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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Mar 06. 2024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다 보면 못 오를 리 없겠지?

  최근에 처음 글을 쓰는 사람들을 몇 알게 되었다. 그들은 마음속에 맺혀 있는,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감정들부터 언제 생겼는지 모를 상처 위로 계속 덧대어진 생채기들을 가감 없이 토해냈다. 말하려는 게 무엇인지 모호해 보여도, 말하고 싶은 감정이 어떻게든 단어 사이로 비집고 나와 읽는 사람의 마음을 두드린다. 자기 좀 봐 달라고, 나 여기 있다고. 처음이라 표현도 문법도 구성도 어색하지만, 처음이기에 더없이 솔직한 그들의 감정을 바라보며 온갖 처음 속에서 좌충우돌하던 내가 떠올랐다.


  자유기고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부족한 경력을 쌓으려고 모 사보 편집 회사에 들어갔다. 여러 대기업 사보를 만드는 곳이었는데, 사외보의 경우에는 유명 월간지 뺨치는 콘텐츠 구성에 수준 높은 글들이 실렸다. 아는 동생에게 부탁해 이 회사 기획팀 팀장 메일 주소를 알아냈고 사람을 뽑는지 어떤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지원 메일을 보냈더랬다. 허접하기 그지없는(지금 다시 봐도 무슨 깡으로 저걸 보냈지? 싶은 글로 가득한) 포트폴리오와 함께. 운 좋게 면접을 보고 회사에 다니게 되었지만, 처음 얼마 동안은 그곳에서 만들어 낸 양질의 글을 보며 내 하찮은 글 쪼가리들이 떠올라 잔뜩 주눅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잔뜩 긴장한 채 출근했던 내게 한 회사의 직원 인터뷰 원고를 맡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사전 질문지를 만들어 팀장님에게 컨펌을 받고, 사진 작가님과 함께 취재를 다녀왔다. 녹취를 풀고 차근차근 원고를 써 내려갔다. 다음 날, 나는 퇴고까지 마친 원고를 팀장님 책상에 올려놓았다. 


  “자기야, 이리 와 봐.”


  나를 부르는 팀장님의 목소리에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래도 열심히 썼으니 고생했다고 해 주려는 건가, 생각하며 팀장님 자리로 갔다. 그런데 내가 그 앞에 서자마자 팀장님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순간 아찔했다. 저 한숨 뒤에 어떤 말이 이어질까 두려움이 밀려왔다.


  “자기는 이게 인터뷰 기사라고 생각해?”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든 생각. 뭐지, 내가 생각한 반응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칭찬까지는 아니어도 힐난 섞인 질문을 받을 정도는 아니지 않나? 그랬기에 나는 팀장님의 질문 앞에서 뇌가 정지된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팀장님은 내 원고의 잘못된 점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알려주었다. 너무나도 맞는 말들에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보니 내 글은 인터뷰 기사가 아니라 대화를 잘 다듬어 보기 좋게 문장을 배열한 글 뭉치에 불과했다. 덕분에 많이 배웠고 내 원고는 한층 발전할 수 있었지만, 지적을 듣는 내내 얼굴이 홧홧해서 죽을 것 같았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이미 얼굴이 시뻘게져 있겠거니 알 수 있을 정도로 열감이 느껴졌다.


  나는 원고를 새로 쓰기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다 뜯어고쳤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퇴고는 내일, 맑은 정신에 하자며 사무실 컴퓨터를 끄고 퇴근했다. 퇴근길, 무념무상의 얼굴로 택시 차창 밖을 바라보았지만, 머릿속은 더없이 복잡했다. 난 무슨 용기로 이 바닥에 발을 들였나. 또 무슨 깡으로 이력서를 보냈을까. 책 읽기를 좋아한다고 다 글을 잘 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학창 시절 백일장 같은 데서 상 안 받아 본 사람 있나. 그게 뭐라고 내게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자질이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렇게 나는 한동안 지구 코어까지 파고들 기세로 자기 비하의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 며칠이면 끝났을 땅굴 파기가 한동안이라는 꽤 긴 기간으로 이어진 건 그 후로도 숱한 지적을 받고 원고를 다시 썼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기간, 나는 팀장님이 끝끝내 오를 수 없을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다.


