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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 Jun 25. 2024

Collector

디자이너 박종서

# 2004년 여름

"석사학위 청구 전 작품을 구매하고 싶은데요."

"제가 연구실로 올라갈까요?"


 연구실 문을 열면서,  며칠 전 보았던 신문기사가 떠올랐다.

 오랫동안 자동차 디자이너로 일했고,

1세대 디자이너로서 이제는 후학을 양성하고자 대학으로 왔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유명하신 분이 전화를 주실 줄 몰랐어요. 영광입니다."


 박종서(1947~)

 35년간 현대자동차에서 근무, 국민대 교수 역임.

 현재 자동차 디자인미술관 FOMA 대표.


 스물아홉의 나는 마흔아홉,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용감하고 도전적이었다.

 영광이라는 다소 수줍은 인사 뒤에, BlaBlaBla 나를 설명했더니, 당신 딸과 비슷한 나이인데, 굉장히 어른스럽다는 말씀을 하셨다.


 당시 나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대학생 같은 얼굴이었지만, 유부녀였고,

 20대를 오롯이 국민대에서만 보낸 젊은 원로였기 때문이다.

CHO, MIRA With Paperclay 2004

 오랜만에 펼쳐보는 논문이다.

 스물아홉의 나는 참 아름다웠다.


# 2024년 여름

 "안녕하세요, 작가님. 작품을 저희 갤러리에서 전시하고, 판매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십자가'를 테마로 작품을 수집 중이지만,

크게 주제에 얽매이지 않으며, 동문전에서

 내 작품이 마음에 들어 연락을 주셨다는 얘기다.

더운 여름 날, 다시 집을 짓기 시작했다

나는 작업을 사랑하지만, 전투적이고 싶진 않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만큼만 작업을 하고 싶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작업을 하는 순간 나는 행복했기 때문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말을 전했다.

참으로 이기적인 작업관인 것 같다.


하지만,

아주 오랜만에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을 다시 만났다.

<꼴, 좋다> 박종서 지음 2010

Yoon이가 애기였을 때,

우연히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익숙한 이름이 있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자연에서 배우는 디자인.

그 내면에 있는 기본 형태를 알아보는 것,

그것이 아름다움의 시작이다.


혼자서 책장을 넘기다 살짝 눈물을 훔쳤던 것 같다.

나의 시간은 어딘가에 멈춰있고,

이대로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중간에 교수님께서 홍어 뼈를 바르기 위해,

삭힌 홍어를 몇 날며칠 베란다에 걸어두었다가 사모님께 잔소리를 들었다는 부분에서 웃음이 터졌다.

우리집 뒷 산, 우연히, 딱

꼭 뭔가를 의도한 건 아니지만,

책 자료를 찾다가 같은 이미지를 발견해서,

순간 놀랐다.


나는 저 나무를 보면서,

알 수 없는 큰 에너지를 느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누군가의 선택으로 내 곁을 떠난 작품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어떤 이유로 내 작품을 선택했을까?

나는 과연 어느 부분에 재능이 있을까?


신기한 것은

그날의 눈물이 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Yoon이는 이제 장성했고,

나는 소소하게 작업을 하고 있다.

스물아홉의 나만큼 용감하진 않지만,

마흔아홉의 나는 느긋하고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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