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으로 자라는 아이들
* 일상에 여행을 더한지 3년차 시행착오 *
글쓴 날: 2018년 3월 24일
#여행육아
#삼남매세계여행
#유아어메이징패밀리
오키나와 여행에서 돌아왔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27번째의 여행이다. 2015년 남편은 세계여행을 하자고 했다. 세계여행이라 하면 일상을 모두 정리하고 짐을 싸서 떠나야만 할 것 같았다. 둘째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로썬 참 당황스러운 제안이었다. 시작은 둘째 100일 기념 사이판 여행이었다. 첫 여행이 쉽지 않았지만 가치가 있었다. 우리 부부가 아이들과 어떻게 여행할지 고민할 수 있던 귀한 시작점이었다. 그렇게 일 년, 세상을 만나는 것만으로 감격적인 시간이었다. 세상이 정말 넓구나.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했던 첫 해가 지났다. 2년차, 이제 갈만하다 싶었을 때 사고를 만나기도 하고, 셋째를 만나 임신과 출산과정을 지나면서 ‘세계여행 주춤기’도 있었다. 올 4월이 되면 3년이 꽉 찬다. ‘무제한 한국 경유 세계 여행’이란 이름으로 매달 출국을 목표로 했었는데, 3년 동안 27번의 여행을 했다. 숫자에 집착하면 만족할 순 없지만, 숫자를 보니 인생이 직진하는 공이 아니라 튀기는 공임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아이들과 세계 여행을 하는 동안 즐거웠다. 아이들이 세상 사람에게 받는 호의가 컸기 때문에 눈살 찌푸리는 사람들은 모른 척 넘어갈 수 있었다. 아이들은 세상에서 마음껏 뛰었고 그 곳의 친구들과 쉽게 어울렸다. 비행기를 타는 과정도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공항에서 얌전히 앉아 있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은 비행기란 공간에서 버티는 힘(?)도 생겼다. 울지 않는 다고해서 목소리가 작은 건 아니지만.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다니는 여행을 일상처럼 생각한다. 한국 밖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국내여행의 빈도를 줄여야 했다. 다행히 5인승 승용차에 꽉 차서 움직일 때보다 커다란 비행기가 아이들과 우리의 숨통을 트여 준다. 2년간의 여행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다친 후에도 다시 떠날 용기가 있었다. 사고는 여행이 문제가 아니고 인생의 단면임을 알기에 다시 떠났다.
세계 여행 3년차, 큰 아이가 등원을 하면서 엄마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큰 선물이 ‘시간’이라 믿고 키웠다. 함께 여행을 다니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다는 무수한 근거를 차치하고도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여전히 부모의 사랑과 시간을 원하는 아이지만, 유치원에서 친구 만나는 걸 좋아하는 시기가 되었다. 아이는 원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친구를 만나고 싶어 했다. 매달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이의 시간을 빌리는 느낌이 들었다. 무제한 한국 경유 세계 여행을 5년 계획했다. 큰 아이 4살 반 때였으니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였다. 학령기 아이 부모가 되어가는 시점 우리의 계획이 어떻게 바뀔지 고민이다. 아이는 출석부에 'X‘ 표시가 되는 것을 보고 시간을 가늠했다. 친구들보다 스티커가 적다는 사실에 슬퍼했다. 계획은 부모가 세우지만 자라는 아이의 의견도 반영할 때가 되었나보다. 그만큼 훌쩍 커버린 것 같아서 짠하다. 7살 아이 7살 부모가 된 우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는 올해 큰 과제가 될 것이다.
아이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매달 출국을 하다 보니 부담이 되기도 했다. 일상과 여행을 접목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우리 여행에서 일상과 여행을 번갈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차라리 1년이고 2년이고 작정해서 떠나는 여행자들이 더 쉽겠다는 생각도 했다. 매달 사흘에서 열흘 사이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밀린 빨래부터 부담이다. 어떨 때는 캐리어가 한 달 내내 세탁실에 묵혀있기도 한다. 여행지를 일상에 넣는 것은 성공했는데, 일상에 밀린 빨래를 넣어야 하다니. 설레는 여행인데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빨래와의 전쟁’이었다. 5인 가족 빨래도 보통일이 아닌데, 옷이 충분하지도 않으니 미리 여행 가방 쌀 수는 없다. 어제 입은 옷까지 빨아서 넣어야 출발이 가능하다. 하하하. 그러니 여행이 먼저인지 빨래가 먼저인지. 다행히 주부라는 본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면서 마음에 부담은 조금 덜었다. 앞으로도 세탁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되겠지만.
