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을 앞두고 다음 뉴스펀딩에 게재한 글.
흔히들 여성들이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 세 가지를 군대 이야기, 축구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 그 세 가지를 모두 좋아하고, 또 모두 할 수 있는 여성이 있다.
한국여자축구국가대표팀이 경기 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면 가장 눈에 띄는 선수가 있다. 작은 키에 날카로운 눈빛으로 태극기를 바라보며 각 잡힌 거수경례를 하는 ‘여군 중사’ 권하늘이다. 국군체육부대 제2경기대 소속인 권하늘은 2010년 WK리그 드래프트에서 부산상무여자축구단에 지명돼 현재까지 군인이자 축구선수로 생활하고 있다.
지난 4월 20일 부산상무는 서울시청을 상대로 2-0 승리를 거뒀다. 5연패 뒤 거둔 이번 시즌 첫 승이었다. 부산상무 선수들은 첫 승의 감격과 함께 ‘투 외박’이라는 포상을 받았다. 한 달 반 만에 받은 외박이다.
“경기 이기고 나서 우리 완전히 우승한 분위기였잖아요(웃음). 부대장님도, 경기대장님도 기뻐하셨대요. 그동안 계속 져서 죄송했거든요. 경기에 지고 난 다음날에는 아침밥 먹으러 가는 게 싫어요. 이번에는 자신 있게 아침 먹으러 가야지 했는데 경기서 너무 뛰는 바람에 힘들어서 못 내려갔어요(웃음).”
꿀 같은 ‘투 외박’을 마친 부대 복귀 직전의 권하늘 중사를 만났다. 부대가 있는 경북 문경에서 살고 계신 어머니와 단란한 시간을 보낸 뒤였다. 원래 살던 경기도 고양시를 떠나 군인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문경까지 따라 내려오신 어머니다.
“군팀에 오게 됐을 때 가장 반대하신 분이 엄마예요. 근데 지금은 장기복무하게 된 걸 가장 좋아하시는 분이죠.”
드래프트를 통해 부산상무에 지명된 선수들은 기초군사훈련과 부사관학교 훈련을 거쳐 부사관으로 임관한다. 3년이 지나면 장기복무 신청을 할 수 있다. 권하늘은 장기복무대상자로 선발돼 군인을 평생 직업으로 삼게 됐다.
생각도 않던 군대에 반강제로 입대하게 되는 것이 처음부터 쉬이 받아들여질 수는 없었다. WK리그 드래프트에서 부산상무의 지명 시간은 모든 선수들이 긴장하고 숨을 죽이는 순간이다. 권하늘도 드래프트 결과를 듣고서는 집에서 펑펑 눈물을 쏟았다. 1년 먼저 부산상무에 입대한 친구 유영아(현 인천현대제철)가 문자로 ‘너 우리 팀 뽑혔어’라고 알려줬다. 스물세 살 때의 일이다.
“그때 집에서 나무 보일러를 썼거든요. 울면서 장작 나르고 있는데 영아가 밥 먹자면서 왔더라고요. 울면서 ‘안가~’ 그랬어요. 상무에 뽑혔다는 사실을 잊고 싶어서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열심히 장작을 날랐죠(웃음).”
고민도 많았고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지만, 권하늘은 결국 입대를 택했다. 일단 부딪쳐 보자는 마음이었다. 입단을 거부하면 선수선발세칙에 따라 향후 2년 간 원 선발구단을 제외한 타 구단으로의 입단이 금지되고, 2년 후 드래프트에 재 응시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3년을 채우고 나가야겠다는 마음이었지만 어머니의 뜻에 따라 장기복무자가 됐다. 시쳇말로 군대에 ‘말뚝을 박은’ 것이다.
“3년 지나고 이적시기가 다가오니까 부모님도 저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선택에 만족하고 있어요. 장기복무자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선수 생활 후에도 안정적인 직업을 갖게 됐으니 굉장히 좋죠.”
임관하기 전 4개월의 훈련은 모든 선수들에게 힘든 시간이다. 많은 신인 선수들이 부산상무 입단을 꺼려하는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다. 힘든 훈련도 문제지만 4개월 동안 경기를 뛸 수 없기 때문에 경기 감각이 현저히 떨어진다. 임관을 한 뒤 경기력을 찾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저는 행군이 제일 힘들었어요. 저처럼 조그만 애들이(권하늘의 키는 158cm) 20kg짜리 군장을 메고 걷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깨도 나갈 것 같고, 발도 너무 아프고…… 그런데도 4개월 동안 살이 많이 쪄요. 훈련을 하지만 주는 걸 다 먹어야 하니까요. 저희 부모님을 비롯한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받는 밥과 간식이잖아요. 나오는 거 다 먹어야죠. 남기면 안 돼요. 아, 다행히 화생방은 안 했어요. 제가 훈련 들어갔을 때 마침 신종플루로 난리여서 화생방 훈련이 취소 됐거든요. 어찌나 운이 좋은지……(웃음)”
훈련소 생활 이야기에 권하늘은 신이 났다. 여느 예비역 남성 못지않게 군대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저는 군대 얘기 재미있어요. 남자 코치님들이랑도 군대 얘기하면 잘 통해요. 서로 공감이 되니까요. 1, 2년 차 때는 적응이 안 돼서 힘든 일도 많았지만, 지금은 편해요. 다나까 말투도 부대 내에서는 자유자재로 술술 나오고요. 주변에서 군대 체질이란 소리를 많이 들어요.”
