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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Apr 19. 2023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전시 리뷰

모네와 피카소, 아름다운 순간들

2021년  7월, 이건희 회장의 소장품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되어 국민들에게 선보이기 시작한 이후로 단 한 번도 티켓팅에 성공하지 못하다가 2023년 4월 9일은 서울관, 16일은 과천관의 이건희 컬렉션을 관람하게 되었다.


갑자기 티켓팅에 도전하고 실제로 성공한 이유는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워진 사회 분위기와 비교적 업무량이 줄어든 일상의 변화 덕분이 아닐까 싶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2023년의 봄이 유난히 아름답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우리나라 미술계의 거장 '이중섭'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서양 미술계를 이끌었던 8명의 거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중섭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이라는 대한민국의 가장 암울한 시대를 살아간 예술가라면, 이 전시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은 '벨 에포크'로 불리는 파리의 전성기를 겪긴 했지만, 몇몇 작가들은 제1차세계대전, 러시아혁명, 스페인내전, 제2차세계대전 등 인류의 비극의 중심에 있었다는 점에서 '영웅은 난세에 등장한다'는 말이 예술계에도 적용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은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컬렉션에 포함된 마르크 샤갈, 살바도르 달리, 카미유 피사로, 클로드 모네, 폴 고갱,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호안 미로의 회하 7점과 파블로 피카소의 도자 90점을 소개하는 전시다.


이 전시가 조금은 특별했던 것은 각 화가의 일대기와 작품을 소개하는 것에서 나아가 각 작가들 간의 관계를 조명한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미술의 중심지인 파리에서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혹은 동료로 만나 교류하며 서로의 작업을 응원하고 지지했다.


'카미유 피사로'는 파리 근교의 풍투아즈에 살며 그곳의 전원 풍경과 대도시 파리의 모습을 즐겨 그린 인상주의의 거장이다.  그는 젊은 작가들의 발굴과 지원에도 적극적이었는데 '폴 고갱' 또한 그의 제자였다. 


증권 거래인으로 일하던 고갱은 피사로가 참여했던 1874년의 《제1회 인상주의 미술전》을 접한 뒤 화가로의 전업을 꿈꿨다. 피사로는 자신을 따라 풍투아즈로 이주한 고갱이 인상주의 풍경화를 완벽하게 그릴 수 있도록 지도했고 《인상주의 미술전》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피사로의 응원과 지지는 고갱이 무명의 화가에서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성장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첫 섹션은 피사로와 고갱의 아름다운 사제 관계를 다룬다. '고갱'의 <센강 변의 크레인>(1875) 전시의 첫 회화 작업으로 등장하는데 파리가 지금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정비되기 전의 파리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고갱은 근대화된 대도시 파리의 풍경보다는 파리 근교의 전원 풍경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는 것에 더 관심을 가졌고, 결국 1891년 파리를 떠나 남태평양의 타히티로 이주해 이국적인 자연과 인물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제작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갱의  그림 <두 타히티 여인>, <타히티의 연인들> 등은 그의 말년의 화풍을 그대로 담고 있는 작품이다. 자연 안에서 온전히 존재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탐구하고자 했던 고갱은 1903년 자기가 사랑한 타히티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카미유 피사로는 인상주의 미술 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작가이자 젊은 작가들의 성장을 도왔던 훌륭한 스승이었다. 젊은 작가가 주축이 된 신인상주의 미술 운동에도 적극 가담하였는데, 이 그룹에서 자주 사용했던 기법인 점묘 기법으로 그린 <풍투아즈 곡물시장>(1893)이 전시되고 있다.


피사로는 60대의 나이에 젊은 작가들이 주축이 된 신안상주의 운동에 참여할 정도로 세대 구분 없이 예술 활동에 진심이었던 작가였고, 고갱, 반 고흐, 앙리 마티스, 폴 세잔 같은 미래의 거장들이 화가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 스승이었으며, 인상주의와 그 이후 세대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했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고갱이 피사로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것은 두 그림을 함께 두고 보면 납득할 수 있다. 피사로의 작품은 점묘 기법이 추가되어 있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을 사랑했던 두 화가의 작품 세계를 찬찬히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두 번째 섹션에는 모네, 르누아르, 피카소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쇼 미더 머니'와 같은 힙합 프로그램을 보면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Respect'라는 단어다. 같은 예술가로서 당신을 인정한다는 어쩌면 가장 극찬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벨 에포크 시대에는 예술로 싹튼 우정과 그들 사이에 존재했던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가 꽃피웠던 시기기도 했다.