  끝나지 않는 원고 다시 쓰기에 나는 지칠 대로 지쳤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꾸역꾸역 맡은 원고들을 써냈다. 글을 보는 감각, 문장을 만지는 감각이 다른 이 팀장의 눈에 내 글이 어느 정도만 들 수 있어도 어디 가서 밥은 굶지 않겠거니 생각했으니까. 물론 원고만 쓴 게 아니라 편집도 하고 교정도 보고 하느라 날마다 야근해서 지쳤을 수도 있다. 그렇게 3주쯤 지났을 때였다(이곳에서의 3주는 석 달 이상으로 느껴질 만큼 업무량이 어마어마했다). 오늘은 또 어떤 지적을 받으려나 생각하고 있는데 생각지 못한 말이 내 귀로 흘러들었다. 


  “이제 좀 기사 같네. 일단 넘겨.” 


  난공불락의 거대한 산을 정복한 듯한 짜릿함이 등줄기를 타고 전신으로 쫙 퍼졌다. 잘 썼다는 칭찬이 아니었음에도, 그에 못지않은 쾌감이 나를 휘감았다. 그래도 글의 꼴은 갖추었다니, 한 계단 올라선 느낌이었다. 그 위로 더 높은 산봉우리가 보였지만, 오르다 보면 올라갈 수 있을 듯한 자신감도 생겼다. 집에 돌아가 동생에게 말했더니 동생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역시 하나를 계속하다 보면 뭐라도 나오긴 해, 그렇지?”


  맞는 말이었다. 어떤 일이든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하다 보면 뭐라도 손에 쥐는 것이 생기긴 한다. 8년째 몸 담고 있는 번역도 비슷하다. 다른 언어를 옮기는 일이긴 하지만 우리말로 문장을 만들어 내는 일이라는 점에서 글밥을 먹는 여느 일과 많이 닮았다. 내가 8년 전 처음 번역했던 작품들을 지금 다시 보면 어쩜 저렇게 번역을 못 했는지 아주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이불 킥을 하느라 그날은 잠도 이룰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 시절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나아지려 노력한 덕분에 지금 최소한 굶지는 않고 사는 것 같다. 무엇보다 세월과 함께 경험치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해석에만 그치던 문장이 어느새 맛깔나는 표현으로 바뀌는 쾌감을 맛볼 때도 있다. 최근 애정을 갖고 신경 써서 번역했던 판타지 소설 리뷰란에서 ‘이분이 계속 이 작가 작품 번역해 주면 좋겠다’는 댓글을 보고 뿌듯해 울컥하기도 했다. 이런 즐거움도 맛볼 수 있는 건 다 그 좌충우돌하던 처음의 시간을 잘 버텨낸 덕분이리라.


  글쓰기는 특히 꾸준함이 중요하다. 처음, 그 길지 않은 낯선 시간을 잘 이겨내고 꾸준히 쓰고 경험을 쌓으면 대작가 반열에 오르는 건 무리일지 몰라도 어느 선까지 그 수준이 올라간다고 믿는다. 나만 봐도 그렇지 않던가. 처음엔 기사의 꼴도 갖추지 못하고 나눈 대화의 내용을 나열하기에 급급했는데, 그 후로 2년 넘게 좋아하는 현대 미술계의 젊은 작가들을 인터뷰하고 다닐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 아니겠나.


  지금, 처음의 시간을 보내는 그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포기하지 않고 그 풍성한 감정들을 계속해서 다채롭게 풀어내기를 바란다. 그러다 보면 모호하던 감정들이 어느새 선명한 단어들로 바뀌어 백지 위에서 보기 좋은 형태로 노닐 것이다. 나 역시 한 단계라도 더 올라갈 수 있게, 오래 머물러 안락해진 현실에서 빠져나와 한 발짝 내디뎌야겠다. 언젠가 저마다 목표했던 봉우리에 올라 인사 나눌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그동안 끄적인 글 몇 편을 올리며 시동을 걸어봅니다.

다시 목표한 산을 오르기 위해서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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