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람살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정은 Nov 12. 2020

산책 예찬

사람살이

 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산책을 하면서 느끼는 한가한 마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또 산책을 하면서 사색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좋아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는 꼭 산책을 한다. 정해진 공간에 앉아서 어색한 시간을 보내느니, 한산한 곳을 걸으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들이 더 정겹고 즐거운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각박한 생활을 살면서 산책을 하는 시간은 삶의 고단한 부분을 내려놓는 시간과도 같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어깨에 큰 짐을 메고 서있는 것처럼 어색하고 힘이 들지만, 걸으면서 주위의 사물을 관찰할 수 있는 산책은 그런 어색함과 짐들을 사라지게 한다.


 10여 년 전 친구와 함께 부산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1박 2일을 계획하고 부산의 여러 곳을 경험할 생각에 부품 마음으로 떠난 여행이었는데, 마음과는 다르게 힘든 점이 많았다. 하지만 아직도 그 여행이 잊혀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태종대 산책 때문이었다. 워낙 산책을 좋아하는 터라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설렜다. 그런데 이해가 가지 않았던 점은 입구에 줄지어 서 있는 택시들이었다. 택시기사들은 올라가는 사람들마다 붙잡으며 타고 올라가라고 설득했다. 태종대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데, 삼천 원. 엄청 바가지였다. 돈도 돈이지만 좋은 산책로에 택시라니 상식상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나 나이 드신 분들이 걷기에는 무리가 있는 길이었지만 굳이 택시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고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고불고불한 현대식 아스팔트 바닥, 조금은 불협화음이지만, 도심 속 산책로는 답답했던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줬다. 그날은 날씨가 더웠다, 추웠다, 비가 오다가, 맑다가 변덕도 심했다. 하지만 다양한 산책길을 경험한 기분이었다. 맑고 쾌청하면 나무들의 가지와 잎 사이에 머무는 햇살을 만나고, 흐리고 비 오면 보슬보슬 거리는 빗소리를 만날 수 있었다. 끝없는 태종대의 산책로를 걸으면서 혼자 사색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친구와 속 깊은 우정도 나누었다. 태종대의 끝은 전망대였다. 푸른 바다 위 하얀 전망대, 그 아래 가파른 절벽, ‘아름답다’라는 말로 표현하기에 부족한 곳의 산책은 생활 속의 이익을 먼저 따져 생각하는 나를 반성하게 했던 시간이었다.


 산책은 자연을 만나야 하는 진정한 이유를 깨닫게 한다. 자연만이 생활 속에 거칠어졌던 마음들을 유하게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 속에서 산책은 사치일 수도 있다. 산책하는 시간을 줄여 좀 더 필요한 곳에 투자할 수도 있지만 산책은 그 이상의 유익함을 얻게 한다.

 현대사회에선 기억하는 일보다 지워지는 일이 더 많다. 가까운 거리도 빨리 가기 위해 차를 타고, 빨리, 더 빨리를 외치며 어떤 일이든 신속 정확하게 가 붙는다. 그런 세태를 반영한 듯 요즘은 산책을 할 만한 길을 찾기가 어렵다. 나무와 꽃들은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들로 줄줄이 찬 도시엔 코로 냄새를 맡고, 입으로 공기를 마시며, 눈으로 볼 수 있는 산책로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월리엄 헨리 데이비스는 ‘멈춰 서서 바라볼 수 없다면’이라는 시 속에서 말한다.


근심으로 가득 차

멈춰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인생이랴

…….

한낮에도 밤하늘처럼 별들로 가득 찬

시냇물을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눈에서 시작된 미소가

입가로 번질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면

가련한 인생이 아니랴 근심으로 가득 차

멈춰서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우리에게 멈춰서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인생이냐고 말이다. 간혹 돌아온 길을 후회하는 사람이 있다. 만약 그가 산책을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후회하는 일을 반으로 줄였을 것이다. 산책은 사색이며, 여유이자, 자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살이] 아버지의 카메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