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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정 Jul 23. 2023

2화. 지소연 “우리들의 축구로 마음을 움직일 거야”

*2015 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을 앞두고 다음 뉴스펀딩에 게재한 글.


 161cm의 키에 동그란 얼굴, 웃을 때 휘어지는 눈, 귀여운 목소리. 지소연을 처음 실제로 봤을 때 눈에 들어온 것들이다. 그라운드 위에서 강하고 당찬 모습이 익숙했던 축구선수 지소연은 생각보다 아담했고, 생각보다 귀엽고, 유쾌했고, 매력이 넘쳤다.


 한국 여자축구 A매치 최연소 데뷔(15살 8개월), 역대 A매치 최다골(35골), 한국 여자축구선수 최초 잉글랜드 진출(2014년)... 작은 소녀가 써가고 있는 한국 여자축구의 역사를 보면 더욱 놀랍다. 지소연의 나이는 고작 스물넷. 앞으로 그녀가 쓸 역시는 더 무궁무진하다. 올 6월. 지소연이 또 다른 역사를 쓸 준비를 하고 있다. 2015 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에서 생애 첫 월드컵 무대를 밟는다.


 대표팀의 악역, 승부욕의 화신, 그리고 울보


 지소연은 자칭 대표팀의 악역이다. 경기 중 누군가 실수를 하면 선후배 할 것 없이 지소연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아까도 (박)은선 언니한테 한 번 버럭 했어요. (대표팀은 2015 키프러스컵을 위해 키프러스에서 훈련 중이다.) 제가 버릇이 좀 없어요.” 5살 많은 언니에게도 거리낌 없이 소리칠 수 있는 것이 지소연의 깡이고 승부욕이다.


 “언니들이 많이 봐주는 거죠. 제가 막 흥분하면 워~워~ 진정시켜 주고요.” 지소연의 승부욕을 익히 알고 있는 대표팀 동료들은 이런 지소연의 호통(?)에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전에서는 정신을 집중하고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지소연의 승부욕은 어릴 때부터 싹이 보였다. 이문초등학교 2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지소연은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공을 차면서도 절대 지기 싫어하는 아이였다. 오주중학교 진학 후 본격적으로 여자축구를 시작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지소연은 “쉬는 시간에 남자 친구들이랑 축구를 했는데 지고 있었어요. 이길 때까지 계속하다가 수업에 늦게 늦게 들어가서 선생님께 혼이 났었죠”라며 중학교 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지소연은 “지는 습관 들이면 안 되잖아요. 음…… 그냥 성격이 안 좋은 건가?”라며 웃었다.


 스스로를 ‘못됐다’고 표현하는 지소연을 미워할 사람은 없다. 살펴보면 여린 구석도 많다. 지소연은 지난해 ‘2014 인천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북한에 진 뒤 믹스트존 인터뷰 도중 많은 눈물을 흘렸다. 소속팀 첼시레이디스의 일정으로 뒤늦게 8강전부터 대표팀에 합류한 지소연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팀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며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을 연거푸 이야기했다. 시차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눈물의 북한전 바로 다음 날, 지소연은 동메달 결정전을 남겨둔 채 다시 출국길에 올라야 했다.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과 지난 결과에 대한 아쉬움으로 지소연은 공항에서 또 한 번 눈물을 쏟았다. 한 달이 지나 동아시안컵 예선을 위해 다시 파주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 소집됐을 때도 아시안게임의 아픔을 다 털어내지 못했다고 고백한 그녀다.


 지소연이 아시안게임을 유독 아프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녀가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다른 승부욕은 상대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축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제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예요.” 멀리서 지켜보면 큰 슬럼프 없이 선수생활을 이어온 것 같은 지소연임에도 힘든 시간은 분명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더 이상 발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것이 슬럼프였다고 지소연은 정의했다.


 그럴 때마다 지소연은 멀리 내다봤다.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며 어려서부터 큰 주목을 받아온 그녀이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생각하며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지소연이 자만했다’는 주위의 평가가 나올라치면 더욱 자신을 채찍질하며 운동에 전념했다. 지소연은 “그런 시간을 거치고 난 뒤에 스스로 발전했고 나를 뛰어넘었다는 생각이 들면 가장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여자축구선수라서 행복해요


 “지소연이 남자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지소연이 남자였으면 좋겠다.”, “지소연이 남자였으면 정말 대단했을 거야.” “여자로 태어난 게 아쉽다.” 지소연에 대한 기사가 포털에 올라오면 꼭 이런 댓글들이 눈에 띈다.


