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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란희 Oct 22. 2022

나는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책을 만나 다행입니다

스물여덟. 퇴사를 하고 새로운 일을 준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때 결혼 3년 만에 기다리던 아이가 우리 부부에게 왔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당연하게 엄마의 몫이라 생각했습니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잘 키울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친정엄마는 일을 하시고, 시어머니는 조카 둘을 키웠습니다. 저희 아이까지 봐달라고 하기에는 어머님이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더 늙으신 거 같아 아니다 싶었습니다. 평일에 어머님께 아이를 맡기고 주말에만 본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아이 하나를 키울 때는 괜찮았습니다. 남편이 회사일로 매일 늦게 들어와도 아이 재우고 드라마를 보며 나름의 시간을 즐겼습니다. 낮에는 문화센터를 가거나 아이 또래 엄마들을 만나 육아정보를 공유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가 둘이 되고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고립된 상황이 되었습니다. 유독 찬바람이 자주 부는 겨울이 시작되고 24시간 집에서 두 아이와 매일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육아가 아니라 생산적인 일. 경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일. 어른들을 만나고 사회에 속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둘째 아이가 돌이 지나고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쯤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임신 전에 하던 일은 야근도 많고 공부도 계속해야 해서 양육을 병행하기에 힘들 거라 생각했습니다. 시간과 돈을 맞바꾸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능력이 좋아질수록 수입도 높아지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사준 교구와 전집을 판매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판매를 위해 영유아 발달에 관한 교육을 듣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고객과 상담하면서 엄마와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전달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습니다. 판매까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부분이 미숙했습니다. 일은 하지만 돈다운 돈은 벌 수가 없었습니다. 일하고 아이들을 돌보는데 체력이 부족했는지 일도 육아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일조차 없다면 나를 잃는 것만 같았습니다.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 무리해서 고액 영업 강의를 들었습니다. 이때 느낀 것은 자신만의 내공, 콘텐츠가 있으면 마케팅을 배워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는 그 핵심가치. 내공이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상담일을 시작하는 분과 함께하면서 일을 배우고자 했습니다. 이때 현실적인 저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능동적으로 일을 찾아서 하지 못하는구나. 그동안 시키는 일만 했었구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니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는구나. 정말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네.’ 이런 생각은 점점 자신을 바닥으로 끌어당겼습니다. 존재가치에 대한 의심마저 들었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지하 100층으로 떨어져 꼭꼭 숨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커서 내 손길이 필요 없게 되면 그때는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게 되겠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들이 이어졌습니다.     



좋은 엄마도 되지 못하고, 사회에서 제대로 일도 하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삶을 왜 살아야 하는 알고 싶었습니다. 태어나긴 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평생 제 곁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거는 아니니까요.      



인터넷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행복에 관해 강의하는 교수님의 영상을 보고 심리상담사가 쓴 글도 읽어 보았습니다. 그들이 최대한 알기 쉽게 풀어냈지만 저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말들이었습니다. 눈앞에 있지만 맛을 볼 수 없는 사진 속 음식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삶이라는 거대한 섬에 홀로 떨어져서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습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숲 속을 헤매며 열매를 찾듯 당장 오늘을 살기 위해 책을 읽었습니다. 한 권을 읽는 동안 새로운 세계를 만났습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다시 허기졌습니다. 매일 먹어야 살 수 있듯이 매일 읽어나갔습니다.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 대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옮겨갔습니다. 사춘기 때 자신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보지 않아 숙제처럼 남아 지금에서야 삶에 대한 질문지를 받았습니다.     



책 속에서 만난 인물들을 보며 나 자신을 비추어봅니다. 그들이 겪은 고통과 삶의 위기를 보면서 내가 가진 힘듦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독립운동가처럼 육체적 고문을 참아가면서 견뎌야 할 정도는 아니잖아. 나 자신 하나만 잘 건사하면 되잖아. 내가 나라를 구해야 할 큰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나와 내 가족을 챙기면 되는데.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지. 전쟁 상황에 살고 있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의 나를, 내 주변을 바라봅니다. 이 정도면 살만하다는 생각에 다다릅니다. 공허한 마음, 미래에 대한 불안은 있지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마음을 채우기 위해 불안감의 원인을 알고 해결하기 위해 계속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기에 해결안은 책을 읽는 것뿐이었습니다. 저에게 책은 동아줄이었습니다. 끊임없는 추락에서 나는 건져줄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독서의 보람을 어디서 찾을까?
첫 번째는 이신이다.
책에는 정신을 기쁘게 만드는 성분과 작용이 있다.
좋은 책은 마음을 가뜬하게 해 준다.
좋은 책은 사람을 고양시켜 큰 뜻을 품게 만든다.
좋은 책은 나를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책에서 얻은 것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 것은 그다음 문제다.
써먹으려고만 읽는 것은 나쁘지만,
읽기만 하고 실제 생활에 활용할 수 없다면 그것 또한 죽은 독서다.
책을 읽어 세상을 보는 안목과 식견이 높고 넓어지는 것은
생각지 않은 소득쯤 된다.
나를 즐겁게 만들고,
나를 깨어나게 만드는 독서를 해야 한다.

    <오직 독서뿐>     




책을 읽으며 나약한 정신을 단단하고 긍정적으로 만듭니다. 책 속에서 만난 인물들을 보며 큰 뜻을 품게 됩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읽습니다. 마음을 채우고 지식을 채우고 나만의 내공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독서뿐이었습니다. 나만의 내공을 만들어 세상에 나가 가치를 전하는 사람이 되는 꿈을 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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