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침이 살랑하다. 9월도 아닌데 아침이 선선하다니.. 높은 하늘과 쌀랑하게 부는 바람.. 쨍한 햇볕.. 너무 좋은 계절이다. 여름인데 여름이 아닌듯하고 가을이 아닌데 가을인 것 같고... 묘하게 어긋난 계절감이 감정의 어긋남을 불러일으킨다고나 할까? 20대도 아닌데 20대 같은 마음이 소환되어 하늘을 보며 저절로 탄성을 지르니 말이다.
8월 중순 이삼일 단위로 흩뿌리던 비 자락에 잔디가 자랐다. 자라는 모든 것엔 다 저 나름의 생장이 있어 유독 쑤욱 자라는 잔디가 있는가 하면 주변 잔디가 자라던 말던 수줍고 느리게 자라는 잔디가 있다. 그러니 잔디를 주기적으로 깎지 않으면 마당은 쥐 파먹은 듯 들쑥날쑥하다. 일정하게 자라지 않는다 잔디를 탓할 수 없지만 깎은 지 2주가 지나면 제멋대로인 잔디가 밉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눈에 거슬린다. 사실 들쑥날쑥한 잔디가 눈에 거슬린다는 것이 아니라 내 게으름이 거슬리는 것인데 생각은 자기 마음을 먼저 챙니느라 나를 탓하지 않고 잔디를 탓한다. 아이러니다.
하늘이 파란 어제(토요일) 오후 잔디를 깎았다. 쨍한 햇볕을 따갑게 받으며 잔디를 깎았다. 부웅 모터가 돌아가면 마당이 분주하다. 잔디 깎기 기계를 밀고 나가면 사방에 숨어있던 작은 생물들이 깜짝 놀라 이리저리 펄쩍 뛰며 도망가기 바쁘다. 냉큼 도망가는 그 작은 벌레들! 이젠 익숙하다 못해 귀엽기까지 하다. 잔디 깎기 기계가 잔디밭을 지나가면 긴 줄이 생긴다. 빤지르르한 깔끔한 잔디길 말이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기계에서 내는 소리와 잔디향이 어우러져 마당은 소리와 향으로 가득찬다.
잔디를 깎으면 깔끔하게 정리되는 상태가 좋다. 마음에 쌓인 쓸데없는 감정이 깎이고 빨려 들어가는 듯해서 말이다. 불편하고 어지럽던 감정이 깎이고 신선한 향기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듯하니... 잔디를 깎으며 마음을 수련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시든 장미꽃잎과 주변 잎들이 한 번에 청소돼 말끔해 진다. 깔끔한 잔디 상태를 만들다 보면 늘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딸과 아들을 아파트 상가 미용실에 데리고 가 두 아이들 머리를 새초롬하고 귀엽게 잘르던 때 말이다. 깜찍하게 자른 단발 머리 8살 딸과 밤톨같이 귀엽게 머리를 깎은 3살 아들! 두 아이들이 다 성장해 집을 나간 마당에 잔디를 깎으며 아이들 어릴적 머리깎던 날들이 생각나니.... 잔디 깎기는 그래서 즐겁고 아련하고 후련하고 속시원하다.
여름도 가을도 아닌 토요일 오후! 마당 잔디를 깎으니 그냥 좋다. 풀내음이 가득한 마당! 햇볕이 쨍하고 잠자리 몇 쌍이 한가로이 날고... 잠자리라도 된듯 풀내음을 품고 푸른 하늘에 오르듯 상쾌하다. 여름도 가을도 아닌 푸른 하늘이 열린 날... 잔디 깎기 좋은 날이다.
----여름도 가을도 아닌 토요일 오후: 월요일인데 마음은 금요일 오후 같고금요일 오후인데 막상 놀 사람은 없어 그냥 집에 들어가야 가는 학생 같은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