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넬 Feb 07. 2022

스물한 살의 아이유가 하고 싶었던 말.

뮤직비디오 <분홍신>과 안데르센 원작 동화 <빨간 구두>의 리라이팅.

이건 그냥 한 번쯤 해볼 만한 방황


  

 아이유의 팬덤 ‘유애나(U&I)’에서 지금까지 거론되는 논쟁이 있다. ‘너랑 나’가 수록된 정규 2집 <라스트 판타지> 그리고 ‘분홍신’이 수록된 정규 3집 <모던 타임스>. 두 작품 중 아이유의 가수 인생 최고 명반은 무엇인지에 대해 의견이 갈라서고 있다. 10대의 마지막과 20대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라스트 판타지>는 아이유를 대형 스타 반열에 오르게 한 ‘좋은 날’ 이후 첫행보로서 아이유가 지닌 싱어송라이터의 면모와 첫사랑을 대하는 10대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면, ‘과거 명작으로의 회귀’를 보여주며, 스윙, 재즈, 보사노바, 포크의 전통 장르를 차용해 당시 아이유를 뮤지션의 반열에 오르게 하는 앨범이 되었다. 앨범 <모던 타임즈>의 타이틀곡 <분홍신>은 그런 ‘과거 명작으로의 회귀’에 대한 주제를 제대로 관통한다. 앨범 제목부터 시작해서 1930년대 고전 스윙의 느낌을 살리며 뮤직비디오와 음악의 흐름이 극적인 전개를 펼치기 위해 드라마, 애니메이션 음악의 명장 토야마 카즈히코 지휘자의 제작을 받아 완성도를 높였다. 그렇다면 아이유의 진짜 명반은 <모던 타임즈> 일까? <라스트 판타지>일까? 이에 대한 각자의 의견이 달라도 모두가 아는 사실은 아이유는 자신의 나이에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고 그 나이만이 가질 수 있었던 개인적인 감정을 기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기록을 어느새 대중적인 감정으로 바꾸게 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아이유가 23살에 ‘스물셋’을, 25살에는 ‘팔레트’를 낸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팬덤과 대중들이 생각하는 명반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사람마다 인상적이었던 나이와 추억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1살 아이유가 낸 <모던 타임즈>의 타이틀 곡 ‘분홍신’에서 아이유가 전하려던 감정은 무엇일까?     


 뮤직비디오 속 이지은은 헤어진 연인과 다시 만나기를 소망한다. ‘사라져 버린 서머타임’을 다시 찾기 위해 분홍신을 신는 선택을 한다. 가사 초반부 ‘길을 잃었다’라는 가사와는 다르게 다음 가사에서는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지’라고 말하며 장기용과의 재회가 맞는 선택 일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한 선택에 후회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내게 돌아온 서머타임’으로 바뀌어 장기용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고 뮤직비디오 속에서 장기용의 동료들과 하얀 털을 맞으며 나중의 일을 무시한 채 현재를 즐기기 시작한다. 하얀 털이 흩날리는 것이 마치 수학여행 중 베개싸움을 하는 것 같은 큰 일탈의 분위기를 준다. 작품 속 이지은, 장기용과 동료들은 몸에 힘을 푼 채로 바닥에 누워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즉흥적인 사랑과 선택을 하고 있는 모습과 각종 유혹과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순간을 즐기는 도발적인 모습을 보인다. 개인적으로 유희열의 양말을 본 뒤 하얀 털을 다시 보니 하얀 가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당시 아이유(IU)가 이 앨범을 발매하기 직전의 EP <스무 살의 봄>(‘하루 끝‘’ 복숭아‘ 등 수록)의 솔직하고 수줍은 느낌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20대의 모습은 <스무 살의 봄> 과는 같은 궤를 이루지만 ‘기다리기만 하는 내가 아냐’와 같은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이 전 작 타이틀 곡 ‘하루 끝’에서‘나 차가운 척 표정 짓고 있지만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거짓말인데’와는 상반된 자세를 보여준다.     


 작품 속에서의 즉흥적인 순간은 연속되고, 이지은은 또 다른 선택을 한다. 바로 신고 있던 분홍신을 버리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신으로 갈아 신는 것이다. 안데르센 원작의 동화 <빨간 구두> 주인공 카렌은 자신이 선택한 빨간 구두를 신으면, 발을 자를 때까지 신발을 벗지 못했다. 반면 아이유 <분홍신>에서는 하나의 저항 없이 벗겨진다. 장기용이 신발을 벗겨주며 이지은의 선택을 부추기고 당황하지만 끝을 알기에 순간을 남기기 위한 이지은의 결정이다. 후에 벌어질 비극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내 선택에 집중하고 마음껏 방황하는 20대의 모습을 아이유와 이지은이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품의 후반부에 다다를수록 이지은에게 벌어질 비극이 모습을 드러낸다. 버려졌던 분홍신은 이지은을 쫓아오기 시작하며, 이지은이 왜 이런 안일한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나온다. 장기용과의 과거 씬에서 분홍신의 비밀을 아는 이지은은 차마 분홍신을 선택하지 못하고 장기용을 그냥 보내버리고 만다. 그런 후회 속에서 다시 만난 지금 ‘서머타임’은 이지은에게 매우 큰 도전이었고, 그때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이며 ‘너의 시간이 내게 멈춰있길 바라’ 라 말하며 다가오는 분홍신을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체념한다. 물론 그 대가는 가혹했다. 음악 속 스캣(움빠룸두비두비 움 빠둠 빠둠 두비두비)이 끝난 이후 ‘좀 더 빠르게 달려간다’부터 이지은의 선택이 아닌 분홍신의 선택이 된다. 

