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99, 촬영 내내 행복했던 우리의 웃음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스튜디오 소품이나 배경 상태도, 사진 촬영도, 직원 서비스도 다 별로였습니다."
"전반적으로 만족했습니다. 배경도 다양해서 좋았고 걱정과 달리 웃으면서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었어요."
스튜디오 촬영 일주일 전, 계약했던 스튜디오 후기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촬영할 때 주의할 점과 스튜디오 특징들을 확인하려고 했는데, 정말 혼란스러울 정도로 좋은 후기와 나쁜 후기가 세트처럼 번갈아가면서 나왔다.
계약할 때는 분명 좋은 후기들만 있어서 믿고 골랐던 건데, 최근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금이라도 스튜디오를 바꿔야 하나, 그나마 후기가 괜찮은 작가님으로 따로 지정해달라고 말씀드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참에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OO스튜디오입니다. 다음주에 신부님 촬영이 있어서 전화드렸어요."
아, 늦었다. 이미 컨펌 전화가 왔으니 이제 와서 스튜디오를 바꿀 수도 없구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작가님 지정이 가능한지 물어보았지만, 예약이 꽉 차 있어서 특별한 사유 없이 촬영 작가가 변경될 일은 없다는 말에 실낱 같은 희망마저 사라져 버렸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부디 이 작가님이 좋은 작가님이기를, 스튜디오에서 불쾌한 경험 없이 기분 좋게 촬영을 잘 마무리하기를, 우리를 예쁘게 사진으로 잘 담아주시기를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다.
촬영 당일 평소보다 몇 배는 오랜 시간을 들여 예쁘게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첫 번째 촬영 드레스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설레는 마음과 함께 스튜디오에 대한 걱정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진에 대한 만족도보다는 서비스나 분위기에 대한 부정적인 후기가 더 많았던 만큼, 촬영 도중 눈살 찌푸리거나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 작가님은 환영의 인사와 함께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제 목표는 신랑 신부님이 행복한 촬영을 하는 겁니다."
스튜디오 촬영이 신랑 신부에게 정말 중요한 이벤트이고 이 시간을 위해 비용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많이 준비했겠지만, 그 무엇보다 오늘 이 시간이 좋은 추억으로 남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앞으로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결혼한 이후에도 모든 시간이 순탄하기만 하지는 않겠지만, 오늘 이 시간에 대한 기억만큼은 평생 변함없이 갈 것이기에 즐거운 시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그 말씀 덕분이었는지 그동안 긴장하고 걱정했던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면서 좋은 분위기에서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표정이 굳어지는 우리에게 계속 장난치듯 유쾌하게 말씀해주신 덕분에 다섯 시간의 촬영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작가님은 촬영 중에 드레스 라인과 헤어 변형 등을 도와주시는 헬퍼 이모님, 간식을 들고 스튜디오에 찾아와 촬영을 도와준 내 친구에게도 계속 이야기를 걸면서, 다 같이 기분 좋게 촬영할 수 있도록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다.
스튜디오에 있는 모든 배경에서, 웨딩드레스뿐만 아니라 캐주얼 의상으로 따로 준비해온 블랙 컨셉까지 전부 촬영을 마친 후, 나와 남자친구는 매우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스튜디오를 나왔다. 다섯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말 즐거웠고,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너무 많이 웃어서 광대가 아플 정도였고, 촬영 중간에 살짝 보여주신 사진 몇 개만 봐도 즐겁고 행복한 모습이 표정에서부터 드러나 있어서 정말 만족스럽고 감사했다.
스튜디오 촬영이라는 행복한 추억을 선물로 받았으니, 고민의 여지없이 좋은 후기를 남길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앨범에 들어갈 사진을 고르기 위해 스튜디오에 다시 방문한 날, 갑자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아쉬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반지샷을 찍고 싶어서 촬영 두 달 전부터 종로와 청담을 돌아다니며 반지를 준비했는데, 막상 촬영 날에는 손가락에 껴두기만 하고 반지만 따로 찍지는 못했었다. 작가님도 반지를 가져왔냐고 물어보셔서 당연히 따로 찍어주실 줄 알았는데, 정신없이 사진 찍다가 깜빡하신 것 같았다. 특별히 손가락을 클로즈업 한 사진도 찍지 못했고, 케이스에 담긴 반지 사진이나 반지를 겹쳐 놓은 사진 역시 찍지 못했다.
