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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May 29. 2021

삼남매 육아에필요한 건 ooo이다

수많은 변수에 한결같이 대처하는 방법

세 아이가 각자의 배움터로 가고 남편도 출근한 평범한 평일 아침. 오랜만에 글을 쓴다.


하루 중 혼자만 있는 시간을 계산해 보면 최대한으로 잡았을 때 대략 4시간. (아이 학교가 더 일찍 끝나는 날은 3시간도 안 된다. 몹쓸 코로나!)

혼자 있어도 아침과 점심을 준비해야 하고 먹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넉넉히 3시간 남짓이 남는다. 모든 집안일과 곳곳에 남은 아이들의 흔적을 치우는 것은 가족들이 돌아온 후로 미루고 내가 하고 싶은 일 - 읽고 쓰고 사색하고 움직이는데 에 쓸 수 있는 시간을 넉넉히 잡아도 이 정도가 전부다.


3시간은 그리 많지도 적지도 않은 시간이다. <나는 4시간만 일한다>는 책 제목대로라면 하루 업무를 다 볼 수도 있는 시간이니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집중하는 시간은 많아야 1~2시간 정도다. 그마저도 실패하는 날이 더 많다. 이쯤 되면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



1. 내가 찾은 첫 번째 이유는 ‘멍’이다.


매일 꾸준히 같은 시간을 혼자 쓸 수 있다면 얘기가 좀 달라질 수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습관이라는 게 생긴다. 매뉴얼인 듯 다른 선택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원하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쓰기도 한다.


코로나 전에 습관을 만들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가족들이 모두 떠난 집에 들어서면 머리가 명령을 내렸다.


‘이제 커피를 내려서 자리에 앉아.’


하지만 일상이 바뀐 후로 지금은 날마다 같은 시간에 혼자 있을 수 없다. 어제 이 시간에는 아이와 서점을 갔고, 그저께는 병원에 있었다. 그 전날은 아침부터 베이킹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 전에는 온 가족이 함께 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기억하고 반복할 데이터가 없는 셈이다. 덕분에 요즘은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질문이 먼저 생긴다.


‘이제 뭐해?’


머리는 생각보다 멍청해서 새로운 명령어를 입력해야 하는 경우 잦은 오류를 보인다.


글을 써.’

글을 써. 그런데 커피는?’

‘아차! 커피 내리고 글을 써.’

‘응. 커피 내리고 글. 그런데 어떤 글?’

‘응? 그러게, 뭘 써야 되지?’


답을 해야 하는 머리가 되려 질문을 한다. 잘못된 프로그램처럼 명령어를 넣고 되묻고 다시 넣기만 반복하는 것이다. 말 그래도 멍하니 뭘 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버리고 만다.



2. 두 번째 이유는 ‘남들은 뭐하지’이다.


요즘처럼 글도 드문드문 쓰고 (실제로 주간민프로는 두 달여를 쉬었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면서도 시간이 나면 관심도 없던 연예인 근황이 궁금하고 남들이 쓴 글을 읽고 싶어 진다. 그리고는 감탄하고 비교하고 좌절하고 부러워하느라 시간을 낭비한다. 명백하게 딴짓만 하는 셈이다.



3. 세 번째 이유는 ‘세포가 죽어서’이다.


성공한 작가들이 왜 매일 일정량의 글을 꾸준히 쓰라고 하는지 요즘 절실히 느낀다. 1년이 넘는 시간을 매일 쓰면서 그동안 실력이 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쉬는 순간 글 쓰는 세포가 죽어버린 건 알겠다. 


사실 마지막 이유로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을 지불하고서라도 뭐든 쓰려고 자리에 앉았다. 이대로 글쓰기 세포를 모두 죽음으로 내몰아선 안 될 듯해서 말이다.



Photo by Christin Hume on Unsplash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야 한다는 말은 진리였을까. 요즘 같아서는 내가 작가를 꿈꿀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해 자꾸만 다른 곳에 시선을 빼앗긴다.


책 읽는 것도 다르지 않아 마치 중요한 일을 놓치고 책을 붙들고 있는 것처럼 불안해하기도 하고 책을 읽지 않을 이유를 순식간에 찾아내는 초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난 못해! 안 해!’


꽤 오래 쉬었던 뇌는 읽고 쓰기를 거부한다. 그러면 나는 이 상황을 이겨낼 의지를 불태우기보다 딴짓에 눈을 돌린다. 악순환이 계속된다.




예상 가능한 인간이 되고 싶다



‘보람찬 하루였다.'


일기에 이렇게 썼다 하더라도 이 정도에 기뻐해도 되는지는 늘 의문이다. 매일도 아니고 며칠에 한 번, 24시간 중에 겨우 한두 시간을 가지고 만족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다. 

다르게 보면 한 시간 정도 예열만으로 높은 거부의 벽을 넘어 성과를 냈으니 성공인 것도 맞는 말이지만 아무래도 이 정도로 만족해서는 더 나은 내일을 꿈꾸긴 힘들 것 같다.


더 나은 내일을 살고 싶다면 목표에 맞는 적절한 습관을 형성하면서 변수에 대처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이때 변수 범위를 너무 넓게 잡으면 습관을 형성하기가 힘이 들고. 루틴을 너무 확고하게 잡으면 변수에 대처하느라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니 주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삶이 단순하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효율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말 같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그것만 매일 반복하는 것. 변수를 최소화해서 '명령-실행'이라는 행동 패턴이 자리 잡게 하는 것. 

절대 쉽지도 않고 가볍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그걸 해낸 사람만이 ‘성공’이라는 단어를 가질 자격이 있어 보인다. 그렇기에 나도 효율적인 삶을 꿈꾼다. 예를 들면 어떤 시간대에 놓인 나를 떠올리면 '책을 읽고 있겠지'하며 예상이 가능하게 말이다.



며칠을 고민한 결과 시간별로 나를 예상 가능하기란 쉽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들도 코로나도 심지어 나의 의지까지도 변수로 작용하는 지금, 어느 시간대의 나를 예상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신 포기 않는 마음가짐 기본값으로 지키기로 마음먹었나는 읽고 쓰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놓치지 않는다면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매번 읽고 쓰고 생각하고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지 않을까.


두 달에만 '주간민프로'를 다시 발행해도, 한 달만에 책 한 권을 읽어도 길어진 변수에 대응했을 뿐 나는 여전히 읽고 쓰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이다. 이렇게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기회가 왔을 때 예상 가능한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날을 기약하며 지금도 시간을 쪼개어 글을 쓴다. 예상 가능한 내일의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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