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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Sep 16. 2015

Deadline, 마감

글밥 먹고사는 이야기


얼마 전,  필자 A와 통화를 하는데 갑자기 그녀가 "엄마야!" 하면서 "어떡해"라고 했다.  

만날 날짜를 확인한다며 다이어리를 보다가 눈이 번쩍 뜨였던 것. 오늘부터 이틀 뒤 날짜에 선명하게 표시된 '000 마감'. 자기 머릿속 지우개가 작용했음이 분명했다며 호들갑이었다. 


"내가 왜 그랬지? 우리 다른 날 봐야겠어요."

 라면서 얘기했던 약속 날짜 대신 다른 날로 변경했다. 


그날 그녀는 부랴부랴  쓰다가 던져놨던 파일을 꺼내 다시 정리해서 초고를 완성하고, 몇 번 수정 작업을 본 뒤 마감에 늦지 않게, 잘 보냈단다. 

그저 여러 매체가 겹치다 보니 마감일자를 다른 매체와 바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 테지만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마감을 넘겨 본 적이 없는 그녀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늦지도 않았으니 지금부터라도 하던 일을 마저하면 될 터였다. 



한 번은 같이 일하던 필자들이 스케줄이 맞지 않아 부득이 다른 이에게 일을 맡기게 됐다. 이 일을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똘똘하다 생각했기에 최대한 자세히 청탁서를 적어주면서 일을 맡겼다. 그런데 마감일자가 돼도 연락이 없는 것이었다. 여유가 있는 기사라 무려 3주의 작업 시간을 주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오전의 여유를 더 준 뒤 오후에 문자를 보냈다. 


"원고 작업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런데 답신이 가관이다. 

"아직 안 썼는데요."



이 사람이 제 정신인가 싶어 문자를 다시 봤는데 아무리 다시 봐도 '안 썼다'는 내용이었다. 

청탁서를 읽어보기는 한 건지, 마감일자가 지났음에도 어쩜 그리 당당히도 안 썼다고 말할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심지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조차 없었다. 날짜를 착각했든 예의상이라도 사과와 변명은 해줬어야 하는 게 아니던가. 게다가 며칠 뒤 온 원고는 역시나였다. 재미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행사 진행 순서대로 팩트만 정리해둔 것에 불과했다. 게다가 내가 청탁서에 볼드처리에 밑줄까지 표시해서 써 두었건만 가장 기본적인 원고 구성 형태도 갖추지 않았다. 에디터가 청탁서를 보내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건데, 그조차도 읽지 않으면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수정을 보냈지만 돌아온 것은 차이가 없는 원고. 결국  원고 내용의 팩트를 바탕으로 어마 무시한 수정 작업을 했지만 역시나 생동감이 떨어졌다. 다행히 갑작스럽게 다른 기사를 실어야 해서 이 원고는 싣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고료를 보내면서 이렇게 돈이 아까웠던 적이 없었다. 


나는 이 사람과 다시 일을 했을까? 절대. 아니다. 이 사람은 마감을 지키지 못하고 원고까지 엉망이어서 신뢰를 잃은, 흔치 않은 경우다.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너무 당연한 사실 외에 이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마감을 지키는 일이 아닐까.  마감시간 준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마감이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대부분의 필자들은 마감을 지킨다. 밤을 새워서라도 칼 같이 마감을 지키는 이들이 훨씬 많다. 만화 칼럼니스트 김낙호 씨는 청탁을 받으면 집필 스케줄도 만든다고 한다. 나 역시도 대략적인 계획을 세우는 편이다. 쓰고, 단 한 번이라도 수정을 보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마감이 있는 글을 쓰기로 한 사람이라면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마감시간 준수의 문제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사실을. 

때가 되면 아침을 먹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고, 밤이면 잠자리에 들고 아침이면 깨어나는 일처럼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행여라도 늦게 된다면 미리 연락을 취하는 최소한의 예의를 보여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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