클로드 모네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인상주의 미술가들 중에서도 특별히 친분이 두터웠던 화가였다. 두 사람을 파리 근교에서 함께 야외 풍경을 그리는 일이 많았는데 이 과정에서 자연의 색채와 형태가 빛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관찰하게 된 이들은 그 순간을 포착해 그리는 것에 큰 관심을 가졌다.


모네는 물과 안개, 눈과 바람 등 유동적이고 변화가 많은 자연의 풍경을 반복적으로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르누아르는 야외 풍경 못지않게 카페나 유원지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을 즐겼다. 1881년 르누아르는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르네상스 미술에 매료되 고전적인 회화를 주로 그리기도 한다. 


특히 <노란 모자에 빨간 치마를 입은 앙드레(독서)>(1917-1918)를 제작하던 해에는 파블로 피카소 역시 이탈리아에서 고전주의 미술을 재발견하면서 르누아르 작품들로까지 그 관심이 이어지게 된다.


1904년 고향인 고향인 스페인을 떠나 파리에 정착한 피카소는 불과 10여 년 만에 청색시대, 장밋빛시대, 입체주의시대를 거치며 젊은 거장의 반열에 오른 상태였지만, 르누아르의 작품은 그에게 새로운 탐구의 대상이 되었다. 1919년 피카소는 그해에 타계한 르누아르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거장 르누아르에게 바치는 피카소의 존경의 마음 그 자체였다.


인상주의라는 명칭이 <인상, 해돋이>(1872)라는 클로드 모네의 작품에서 유래했을 만큼,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가가 바로 모네다. 그는 특정한 대상의 형태와 색채가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관찰해 다양한 연작을 제작했는데, 《수련》 연작도 그중 하나다.


하늘과 연못, 구름과 수련이 뒤섞여 하나의 흐릿한 평면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백내장으로 시력을 상실해 가는 과정에서 《수련》 연작을 그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네는 인상주의 미술을 통해 대상을 평면적으로 그리는 평면성에 대한 탐구를 이어나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련》 연작은 너무나도 유명한 그림이기 때문에 별로 감흥이 없었는데, 실제로 작품을 마주하니 모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왜 그의 그림에 빠져들고 그가 수련을 그렸던 정원을 찾아 사진을 남기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캔버스에 담겨 있는 연못과 수련 그리고 안개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평안해지고 나도 모르게 행복한 감정 속에 빠져들게 되었다. 하나의 대상을 수없이 그려낸 거장의 그림에는 이렇게 큰 힘이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세 번째 섹션에는 피카소, 미로, 달리가 함께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국가로 연결되어 있다. 바로 '스페인'이다. 파리는 이미 전 세계의 유명 화가들이 유입되어 있었는데 이들을 가리켜 '에콜 드 파리'라 불렀다.


피카소와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는 스페인 출신의 작가들이지만 이들이 서로를 만난 장소는 파리였다. 미로는 1920년 파리를 처음 찾았고, 그곳에서 이미 성공한 작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피카소를 만났다. 피카소는 미로가 파리에서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이 만남을 계기로 두 사람은 평생에 걸쳐 친구이자 동료로서의 관계를 이어나갔다. 


6년 뒤인 1926년에는 달리도 피카소를 만나기 위해 처음 파리를 찾았고, 이때 달리에게 피카소를 소개해 주고, 2년 후에는 초현실주의 작가들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며 미래의 초현실주의 거장 달리의 등장을 가능하게 한 이가 바로 미로였다.


스페인 출신의 피카소, 미로, 달리가 파리에서 서로의 활동을 응원했던 모습은 국제적인 미술 중심지였던 20세기 초 파리의 상황을 잘 드러내 준다. '에콜 드 파리'는 각자의 고유한 문화적 전통과 파리에서 접한 새로운 미술 경향을 결합한 외국인 미술가들의 스타일이 되기도 했다. 피카소는 입체주의를 필두로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한 작가였지만 늘 고국의 문화적 전통을 잊지 않았고 스페인의 전통 기예인 누우를 작품의 주제로 다양하게 활용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였다.



