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루시아 May 28. 2022

40/40-인생의 부엔 카미노-산티아고 순례길

길 끝에서 가족을 만나면:2022.5.27.

산티아고 순례팀 동료들은 모두 한국에 도착했단다.

카톡에 각자의 무사귀환을 알리며

순례길의 추억에 감사함을 전했다.


긴 길이었고

긴 길만큼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일행!

2인실에서 14인실까지 알베르게를 함께 사용한 동료들이었다. 


코를 골기도 하고

짐을 정리하느라 부스럭 대기도 하고

새벽녘에 화장실에 가느라 오래된 건물의 마룻바닥과

아귀가 맞지 않은 문을 여닫으며

일행의 단잠을 부지불식간에 깨우던 우리였다.


사과한 개, 바나나 한 개를 여럿이 나눠먹고

길 위 바(bar)에서 음료와 빵을 주문해 나눠먹기도

알베르게 작은 부엌에서 푸성귀를 사다 비빔밥을 해먹기도

아픈 다리와 몸살에 각자 가져온 약을 나눠 먹기도

얼큰한 라면을 끓여 한 젓가락씩 나눠 먹으며 탄성을 지르기도 한 우리였다.


수십 년을 모르고 살다

순례길에서 만난 우리는

다름을 다시 배우고

배려를 다시 배우고

인내를 다시 배우고

세상을 보는 방식의 차이를 길 위에서 배웠다.


힘든 여정이 끝으로 향해갈수록

각자의 인내심과

각자의 욕심과 열망

각자의 편안함과 안락함이

타인의 그것과 충돌하며 스스로를 돌아보았으니


순례길은

걷은 길이 아닌

너를

그들을

나를

우리를

인간을

인간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길이였다.


누군가 산티아고 순례길은

혼자여도 힘들지만

단체이면 더 힘들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일주일에 성격을 보고

주일에 인내를 보고

주일에 인성을 보고

한 달 지나 인간을 보니

순례길은 끝이 정해져 있는 임에도

존재를 날것으로 마주하는 길임을 깨달았다.


순례길은 짧은 인생길 같았다.

날마다가 시험이었고 날마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우린 가벼운 인연으로 만난 사이일 뿐인데

순례길의 힘듦으로

동료들은 무거운 인연인 것처럼 마음을 풀어놨다.

왜 그리될까? 생각해보면

사람은 행복한 사건보다 불편한 사건에

더 큰 마음자리를 내주어서 그러지 않을까 싶다.


마음자리는 남이 내게 주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

원인제공이 동료였다 한들 누가 진정 책임이 있을까?

자신이다.


순례길이 끝나고 포르투에 휴가 온 남편과 아들을 만나니

일순간 순례길의 추억과 소소한 일들은 먼 일이 버렸다.

사랑스러운 가족을 만나니 마음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가벼운 인연을 가볍게 헤쳐온 순례길이 감사했다.


남편과 아들과 포르투갈의 베니스라는 아베이로(aveiro)에 도착해 곤돌라를 타니

흐르는 물과 바람에 모든 발바닥의 고통이 씻기는 듯했다.


흐르는 것은 흐르게

불어오는 것은 지나가게

순례길의 시간은 순례길 위에

남겨지고 놓이고 밟히게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인생의 부엔 카미노를 향해 나갈 일만 남았다.

순례길 동료들도 마음자리에 행복을 넣고 부엔 카미노 하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39/40-포르투갈 순례길-산티아고 순례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