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급한 일이 있고 중요한 일이 있다. 또는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로 나눌 수 있다.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할 때면 저는 대체로 급한 일이나 해야 하는 일을 택했다. 하고 싶은 일을 죽을 만큼 열심히 하는 것도 선택지였을텐데 재능이 없는 일에 시간을 쏟을 용기가 내겐 없었다.
브런치를 시작할 때 이 채널에는 UX에 관한 글만 쓰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쓰고 싶은 글보다 남들에게 읽힐 만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으니. 어느 플랫폼보다 글을 쓰기에 적합한 곳이 여기라는 걸 알면서도 브런치에 쓰는 글은 숙제 같았고, 미뤄둔 숙제는 쌓여갔다.
가끔은 잊고 있던 숙제가 생각나 부랴부랴 완성했지만 1편이라 내놓고 2편을 이어 쓰지 못할까봐 숨겨둔 적도 있다.
간헐적으로나마 블로그, 유튜브, 브런치를 운영하면서 진짜 나를 보여줄 때보다 정보성 콘텐츠를 내놓을 때 더 많은 선택을 받았다. 그 덕에 튜토리얼에 가까운 책을 출판하는 기회도 얻었으니 세상은 나의 이야기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를 원한다고 느꼈다. 그러나 썩 재밌는 일도 아님을 깨달았다.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었을 때 뿌듯함은 있었지만 재미로 따지자면 그저 그랬다.
늘어놓고 보니 죄다 변명이다. 긴 공백을 깨고 남기는 글이 겨우 이런 변명이라니, 100 명이 안되는 구독자지만 난 부끄럽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숙제 같은 글이 아니라 보여줄까 말까 고민하며 메모장에 쌓아두었던 글을 남기고 싶었다.
당장 에세이 작가가 되겠다거나 이 채널에는 UX에 관한 글을 전혀 안 올리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써야 하는 글과 쓰고 싶은 글 사이의 공백을 이 글로나마 조금 지우려 하는 것이다.
다시금 UX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채우게 되면, 그땐 처음 다짐했던 그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