 전 세계적으로 남자축구에 비해 여자축구의 무대는 작디작다. 네티즌들의 이런 반응은 지소연이 가진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있는, 그래서 그에 걸맞은 관심과 평가를 받길 바라는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지소연의 실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평가이기도 하다.


 정작 지소연은 이런 반응에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지소연은 “오히려 여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요. 남자였다면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을까요?”라고 말했다. 경쟁이 치열한 남자축구에서 높은 수준에 오르기는 그만큼 더 힘들 것이라는 의미다. 지소연이 꿈꾸고 있는 ‘발롱도르 수상’ 역시 메시, 호날두와 경쟁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지소연 역시 남자 축구선수로서의 생활을 상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런던에서 생활하는 지소연은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직접 관람하고 온 날이면 꼭 꿈을 꾼다고 했다. 지소연은 “경기 보고 온 다음날 아침에는 너무 힘들어요. 꿈에서 꼭 축구를 하거든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들과 함께 뛰는 거죠”라며 웃었다.


 시장의 크기와 축구를 하는 환경 면에서 남자축구와 여자축구의 차이는 크다. 하지만 여자축구가 남자축구의 하위에 있다고 보는 것은 어렵다. 지소연은 남자축구에서는 찾을 수 없는 여자축구만의 매력을 설명했다. 지소연은 “남자축구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많은 분들이 축구는 거칠고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자축구는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어요. 한 번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 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마음을 움직이는 축구


 지소연은 이번 월드컵을 굳은 각오로 준비하고 있다. 꿈에 그리던 월드컵 무대를 처음으로 밟는다는 개인적인 성취도 있지만 월드컵에서의 활약이 한국 여자축구에 가져다 줄 선물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소연은 “요새는 축구하고 싶어 하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많지 않잖아요. 하고 싶어 해도 부모님들이 말리기도 하고요. 여자축구의 현실이 어렵고 관심도 적기 때문이죠. 이번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좋은 모습을 보이면 여자축구에 대한 생각도 달라질 거라 믿어요”라고 말했다.


 지소연의 말대로 한국 여자축구의 저변과 인식은 열악하다. 지소연 역시 축구를 시작할 때 아버지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여자가 무슨 축구냐”라는 성화였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더구나 여자아이에게 축구를 시키는 일은 쉽게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소연은 “저는 축구가 너무 좋았어요. 그만두고 싶지 않았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다행히 어머니의 응원이 있었다. 지소연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 핸드볼 선수의 꿈을 키우다 가장 형편으로 인해 포기한 아픔을 겪은 경험이 있다. 딸의 꿈만큼은 지켜주고 싶은 마음으로 지소연을 뒷바라지했다.


 그리고 지소연은 한국 여자축구의 별로 성장했다. 지난해 첼시레이디스에 입단하며 한국 여자축구선수 최초로 잉글랜드 무대에 진출했다. 입단식에서 지소연은 부모님에 대한 질문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지소연은 “지금은 두 분 모두 정말 뿌듯해하셔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면서 몇 년간은 아버지와 연락이 뜸했지만 좀 크고 나서 다시 연락을 하고 있어요. 이젠 아버지도 늘 응원해 주세요”라며 웃었다.


 지소연이 꿈을 키웠던 한국 여자축구의 어려운 환경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4년 기준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여자축구팀은 초등 23개, 중등 20개, 고등 17개, 대학 9개, 실업 9개에 불과하다. 한국은 지소연이 활약한 2010 FIFA U-20 여자월드컵에서 3위, 2010 FIFA U-17 여자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는 등 국제 대회에서 많은 성장을 이뤘지만 저변 확대는 제자리걸음 중이다.


 2010년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여자축구 활성화와 저변 확대를 위해 ‘여자축구 활성화 지원 종합 계획’을 발표했다. 2013년까지 총 49억 8천만 원을 지원해 초∙중∙고∙대학 여자축구팀을 2010년 당시 57개에서 2013년까지 102개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결과적으로는 반짝 관심에 따른 마음만 앞선 정책이었다. 학생 수 자체가 줄어든 데다 학습권을 침해하지 않는 방향의 팀 운영을 바라는 학부모들의 요구와도 상충되는 등 학교체육의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지소연을 비롯한 대표팀 선수들은 입버릇처럼 “A대표팀이 잘해야죠”라고 말한다. A대표팀이 좋은 경기를 하고 좋은 성적을 내야 여자축구에 대한 관심도 살아나고 어린 선수들에게도 희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소연의 각오에는 한국 여자축구를 이끌어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담겨있었다.


 “어린 친구들이 저희의 모습을 보면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마음을 움직이는 축구를 하고 싶어요. 많은 분이 지켜보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선수들은 모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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