 

작품 속 이지은은 스윙 사운드에 맞춰 스윙댄스를 추기 시작하지만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표정을 지어본다. 이때 이지은이 독무를 추는 과정에서 총 세 가지 장면이 겹치고, 교차해서 나타나는데 첫째는 장기용과 헤어지는 순간에 있던 장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쓰러질 듯 한 이지은의 춤사위가 보이는 장면, 두 번째는 같은 장면이지만 위치를 다르게 해서 겹쳐 보이게 만든 흑백 장면, 그리고 세 번째 익숙한 듯 군무를 추며 밴드와 합을 맞추는 이지은의 모습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아이유가 자신에 선택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적응해가는 과정이자 흑색으로 변하여 자연스럽게 사라져 가는 과정을 그린다. 하지만 교차되는 장면은 여유롭게 박자를 타며 자신의 박자에 맞아떨어지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교차되는 과정에서 현재의 이지은이 사라져 가는 모습과 대비된다. 하지만 과거에서도 자신감 있게 쭉쭉 뻗는 안무를 하는 이지은도 박자가 빨라지는 ACCEL(아첼레란도,accelerando) 부분이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자기 몸을 가누지를 못한다. 급격하게 변주되는 사운드 속에서 춤을 추는 주체가 ‘이지은’이 아닌 ‘구두’가 된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는 변화되는 상황 속에서 방황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이지은뿐만이 아니라 아이유 자기 자신과 같은 세대를 사는 우리를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유는 작품 속에서 ‘우리 나이가 느끼는 방황’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서머타임’이고 작품 속 장기용을 만났던 순간이다. 결말을 알고도 다시 ‘서머타임’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 이지은의 마지막 모습은 후회보다는 그저 당황한 모습일 뿐이다. 처음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가장 인상적인 추억을 선택한 이지은이 겪어가는 방황 속에서 혼란스러운 이십 대를 나타내는데, 그 이유는 곡을 구성한 방식에 있다. 이 곡은 밴드 사운드를 통한 ‘즉흥연주(improvisation) 기법’으로 만들어진 곡이다. 즉흥연주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거리 연주가 있다. 예정된 합주가 아닌 정해진 주제 속에서 자유롭게 합주하는 방식이며, 노래‘분홍신’에서는 이 즉흥연주 기법을 통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순수한 감정선에 힘을 싣고, 사운드 적으로 절정으로 갈수록 베이스라인을 더 빠르게 만드는 피아노, 후렴과 브리지 부분의 급격한 템포 변화를 통해 전개가 어디 튈지 모르는 효과를 주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들뜨게 만드는 스윙 사운드로 마무리하며 아이유가 생각하는 ‘방황’을 말해준다.     


 이렇게 만들어진 ‘극적인 방황’은 원작 안데르센의 동화에서 안일한 선택에 따른 끊임없는 춤을 추는 벌을 받는 비극적인 원작을 ‘나이의 감정에 솔직한’ 아이유 식대로 해석하여 ‘한 번쯤 해볼 만한 방황’이 되었고, 아이유와 이지은은 그것을 비극이라 생각하지 않는 ‘과정’으로 표현했다. 아이유는 분홍신을 잔혹한 비극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음악과 서사적으로 판타지와 같은 흐름 속에서 안일한 선택으로 인한 방황도 괜찮다고 말한다. 가사 속 계속 바뀌는 자신의 입장도 멋들어진 음을 붙이면 음악이 되듯이 말이다. 한 인터뷰에서 아이유는 “열여덟 살에 데뷔했으니까 제10대는 중간부터 보셨지만, 저의 20대는 완독 하신 거잖아요. 제20대를 쭉 지켜봐 주신 거니까”라는 말을 했다. 아이유는 매번 나이에 관한 노래를 내는 만큼 그 나이를 사랑하고 같이 살아온 사람들을 사랑했다. 이 곡과 뮤직비디오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같은 나이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건 그냥 한 번쯤 해볼 만한 방황’이라 말하는 아이유의 격려가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