<칸타우로스 가족>(1940)은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마 종족 켄타우로스와 이들의 몸에 있는 육아낭에서 아기들이 나오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달리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혀 온 강박증과 성적 환상에 대한 해답을 정신분석학 이론에서 찾아내는데, 그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분리되는 순간 인간이 최초의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된다는 정신분석학 이론에 심취했고, 이 때문에 자궁과 유사하면서도 언제든지 그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육아낭을 가진 켄타우로스 종족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꿈과 무의식, 때로는 정신 착란의 상태에서 본 기이한 풍경들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 달리의 작품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달리의 이러한 특이하면서도 환상 속에 있는 듯한 작품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불우한 어린 시절을 알아야 한다.


살바도르 달리는 원래 그가 태어나기 전에 먼저 태어났었던 형의 이름이었다. 그의 형이 아주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달리의 부모님은 자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곧이어 태어난 달리에게 형의 이름을 붙이는 것도 모자라 죽은 형을 대하듯 달리를 대하기에 이른다. 달리는 자신의 이름을 갖지 못한 채 타인으로 어린 시절을 지낼 수밖에 없었다. 정체성의 혼란과 정신적 압박 위에 그의 인생을 세워져 갔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불우했던 유년기 때문에 우리는 천재 작가의 뛰어난 작품을 마주하게 되었다.


호안 미로는 1920년대 초 파리에서 초현실주의 미술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달리가 대상을 고전적으로 그리는 방식의 초현실주의 미술을 제작했던 것과는 달리, 미로는 무의식이나 환각 상태에서 대상을 즉흥적으로 그려내는 자신만의 초현실주의 미술을 만들었다.


우연성과 즉흥성에 기반해 작품을 제작하는 것을 중시했던 만큼, 미로의 그림은 대상을 기호처럼 단순화해 그리거나 즉흥적으로 그린 드로잉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미로는 작품에 새, 별, 밤 등을 주로 그려 넣었는데 자유롭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초현실주의 그림은 직관적으로 보고 우리의 뇌로 정보화하는 것에 어려움을 주는 화풍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은 이 그림이 무엇을 그렸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직관적으로 알려준다면, 초현실주의는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을 역으로 좇아 그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를 함께 상상해야 한다.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스토리의 감동과 상상을 통한 작가와의 교감. 둘 중 어느 것이 좋은지는 각자의 취향에 맡길 수 있으니 우리는 얼마나 축복받은 세대인지 다시금 실감케 한다.


연예인의 연예인이 있듯. 화가의 화가도 존재한다. 샤갈과 피카소의 관계가 그렇다. 마르크 샤갈은 고향인 러시아를 떠나 미술 중심지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에 작은 작업실을 구한다. 여전히 고향의 풍경과 사람들을 그리면서도 당시 파리에서 유행하던 입체주의 미술의 영향을 받아들여 화면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분할하는 구성법을 시도한다. 입체주의 미술의 영향력이 절정을 구가하던 시기에 파리에서 활동을 시작한 만큼 샤갈 역시 그 운동을 주도했던 피카소를 직접 만나고 싶어 했지만, 이들의 만남은 쉽게 성사되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뒤이은 러시아 혁명의 여파로 샤갈은 10여 년간 고향에 머무르게 되었고 피카소를 만나지 못한 채 파리를 떠나게 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1914년에는 <피카소를 생각하며>라는 작품을 그리에 이른다. 유태인이었던 샤갈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에 체류하는데, 이 시기에 피카소에게 보낸 편지 덕에 두 사람은 전쟁 종료 후인 1940년대 말 드디어 만나게 된다.


이들의 만남이 이루어진 장소는 파리가 아닌 남프랑스의 발로리스였다. 발로리스는 피카소가 도자기 제작에 열중하던 장소로 두 사람은 마두라 공방에서 함께 도자기를 만들면서 오랜 기다림 끝에 성사된 만남을 순간을 만끽했다.


샤갈의 회화에는 염소나 물고기 같은 동물들, 꽃과 정물,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는 사람들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풍경들이 가득한데, 샤갈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주제들은 피카소의 도자기에서도 발견된다. 인간, 동물, 자연이 함께하는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이야말로 피카소와 샤갈이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가치였기 때문이다.



