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은

단상

by Jiin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고속촬영(슬로우모션)과 같다.


보통 1초는 30프레임으로 표현되는데, 1초에 담기는 프레임수를 많이 설정할수록편집과정에서 두 배, 세 배, 다섯 배로 늘일 수 있다. 예를 들면 1초를 120프레임으로 찍어서 24프레임으로 옮겨담았을 때, 우리는 다섯 배로 느려진 세상을 볼 수 있다.


늘여진 시간 - 예를 들면 더디게 내려앉는 빛, 움트는 미소의 순간 따위의 평소라면 의식하지도 못하고 지나쳤을 장면을 포착한 뒤 모든 간격을 의도적으로 넓게 벌여서, 충분히 스며들수 있는 공간을 주는 것이다.


글을 잘 쓰냐는 것은 내가 몇 프레임짜리 카메라를 가지고 있냐는 것과 어쩌면 같은 질문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순간을 붙잡고 펼치는 재주가 없다.


박완서의 글을 보면 찰나를 꽉 붙들고 놓지 않는다.

외손자의 뺨의, 새하얀 솜털에 내려앉는 봄날의 햇볕을 가지고도 한 더미의 유려한 문장들을 쏟아내는 능력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사진보다도 선명하다


몇 백, 몇 천 프레임짜리 카메라를 가져보고 싶었던 적이 없다

글을 잘써보고 싶었던 적이 없다

이렇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