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의 날
내 꿈은 록스타가 되는 것이다. 꿈이라는 게 꼭 이룰 수 있는 것만 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니 그렇게 정하기로 했다. 아마도 평생 내 꿈은 록스타되기일 것이다.
그 비슷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 때부터다. 한창 라디오에 빠져 있을 때다. 특히 MBC FM에서 하던 ‘문희준의 더블임팩트’는 빼놓지 않고 들었는데, DJ가 록 마니아이다 보니 록 장르의 음악이 많이 나왔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역시 록 마니아인 코미디언 이윤석이 나와 특정 밴드나 앨범을 소개하는 코너도 있었다. 그렇게 운명적으로(?) 록 음악에 스며들던 내가 눈을 번쩍 뜨게 된 것은 (어쩌면 조금 진부하게도) 메탈리카 때문이다. 그 유명한 ‘Enter Sandman’이나 ’Master of Puppets’를 라디오에서 듣고 ‘오, 좋은데?’ 하며 덜컥 괜찮아 보이는 앨범을 산 것이 화근(?)이었다. 내가 산 앨범은 1999년 발매된 S&M 라이브 앨범이었다. 메탈리카와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이 협연한 공연 실황 앨범이다. 헤비메탈과 교향악이 크로스오버로 처음 고막을 때리던 순간부터 나는 짜릿함에 몸 전체를 부르르 떨어야 했다.
그렇게 록키드가 됐지만 바로 록스타를 꿈꾼 것은 아니다. 록 음악의 역사를 되짚어 올라가며 알게 된(이 과정에서는 SBS FM에서 진행되던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죽이는” 록스타들은 대부분 당시의 내게 이미 ”아저씨“였다. 그들은 내게 숭배나 경외의 대상이지 롤모델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메탈, 펑크 록, 하드 록 등등을 돌고 돌아 결국에는 나와 동시대에 존재하는 나와 조금은 비슷한 뮤지션들에게 끌렸다. 운이 좋게도 그즈음은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전성기였다. 차세대 앨러니스 모리셋이라 불렸던 에이브릴 라빈과 미셸 브랜치가 있었고, 장르는 좀 다르지만 버네사 칼턴이나 노라 존스도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미셸 브랜치가 장르(얼터너티브 록과 포크에 그런지함을 더한 느낌)적으로나 이미지(검정머리의 혼혈인)적으로나 마음에 쏙 들었고, 무엇보다 기타 치는 모습이 XX 멋있었다.
그러니까 기타를 치고 싶게 된 것은 미셸 브랜치 언니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안방 장롱 위의 통기타가 눈에 들어온 것이 그즈음이다. 아빠가 총각 시절 치던 것이라고 했다. 집에 혼자 있을 때 슬쩍 기타를 내려 살펴보았더니,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터라 멀쩡한 줄이 두 줄인가 세 줄밖에 되지 않았다. 만약 그 기타에 여섯 줄이 다 멀쩡하게 있었더라면 거기서부터 뭔가 다른 이야기가 펼쳐졌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혼자 몰래 기타를 들고 거울 앞에서 이리지리 기타 치는 시늉을 하며 노는 데 만족했다. 나는 때로는 화려한 무대 매너의 프런트 우먼도 됐다가, 껄렁한 기타리스트도 됐다가, 우수에 찬 눈빛의 베이시스트도 됐다가, 하며(드러머는 왜….) 상상 속에서 록스타의 꿈을 키웠다.
처음으로 내 기타를 갖게 된 것은 대학생 때였다. 조금씩 모아둔 돈을 가지고 비장하게 낙원상가에 가서 팔러 기타를 사 왔다. 바디가 꼭 밤벌레 색깔이어서 ‘밤벌레’라는 애칭을 붙였다. 그렇게 록스타의 꿈을 꾼 지 n년 만에 ‘밤벌레’와의 기타 독학이 시작됐다. 나는 밤벌레를 참 사랑했지만 (모든 사랑이 그러하듯) 그 사랑은 고통을 동반했다. 기타 줄을 제대로 처음 잡아봤으니 당연했다. 왼쪽 손 손톱 밑 말랑한 살들이 불에 타는 듯 아팠다. 기타 교본을 보니 원래 다들 그런 과정을 거쳐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생겨야만 기타를 잘 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손가락 끝 고통보다 더 큰 시련을 맞이했다. 바로 신체적 한계였다. 나의 작고 마른 손이, 그래서 예쁘다는 소리를 종종 듣곤 하는 손이, 기타를 치는 데 있어 엄청난 핸디캡이라는 것을 깨닫고 만 것이다. 당최 약지로 6번 줄을 어떻게 잡으라는 건지. 교본 속 사진에 나온 손은 어쩜 그렇게 편하게 G코드를 잡고 있는 것인지. 한 달쯤 홀로 연습을 하다가는 열이 뻗치고 말았다. ‘아, 때려쳐!’
나의 기타 독학은 분노와 좌절에 이은 절치부심, 재차 분노와 좌절로 점철돼 있지만,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물론 그중 많은 날동안 ‘밤벌레’는 그저 인테리어 소품이었지만… (색깔도 좀 누레졌다.) 생각해 보면 다행인 것이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내게 음악적 재능이 그다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있었으면 큰일 날 뻔!) 아이러니하지만 덕분에 이렇게 록스타의 꿈을 접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번 생에 록스타되기는 틀렸지만. 그래서 마음 편히 꿈꾼다. 뭐 어때? 이뤄지지 않을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이, 지지부진한 취미라도 갖고 있는 것이,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나는 계속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록스타되기를 꿈꾸다가 기타 잘 치는 할머니가 될 것이다. 정말 멋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