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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찬우 Apr 24. 2021

30대 계약직이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사는 이유

기회비용 증가에 대한 불안 회피이자 선택에 대한 책임 이행

대학원 시절부터 관심을 두고 있었던 주제에 대해 연수가 열린다는 공문을 접했다. 일정과 연수 진행 방법을 둘러보며 연수를 신청하려다 멈칫했다. 나만의 수업 콘텐츠를 꾸려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야 할지, 정교사(정규직 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교원임용고사 공부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좀 더 냉철하게 봤을 때 전자는 지금 하는 일에 좀 더 충실하기 위함이니 양질의(?) 돈벌이를 하겠다는 마음이라면, 후자는 돈이나 일을 해서 얻을 경력 모두 정규직을 위한 발판 마련에 그칠 뿐이다. 후자에 가까운 마음에 가깝다면 학교 관련 일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처리하는 쪽으로 행동하게 될 것이다. 


사실 나는 후자의 마음으로 기간제 교사를 시작했다. 기간제 교사는 임시직이라는 마음이었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임용고사 인강비와 교재비를 버는 데 집중하자는 결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니 학생들의 귀중한 시간을 내가 책임지고 있다는 생각에 일을 허투루 하게 되질 않는다. 집에 와서 일을 계속하는 것을 물론이요 주말에도 일을 하고 학생들을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엄청난 퀄리티의 수업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나는 그냥 그저 그런 초임(기간제) 교사다. 최근에는 "학교 일에는 돈 안 쓸 거야"라고 말해놓고서는 온라인 수업에서 학생들이 게임형 퀴즈를 재미있게 풀이하는 것을 보고 게임하듯 퀴즈를 푸는 어플 1년 이용권을 5만 원가량 주고 샀고, 종종 태블릿과 노트북 연결이 끊길 때가 있어서 노트북에 바로 필기를 하려고 와콤 타블렛도 7만 원 정도를 주고 하나 장만했으며, 온라인 수업 시 학생들에게 좀 더 깔끔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마이크도 하나 장만했다. 


기회비용이란 내가 여러 선택지 중 어떤 한 가지를 선택했을 때, 남은 선택지 중 가장 좋은 것의 가치를 말한다(KDI 경제정보센터 학습자료). 내가 학교 행정과 수업 준비, 학생 지도에 투자하는 시간과 돈은 내가 정규직 준비, 즉, 임용고사 공부를 하는 데 투입할 수 있었던 비용일 것이니, 이 시간과 노력에서 내가 버는 돈을 뺀 가치는 임용고사 공부에 대한 기회비용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회비용을 설정하는 순간, 내 삶에서 어느덧 임용고사 준비는 일보다 더 중요하거나 최소한 일과 동등하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일보다는 절대 우선순위가 될 수 없어서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할 것들 중 하나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30대 초반에 기간제 교사.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지만 나이가 더 들면 구인시장에서 '곧 결혼하여 아이 낳겠다고 출산휴가를 쓸 사람', '나이가 많아서 일을 가르치기 힘들 것'이라고 여겨질까 봐 두렵다. 석사 학위가 있지만 교육대학원이 생기며 석사학위 소지자가 대폭 늘어났고, 논문을 썼다고 하더라도 직무와 직접적인 연결은 되지 않기 때문에 구직 과정에서 플러스 점수를 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타임 교사는 0.5년 차, 담임으로는 0.15년 차인 나는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요령껏, 적당한 노력만 투입해서 하기가 상당히 힘들다. 게다가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좀체 일을 적당히 처리할 수가 없다. 내 수업을 듣는 학생만 100명이 넘고, 담임 학급에는 23명의 아이들이 작은 일도 나에게 물어가며 학교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나의 태도가 곧 이들의 학교생활과 성적, 그리고 평생 가지고 갈 10대의 추억에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은 나를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욕심을 내도록 만든다. 


오늘도 아마 다음 주에 있을 시험을 대비하여 시험 문제를 최종적으로 점검하는 데 8시간 정도를 쓰고, 2시간 정도 교육학을 벼락치기로 공부해서 스터디에 참여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공부해서 시험지를 보고 무슨 내용을 써야 할지나 알겠나 싶은 마음으로 한 숨을 한번 쉴 것이다. 30대 초반 계약직인 내가 정규직이 되기까지의 기회비용은 날로 달로 커져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안타까워하고 불안에 떨고 있기엔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밀려있는 현재의 삶에 대한 책임감이 무겁다. 일이 많다. 그래서 나는 그냥 오늘도 미래 계획을 맘속에 품고는 있되 현재 해야 할 일, 내게 닥친 일을 처리하는 데 충실하고자 한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열정 청년이어서가 아니고, 그냥 이렇게 기회비용이 커질 줄 모르고 내린 나의 선택에 책임지기 위함이며, 커져가는 기회비용과 비례해서 커지는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회피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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