꼭 찍고 싶었던 로망의 사진들도 생각보다 아쉬웠다. 큰 창 앞에서 베일을 휘날리는 사진은 스튜디오 샘플 사진 중 가장 예쁘다고 생각해서 매우 기대했었는데, 내가 쓴 베일이 화려하지 않고 특별한 레이스나 무늬가 없었기 때문인지 기대만큼 예쁘지 않고 밋밋한 느낌만 들었다. 결혼사진 중 빼놓을 수 없다는 후라이샷(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바닥 또는 소파에 앉아서 치마를 계란 프라이처럼 동그랗게 펼쳐서 찍는 사진)마저 치마 라인이 완전히 동그랗게 펼쳐지지 않아서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외에도 머메이드라인 드레스를 입었을 때 드레스 라인이 몸에 딱 맞게 잡히지 않았던 점, 다양한 종류의 볼레로가 있었지만 생각보다 나에게 어울리는 것은 많지 않았던 점, 교회에서 만났던 우리의 스토리를 담아 우리만의 포즈로 사진을 남기고 싶었는데 마지막에 시간이 부족하여 작가님과 충분히 소통하지 못했던 점, 촬영 소품 중 하나였던 비눗방울을 너무 세게 불어주셔서 우리 얼굴이 비눗방울에 다 가려졌으나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점 등등 아쉬운 것들이 계속 생각났다.
촬영 당일에는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던 스튜디오 배경, 설렘과 행복이 가득했던 우리의 모습들이 이제는 그렇게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스튜디오 촬영에 대한 아쉬운 마음, 다시 촬영 날로 돌아간다면 꼭 기억하고 되돌리고 싶은 것들을 담아 후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스튜디오 후기를 쓰기 위해 그나마 제일 잘 나온 사진을 찾다가, 촬영 당일 남자친구가 찍어준 동영상 몇 개를 보게 되었다.
마음에 들었던 의상도 배경도 포즈도 아니었는데, 동영상 속의 나는 쉬지 않고 계속 웃고 있었다.
단순히 무표정, 미소, 잇몸 미소라는 촬영용 웃음 3단계가 아니라, 정말 작가님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빵빵 터져서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미소를 짓기 위해서는 오히려 광대를 꾹꾹 내리면서 웃음을 참아야 할 정도로, 촬영하는 순간을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고 있음이 느껴졌다.
웃고 있던 것은 동영상 속의 나뿐만이 아니었다. 휴대폰으로 영상을 촬영하는 남자친구도, 그 옆에서 또 다른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친구도, 같이 웃으면서 서로를 칭찬해주고 있었다. 심지어 헬퍼 이모님까지도 베일과 드레스 라인을 잡아주시면서 촬영 분위기가 너무 좋다며 말씀하셨다.
내가 원하던 스타일에 대해서 작가님과 충분히 소통하지 못하고, 촬영 중간중간 사진 속 우리의 표정과 자세가 괜찮은지 살펴보지 못하고, 배경과 의상과 소품이 사진에서 잘 나타나는지 작가님께 확인하지 못했다는 여러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음은 분명했다.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사진, 구도와 조명과 색감에서 수준 높은 사진, SNS와 결혼 준비 커뮤니티에 올려 자랑하고 콧대와 어깨가 높아질만한 사진은 아니지만, 작가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행복한 촬영, 웃음이 넘치는 추억, 결과보다는 과정을 소중하게 기억하게 되는 결혼 준비의 시간이었음은 분명했다.
결혼 앨범과 모바일 청첩장, SNS와 스튜디오 후기에 첨부할 사진들에는 스튜디오 촬영 날의 순간을 다 담을 수 없다. 하지만 나와 남자친구의 기억 속에서는 평생 그때의 행복한 웃음과 결혼을 준비하는 설레는 마음이 남아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남은 결혼 준비의 과정 속에서, 그리고 새롭게 시작될 결혼 생활 속에서,
눈에 보이는 결과,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칭찬에 대해 욕심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앨범 속 사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고 즐거웠던 스튜디오 촬영의 기억을 떠올리며,
함께 한다는 것, 그 시간을 함께 지나고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하고 누릴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