아이 핑계, 집안일 핑계를 대면서 주춤했던 나의 속마음은 ‘내가 이런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해도 되는 가’였다. 여행 전날까지, 여행에서 도착한 날부터 일로 돌아가는 남편이었다. 부부 간의 좋은 취미를 공유한다고 시작한 여행, ‘저 사람은 열심히 일도 하고 여행도 즐기는 데, 나는 이렇게 즐기기만 해도 될까?’ 집에 돌아오면 여행 사진을 다시 보며 감상에 젖는다. 아이들에게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나누느라 깔깔 웃음이 터진다. 아이들과 여행 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무수한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난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이 모두 편안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부모가 좋아하는 여행지를 더하면 아이들과의 반복된 일상도 바뀐다. 여행지의 설렘과 신선함이 부모에게도 여유를 주기 때문 일거라. 아이들과의 함께 하는 시간동안 여행에 집중하기도 하고, 반대로 여행지에 빠진 아이들 덕분에 자유를 만끽할 수도 있다. 아이들과의 여행은 그렇다. 즐겁다.
우리는 왜 여행을 시작했는가. 목표는 무엇이며, 어떤 일정을 가고 있는가. 5년 동안 세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매달 출국하기로 계획을 세웠지만 인생의 변수는 많았다. 그래도 가보기로 했다. 일상에 여행을 넣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에 빠져 있느라 뒤처리하느라 애쓰는 나를 토닥여주지 못했다. 여행 짐 싸고 짐 풀고 빨래하느라, 아이들 일상에 적응시키느라 정작 여행 계획 짤 틈도 없다며 투덜거렸다. 여행이 너무 좋지만 아이들의 삶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나의 마음은 공짜로 여행을 떠난 사람이 아니었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시간과 돈은 중요하다. 없으면 시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을 일상으로 만들기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여행과 일상을 잘 엮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여행을 가는 데만 힘쓰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다녀와서도 정리하고 숙성시킬 수 있는 것.
10년 전 친구들과의 한 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말이 배낭여행이지, 풋풋한 대학생의 캐리어 여행. 그곳에서 만난 런던을 잊지 못해서 다시 찾았다. 매일 얼마나 셔터를 눌렀던지 세 사람이 하루에 찍은 사진이 1000장을 넘었다. 한 달 여행 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 사진을 다시 보며 추억을 했는지. “우리 그때 그랬잖아. 하하하하하~” 하며 일상의 대화에 여행을 넣으면서 웃었다. 일 년에 한 번 여행을 가든지 매달 여행을 가든지 기쁨의 차이는 얼마나 자주 일상에 여행의 추억을 넣느냐이다. 새로운 여행지를 떠날 때의 즐거움이 있다. 설렌다. 세상은 넓고 가볼 곳은 많다. 여행에서 다녀 오면 그곳을 생각하며 다시 미소 짓는다. 오키나와 사진 한 장 속에 많은 것이 떠오른다. 그 날의 햇살, 하늘의 구름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 깊고 얕음에 따른 푸른 빛의 바다, 그리고 너와 내가 나누었던 대화.
오키나와 여행은 그런 여행이었다. 여행을 계획해보고 여행 자체를 충분히 즐기고자 마음 먹었던 여행. 첫 해 어메이징 했던 사이판과 밤새 준비했던 미국 캠핑카 여행처럼. 전 날까지 빨래를 하는 것도, 짐을 싸느라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던 것도 똑같았다. 여행 다녀와서 캐리어가 거실에 뒹구는 것도, 빨래를 돌리고도 아직 빨랫감이 쌓여있는 것도 그대로다. 다녀오니 몸이 피곤한 것도 같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마음가짐에 따라 즐거울 수도 있고, ‘다시 가고 싶지 않아~’하며 울상 지을 수도 있다. 단지 ‘여행지에서의 여행’만 여행이 아니다. 여행 전, 여행 중, 여행 후를 모두 즐길 수 있어야 진짜 ‘여행’을 일상에 넣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여행 레벨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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