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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Apr 23. 2024

16. 꿈꾸는 삶은 정말로 그 꿈을 닮아간다는 말.

꿈꾸기와 비교하기를 구분할 수 있을까

1.


나는 교실에서의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

수업하는 일이 재밌고 보람 있다. 드라마 얘기로 열을 올리다 수업하던 소설과 슬쩍 연관 지어 넘어갈 때, 아이들의 집중력이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드라마에서 소설로 이동하고 있는 그 순간,

나는 즐겁다.

친구와 수다를 떨듯 대화가 오갈수록 물이 오르고,

너의 감상도 나의 감상도 인정해 줄 수 있는 너그러운 과목, 그것이 국어이며 내가 국어교사라는 사실도 감사하다.

그러나 즐겁고 감사한 순간은 너무 짧고,

한 달에 한 번 받는 보상은 터무니없이 적다.

신규 시절에 이백만 원이 채 안 되는 월급을 받고 그런 생각을 했었다.

월급이 아깝지 않은 교사가 되리라.

그런데 언제부턴가가 달라져서

월급만큼 일하는 교사가 되리라, 가 되었고

요즘은 본적인 수업과 업무해도 급여에 비해 투입된 나의 에너지는 과하다는 생각을 한다

한 차시 수업을 위해 몇  며칠을 고민하고, ppt를 만들고, 다른 관점과 해석은 없는지 논문을 검색한다.

무엇보다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수업인지도 고민한다. 인강으로 대체 가능하거나, 나 대신 누가 해도 배움이 일어날 수 있는 내용과 수준이라면 굳이 내가 수업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수업 피드백을 여기서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그 고민의 결과가 어떤지는 논외로 둘 수밖에 없어 아쉽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한 차시의 수업을 위한 교사의 고군분투에

이 얼마나 고차원적인 지적 기술을 필요로 하느냔 말이다.


2.


이렇게 자신만만한 데,

편으로는 안 그래도 굽은 어깨가 더 말려들어가는 것 같다.

교직탈출을 꿈꾸며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나 자신이  깜도 못되면서 발발거리는 것 같아 분이 쭈글해지고, 덩달아 학교에서의 내 삶도 쪼그라. 정말로 내가 아니면 안 될 수업을 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다.

최근에 국어선생님들의 서평 쓰기 공부 모임에 참여하면서 나의 부족한 역량을 확인하고 있기 때문다.

확실히 전문적 독자로서 그들의 읽기와 쓰기는 남다르다. 모임 구성원 중에는 학교 안뿐 아니라 학교 밖서도 남다른 능력치를 발휘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이 여럿 계신다. 학생들이 보는 시사잡지와 계약을 맺고 매달 원고를 쓰시는 선생님, 서평단 활동을 하고 계신 선생님, 출판사와 협력하여 유튜브를 하고 계신 선생님, 브런치에서 이미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꾸준히 글쓰기 중이신 선생님 등.

그들이 수업과 평가, 읽기와 쓰기를 바라보는 관점과 사고의 깊이를 감히 흉내내기 어려워서 괴롭다.

흉내를 왜 내니, 너는 넌데.

라고 말할 수 없는 건 나의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한 까닭 테지.

내가 부러워하는 그들 역시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한 건 마찬가지일 텐데.

나는 무엇이 부러운가? 어떤 삶을 꿈꾸나?

아무리 돈을 많이 버는 일이라도 전혀 새로운 일은 싫다.

학교 안에서 잘할 수 있는 일이 학교 밖으로 연결되기를 바란다.

- 지금 내가 하는 일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일,
- 시간과 노력을 들여 쌓은 지적 능력으로 인정받는 일,
- 계속하고자 하는 동기를 불러일으킬 만큼의 보상이 있는 일.

공부모임에서 만난 똑 부러진 선생님들은 저 세 가지 중 첫 번째 단계에까지 나아가신 것 같아 부러운 모양이다.



3.


'교직탈출'을 슬로건으로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이후 진행상황은 지지부진하다. 개학과 동시에 옮긴 근무지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수업과 업무를 정신없이 처리해 내느라 바빴다는 변명이라도 해야겠다.

단지 학교를 벗어나는 게 목표가 아니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시간을 잘 살아내는 일도 중요했기에 수업이든 업무든 최선을 다했.

그러나 을 쓰고 있는 지금에서야 또렷이 들리는 목소리는 이렇게 말다.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어서 그런 거 아니고?


그래,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내가 정말 소망하는 일임을 어쩔 것인가.

내 생활은 앞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3월에 시작한 공부모임은 아직 서평을 써야 할 책이 세 권 남았, 회를 거듭할수록 밑천이 드러나는 나의 역량 - 읽고 쓰기, 깊이 있는 사유를 바탕으로 한 문제의 발견과 대안탐색, 실천하는 일상- 을 안타까워할 것이다.

이 글을 쓰며 다짐하기를,

문득문득 쭈글해지는 기분에 애써 맞서지 않기로 한다.

내가 부러워하는 멋져 보이는 삶과 내 삶은 어떻게 다른 걸,

나는 그들이 왜 그렇게 잘나보일까 자꾸 비교하게 되는 생각도 그냥 내버려 두련다.

다행인 것은 읽기도 쓰기도 수업도, 내가 잘하고 싶은 것들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멈추지 않으면 된 것 아닌가.

비교하며 나아가보자.

꿈꾸기와 비교의 경계를 구분해야 하는 숙제가 새로 주어진 듯 하지만 내가 꿈꾸는 삶의 모습에 닿기 위한 과정이려니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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