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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란희 Oct 26. 2022

잠만보가 새벽에 일어난다고?

방해받지 않는 시간 확보

잠에 관한 추억이 많습니다. 중학교 때 과학시간이었습니다. 4 분단 첫 번째 줄에 앉아 선생님을 바라보며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보통 수업 태도는 열심히 들을 때도 있고 가끔 졸기도 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날은 분명 말짱한 정신으로 듣고 있었습니다. 


젊고 두 눈이 유난히 큰 예쁜 과학 선생님이 저에게 다가오시더니 “자니?”라고 말했습니다. 억울했습니다. 전 ‘아니요’라는 대답 대신 오해를 풀고자 이야기했습니다.


“아니에요. 제 눈이 좀 졸려 보이는 눈이긴 해요. 가느다랗고 길어서 종종 졸려 보인다는 말을 들어요. 눈 다 뜬 건데 더 뜰 줄 알았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저 수업 열심히 듣고 있었어요.” 


졸지 않았다는 한마디면 될 것을 선생님께 증명을 하기 위해 묻지도 않은 신체적 단점까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뒤로는 혹시 제가 졸더라도 선생님은 깨우는 일이 없었습니다. 


사실 수업 시간에 자주 졸았습니다. 밤새 공부하고 학교에 오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수업시간만 되면 눈꺼풀이 무거웠습니다. 친구들도 의아해했습니다. 저도 왜 수업 시간에 자주 조는지 궁금했습니다.     




졸음 병은 학년이 올라가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공부 잘하는 친구는 잠이 많아서 한약을 먹고 있다고 했습니다. 전 졸음 병 때문에 한약까지 해달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수업 시간이면 잠과의 사투는 계속되었습니다. 


대박 사건은 대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졸면 서도 꼭 앞에 앉았습니다. 하루는 한참을 졸고 있는데 분필이 날아와 이마에 부딪히며 ‘탁’ 소리를 냈습니다.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부끄러움은 바로 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나타났습니다. 


교수님도 제가 조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힘들었을까요. 분필까지 던질 정도면 말입니다. 고민 중 하나가 ‘왜 밤에 자는데도, 많이 자는데도 수업 시간만 되면 졸음이 쏟아질까?’입니다. 이동하는 차에서도 언제나 잤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대학교에 다닐 때 같은 과 언니들을 만나면 저만 보면 웃기다고 했습니다. 언제나 지하철에서 고개를 흔들면서 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론 모르는 사람 어깨에 나의 무거운 머리를 언지기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첫째 아이가 4살 때 저에게 별명을 지어줬습니다. 


“엄마 인형 같아” 


매일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머리는 질끈 묶고 무표정인데도 불구하고 인형 같다고 하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아이의 손에 들고 있던 인형은 8등신의 긴 금발 머리에 눈이 큰 바비 인형이 아니었습니다. 3등신의 아기 인형이었습니다. 


“엄마 봐봐 아기 인형은 이렇게 누우면 바로 눈 감고 잔다. 엄마도 누우면 바로 자잖아. 똑같지?” 


그렇습니다. 전 누우면 5초 안에 잠이 듭니다. 잠이 안 와서 고민이라는 남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고민이 많아도 고민에 ㄱ~하다가 어느새 잠들어 버립니다. 


아이들에게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 줄 때도 제가 먼저 잠이 듭니다. 아이는 계속 읽어달라며 나를 흔들어 깨우다 안 일어나면 뺨을 때립니다. 유일하게 보이는 살이 얼굴뿐이어서 그랬을까요. 때론 책에 있지도 않은 말을 횡설수설합니다. 그제야 아이는 엄마 손에 든 책을 조용히 빼냅니다. ‘미안. 이미 난 잠들었어.’ 


책 육아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한창 읽어달라는 유아시절에 아이가 만족할 만큼 읽어주지 못해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놈의 잠.  



   

책을 읽고 삶을 바꿔보자 마음먹고 독서를 시작할 때 가장 힘든 것이 독서습관 만들기가 아니었습니다. 책만 펼치면 쏟아지는 잠을 물리치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9시간 자면 낮에 정신이 맑을까 싶어 9시간씩 자보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낮에 졸음이 왔습니다. 7시간은 자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또 여전히 낮에 졸음이 옵니다. 


9시간 자도 7시간 자도 낮에 계속 잠이 온다면 차라리 7시간 자자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전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다 보면 잠과 사투를 벌이다가 30분이 훌쩍 지나갑니다. 잠 깨서 집중력이 올라갈 때쯤 아이들이 집에 오는 시간이 됩니다. 뭐가 이리 안 맞는 건지. 


졸면 서도 계속 읽겠다는 생각은 나중에는 졸리면 그냥 책상에 엎드려 15분 정도 자자로 바꾸었습니다.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고 졸음과 싸우기보다 져주니깐 잠과 싸우는 시간이 줄었습니다. 이를 깨닫기까지 몇 달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졸리면 의식보다 무의식이 더 강해집니다. 


그때 그냥 잠깐 엎드려서 자면 되는 데 꼭 잠과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무의식에서는 낮에 자면 안 된다는 생각이 박여있었나 봅니다. 그러다 시간이 훌쩍 지나면 그냥 잠깐 자면 되는데 왜 그리 버티고 있는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책 읽을 때 실내 온도에 민감합니다. 특히 겨울철에 도서관 온풍기가 너무 새게 틀어져 있으면 양 볼이 빨개지면서 안면홍조증이 올라옵니다. 머리는 멍해지고 집중력이 급속도로 떨어집니다. 찬바람을 쐬고 와도 그때뿐입니다. 건조함과 더운 바람은 쉽게 잠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겨울에 추운 집보다 도서관이 좋았지만 과한 난방으로 인해 잠과의 싸움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지 다들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안에 얇은 옷을 입고 도서관에 갔습니다. 더운 것보다 약간은 싸늘한 게 오히려 책에 빠져들기에는 적정한 환경이었습니다. 


하고자 하면 방법은 어떻게 해서든지 스스로 찾게 됩니다.      




잠이 많아도 새벽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 


그 시간이 새벽 시간뿐이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온전히 그 시간을 활용하기까지는 많은 날들이 필요로 했습니다. 새벽 기상을 이전에도 시도했지만 실패한 날이 99%였습니다. 일어나도 정신은 계속 자고 있는 듯했습니다. 왜 새벽에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차라리 자는 것이 마음 편하고 더 나은 거 같았습니다. 


제가 새벽형 인간 인지 저녁형 인간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저녁에도 졸리고 새벽에도 졸리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상황에서 나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고 밀고 나가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녁형 인간으로 살면 등교 시간에 맞추어 아이들과 남편의 아침식사를 챙겨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늦게 자면 늦게 일어나고 싶고 아침에 기운이 없고 기분도 다운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일찍 일어나는 것이 나와 가족들의 생활 리듬에 더 나은 선택이었습니다. 


잠만보의 새벽 기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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