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은 뒷동샘의 권유로
집 앞 단설유치원에서 보내는 중이다.
지금 하고 있는 기초학력이 교육부 늘봄 정책으로 예산이 축소되면서, 긴 여름방학의 기회였는데...
참... 그렇다.
고3엄마는 누울 수도 없는 느낌이랄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다.
여름이 심심할 수도,
이른 사춘기 초등생보다
유치원생의 순수함이 그립기도,
통장에 찍히는 숫자보다
내가 여전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중요했다.
Yoon에게 내가 어떤 엄마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엄마는 적어도 내게 도전적이고 강인하다.
#1
"선생님 이름은 뭐예요?"
"안 가르쳐 줄 거야."
"뭔데요?"
"다음번에 만나면 알려줄게요~"
가끔 나는 일반적인 선생님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가히 교육적이지도 비교육적이지도 않은 경계에서 적어도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자율권을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2
"꼬끼야~꼬끼야~"
"꼬끼오예요. 꼬끼오~"
"성생님, 어데 내가 아라요"
태어나면서 코로나였고, 코로나와 함께 성장한 아이들이라 그런지 발음과 대화법이 미숙한 특징이 있다.
거기에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특정 아이를 보면서
경계성은 부모가 민감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정상 궤도로 오르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3
"학생은 전공이 뭐예요?"
"어떤 전형으로 입학했나요?"
"수능 최저를 맞추는데, 어느 과목이 가장 어려웠나요?"
유치원에 출근했던 첫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학생 근로장학생이었다.
한국 장학재단에 신청을 해서 파견된 학생들이었는데,
더 놀라운 것은 모두가 국*민*인이라는 것이다.
(간단한 질문을 뒤로하고, 나는 궁민아웃을 했다.
자! 내 밑으로 집합)
"수리 논술도 계속하다 보면, 잘하게 되는지, 주변에 성공한 사람 있는지 알아봐 줘."
몇 주전부터 논술을 시작한 Yoon이
나에게 던진 과제였다.
내가 아는 사람은
문과 삼수 조카, 재수 정시 광운대 말고는 없는데,
유치원에 가득한 대학생이라니.....
나는 본격적으로 조사에 착수했다.
#4
"선생님, 여기 오래 계셨나요?"
"아뇨, 오늘이 사흘째 되는 날인데요."
"어머, 어떻게 아이들 이름을 다 아세요?"
"제가 그쪽으로 재주가 좀 있습니다ㅎㅎ"
오전에 계신 대체 선생님은 7살, 5살 아들 둘을 두었고, 초등 진학으로 어디가 좋겠냐는 질문을 했다.
살짝 자랑은 아니지만,
자기 아들이 똑똑하다고 하더라.
음, 그렇다 이거지.
"자, 선생님. 보세요. 똑똑한 아이들, 평범한 아이들, 특이한 아이들. 모두 섞여 있지요."
"KJS는 쉽지 않아요. 하지만, 어느 순간 집중력을 확 끌어올리더라구요. 그런데, 어머니가 쌍둥이를 두셔서 양육이 어려울 거예요."
"MCE은 경계성이에요. 하지만, 블럭놀이를 하는 걸 보면, 공간에 대한 해석이 아주 뛰어나죠. 나름 이야기도 있구요. 펜타곤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쳤어요. 균형을 잡아야 할 텐데..."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데,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될 성싶다가도 좋은 땅을 만나지 못하면,
그저 평범한 잎으로 자라날 텐데.
될 성싶지 않다가도 좋은 땅을 만나면,
바뀔 수 있을까?
6모, 9모를 기준으로 대학을 정하라는 건
자신에게 너무 맥 빠지는 일이라고 Yoon이 그러더라.
운명을 그렇게 정해 버리면,
자신의 노력은 무의미한 게 되니
자기는 수능을 향해서 달려갈 거라고,
그게 맞는 거라고.
나에게는 참 과분한 아들이다.
30도를 넘는 이 더운 여름,
나는 또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나를 향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여주는 아이들이 마냥 귀엽다가도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순간에는 꽥~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여전히 재미있고 궁금한 게 참 많다.
D-99
지금의 이 시간이
언젠가 그리워질 거야.
우리 모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