hand and I'll be there.   
세월 속에서 나는 당신의 기쁨과 슬픔을 기꺼이 함께 나눌 것입니다.   
힘든 일이 생길 때 사랑하는 이여, 그저 손을 내미세요. 내가 당신 곁에 있을 겁니다.

 

 엘비스의 꿀성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범우주적 매력 발산 바이브레이션이 다시 살아났다. 그것은 사십 대 중반에 접어든 나의 영혼을 살랑살랑 흔들어 놓았다. 그의 노래는 내 안팎의 것들을 둥글둥글 부풀게 하였다. 뾰족한 모서리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렇게 엘비스라는 외계인은 지쳐있던 내 심장에 두 번째 공격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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