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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 May 18. 2024

나의 사랑하는 도자기 생활

정말 난 숟가락 하나만 얹은 기분이다.

나는 도자기를 사랑하지만,

음...전투적은 아닌 것 같다.


오랜만에 포스터에 마누라 이름이 실렸다며

남편이 반가워하더라.

난, 본래 감흥이 적은 편이라...

조금 뿌듯하긴 했지만.


부끄럽게도 오래된 박스에서

내 소심한 미니머그를 꺼냈다.

대학원 논문을 쓸 때만 하더라도,

paperclay로 전 세계를 구할 것 같았는데,

지금은 소소한 추억이나 다름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작품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한 과정이 훨씬 더 행복하다.

그러니까,

어떤 것을 만들든 최종 결과물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얘기다.

왜일까?

마음만 먹으면, 하루 100개도 만들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날 아침의 분위기,

나는 얇게 paperclay를 밀대로 밀고,

작은 컵 틀 안에 흙을 채워 넣는다.

어느 쪽으로 텍스츄어를 줄까 잠시 고민하다가,

채워진 틀 안에 손가락을 넣어 표면을 고르게 편다.

내 손끝으로 느껴지는

흙의 두께감과 질감이 나를 고요하게 만든다.

제작시기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손잡이를 뚫지 않았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럼 나는

나에게 손잡이는 손잡이가 아니라,

마치 어린아이 귀를 손으로 어루만지는 처럼

둥글도 얇고 아기자기한 그 무엇이라 대답한다.


나의 의도를 정확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내가 손잡이 모양을 얇고 판판하게 펴서

약간의 슬립(접착용도의 무른 흙)을 묻혀

조심스럽게 형태를 완성한다.

너무 반듯하지도 거칠지도 않은 그 중간 정도의 어딘가.

누군가 또 한 번,

'당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무엇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난 여전히,

가늘고 길고,

무겁고 두껍지 않고,

차갑고 단단하지 않은 부드러움이라 대답하겠다.


현실 속의 내 성격은 짤 없는 조선생인데,

조작가의 작품세계는

여전히 모호하고 단정 짓기 어렵다.


뜻깊은 건  

이번 전시수익을 학교 발전기금으로 기부한다하니,

건너 동 사는 후배가 흔쾌히 구매를 결정하더라.

'우린 함께 하는 거야.'


문득,

흙에 종이를 다시 섞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또 알아.

썩은 감자에 새싹이 돋아 온 밭을 뒤덮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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