마르크 샤갈은 꿈과 환상의 세계를 다루지만, 그의 인생은 그리 평탄치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으로 파리에서의 활동을 오래 이어가지 못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고향인 러시아를 떠나 미국으로 피신하기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하늘을 나는 연인의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 그의 부인이자 뮤즈 벨라마저 사망하기까지 한다.

모든 전쟁이 끝나고 파리로 돌아온 샤갈은 수많은 고난을 뒤로한 채, 다시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삶의 순간을 노래하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전시되어 있는 <결혼 꽃다발>(1977-1978)은 그가 말년에 되찾은 새로운 사랑과 행복의 순간을 담아낸 샤갈의 대표작이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밀하게 그린 것이 아니라 형체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흘려 그렸다. 하지만 오히려 작품은 더 돋보인다. 전쟁과 혁명을 거치며 느꼈을 인생에 대한 허무가 흘림으로 표현되었다면, 그 안에 꽃과 연인들이 주는 아름다운 모습은 그럼에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닐까 나만의 감상으로 이해해 본다.



이번 전시에는 피카소의 회화 대신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도자기들이 가득했다. 피카소가 파리에 온 첫해인 1900년에 그는 고갱의 도자 작품을 처음 본 뒤, 도자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지만 피카소가 직접 도자기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말 남프랑스에 체류하면서부터인데, 흙을 빚어 형태를 만드는 조각적 속성과 도기 위에 그림을 그리고 채색하는 회화적 속성이 결합된 것 또한 피카소가 도자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판화처럼 같은 형태의 도기를 여러 점 제작하는 것이 가능한 도자기의 특성은 피카소가 도자 에디션을 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1947년부터 1971년 사이 총 633점의 '피카소 도자 에디션'이 만들어졌고, 형태나 주제가 상이한 에디션들은 각각 25개에서 500개까지 제작되었다.

피카소는 자신의 고향 스페인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도자기에도 그대로 옮겨두었는데, 스페인 전통 그릇 모양인 가운데가 움푹 파여있는 형태로 제작을 하는가 하면, 투우 모습을 그려 넣기도 했고 자신이 아끼는 강아지의 모습으로 도자기를 제작하기도 했다.

초현실주의, 입체주의의 거장으로만 이해하던 피카소에 대한 이해도가 더욱 확장되었고, 소재와 기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창작혼을 다시 한번 존경하게 된 기회가 된 전시였다.



이건희 회장은 동일한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는 '입체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특히 이러한 사고로 예술을 감상하면, 한 편의 소설, 작은 세계를 볼 수 있는데, 미술 작품의 감상에도 입체적 사고를 적용하면 새로운 차원에 눈을 뜨게 된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 전시를 관람하고 느낀 게 딱 이건희 회장의 말과 같았다. 전시 기획 자체가 한 편의 소설 혹은 동화를 읽은 것처럼 생생했다. 19세기의 파리를 그대로 거닌 것 같은, 그리고 그 길 위에서 피사로, 고갱, 모네, 르누아르, 달리, 미로, 샤갈, 피카소를 모두 만나고 온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전시 기획뿐 아니라, 전시 디자인도 이러한 분위기 연출에 신경을 쓴 게 느껴졌다. 파리의 하늘을 그대로 옮겨 온 듯 다소 회색빛으로 구성된 전시 공간은 작품을 보기에 무척이나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밝기가 조절되는 전구를 쓴 것은 정말 큰 효과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파리의 낮과 밤을 거닐며 그 시대로 마치 타임 슬립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이 각 시대를 시간 여행하면서, 흠모했던 예술가들을 만나고 그 시대의 분위기에 흠뻑 취하는 장면이 그대로 떠올랐다. 하지만 영화의 주제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가 살았던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를 그리워하고 흠모하며 살아간다는 것, 그렇기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도 누군가가 그토록 바라는 이상향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현재에 충실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떠오르기도 했다.

다시는 오지 않은 '벨 에포크', 즉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시대. 그 시대를 그리워하기보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을 내 인생의 '벨 에포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을 살아가고 살아내는 우리 모두의 인생이 '벨 에포크'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의 전시 관람 후기는 여기에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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