권하늘은 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국가대표팀도 나라를 대표해서 뛰는 것이지만 국군체육부대 역시 나라의 이름으로 뛰기 때문이다. 대표팀과 소속팀을 오가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지칠 만도 하지만 티 내지 않고 최선을 다 하는 이유다. 휴가가 주어져도 다시 부대에 들어와 운동을 하기도 한다.
“숙소 시설이나 운동 시설이 다른 WK리그 팀들보다는 훨씬 좋을 거예요. 아, PX도 있고요. 정말 좋아요. 팀 분위기도 가족적이고요. 이미연 감독님도 언니처럼, 이모처럼 친근하게 대해 주시고요. 어린 친구들이 우리 팀 오는 걸 너무 걱정하거나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군인 선수로서 가장 묘한(?) 순간은? 바로 북한과의 맞대결이다. 국방백서에서 주적이라 표현하는 북한이지만 선수들끼리는 국제 대회에서 종종 만나는 오랜 친구이기도 하다. 지난해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라)은심이랑은 88년생 친구거든요. 어려서부터 봐왔으니까 반갑죠. 시상식 하기 전에 나란히 서서는 저보고 ‘하늘이 니 오래 있는다~’ 이러더라고요(웃음). 만나면 재미있어요. 같이 어깨동무하고 사진도 찍고요. 2013년 동아시안컵 때는 우리가 일본을 이기는 바람에 북한이 우승을 했거든요. 그때는 북한 선수들이 달려 나와서 저한테 울면서 고맙다고 하기도 하고요. 얼싸안고 같이 좋아하고요. 걔네도 제가 군인인 거 알 텐데……(웃음)”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팀 데뷔 경기를 치른 권하늘은 지금까지 A매치 94경기를 뛰었다. 역대 A매치 최다 출전 기록이다. 한국 여자축구선수 최초의 100경기 이상 출전으로 센추리 클럽 가입을 6경기 남겨 놓고 있다.
“주변에서 대단한 거라고 말씀해 주세요. 저는 얼떨떨해요. 어떻게 이렇게 됐지? 훈련받았던 4개월을 빼면 매번 대표팀에 소집이 됐더라고요. 계속 뽑아주시니까 감사할 따름이에요. 그만큼 부담도 생겨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요.”
19살 때 처음 대표팀에 발을 들였을 때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권하늘은 기존 선수가 부상을 당해 대체 발탁됐고 집에서 직접 전화를 받아 그 소식을 접했다. 고양시에는 아버지의 친구들이 ‘권순동 씨 장녀 권하늘, 여자축구국가대표팀 발탁’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진숙희, 김진희, 이지은, 신순남, 김결실 등 당시 쟁쟁했던 언니들과 함께 뛰었다. 막내는 15세의 지소연이었다. 권하늘은 언니들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대표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권하늘의 이름은 꾸준히 대표팀 명단 한 줄을 채웠다. 스스로는 유명한 선수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늘 자신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하는 선수로 자리하고 있다.
어느덧 9년이 흘러 권하늘은 대표팀의 고참 선수가 됐다. 이제는 후배들을 끌어가야 하는 입장이다. 권하늘은 특유의 유쾌함과 끼로 선수단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지난 3월 키프러스컵에서는 연패로 가라앉은 분위기를 위해 각국 선수들 앞에서 대표로 나가 춤을 추기도 했다.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제 권하늘은 6월 열리는 2015 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은 역사상 두 번째, 권하늘에게는 생애 첫 월드컵 출전이다. 고향 집에 플래카드가 한 번 더 걸려야 할지도 모른다.
“대표팀에 뽑힌 다는 것 자체도 영광스러운데 월드컵에 나가는 건 정말 경사죠. 꿈의 무대에 가는 거잖아요. 아, 생각하니까 너무 좋다. 방금 닭살 돋았어요(웃음). 준비 많이 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이 할 거니까요. 저희 스스로도 기대가 많이 돼요. 쉽게 지지 않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