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델피늄 Nov 24. 2019

내게도 따뜻한 친정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마음이 지친 날.

몽글몽글 따뜻한 온기를 충전하고 싶은 그런 날.

엄마 품에 안겨 푹 쉬다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 속에서 그려본다. 내겐 따뜻하고 포근한 친정엄마가 없다. 엄마는 살아있는데 마음이 죽었다. 엄마가 있는 데도 없는 것처럼 사는 기분은 때론, 절망적이다.


엄마는 내게 차갑다. 엄마의 세상에는 한겨울 칼바람이 분다. 어린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은 엄마밖에 없었기 때문에, 바람이 매서워도 난 참았다. 추위를 견뎌내는 방법을 혼자 알아서 찾았다.


엄마가 마치 주문을 걸듯 퉁명스럽게 내게 하던 말.


나중에 너랑 똑같은 딸 낳아서 한번 키워 봐라.


엄마의 간절한 바람이 이뤄진 걸까. 정말 나를 많이 닮은 딸을 낳아 키우고 있다. 나 같은 딸을 낳아보니 성격이 쿵작 잘 맞아 서로의 껌딱지가 되어 알콩달콩 잘 지내고 있다.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엄마에게 나는 어떤 딸이었을까. 내가 딸을 낳고 키워보니 친정엄마와의 관계가 풀기 힘든 숙제로 느껴진다. 너무 어렵고 복잡한 문제라 미루고 미루다 쌓여만 가는 그런 숙제.






엄마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가져와서 걱정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언제나 항상.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엄마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그늘을 드리웠다.

난 항상 엄마의 그늘을 보며 자랐다. 행복한 어린 시절의 기억보다 쓸쓸한 기억이 더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가만히 한 곳을 바라보며 자주 생각에 잠기곤 했다. 시간도 공기도 모두 다 멈춘 것처럼 아무 미동도 없이.

그때 엄마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지금 나는 알고 있다. 엄마의 세상은 왜 그리 싸늘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던 그 날. 엄마는 삼십 년의 체증이 쑥 내려가서 후련했을까. 엄마가 내려놓은 짐이 그 날 이후로 내게 옮겨진 건 알고 있을까. 본인의 그늘 안으로 나를 가두지만 말고 가끔 한 번이라도 따뜻하게 이름을 불러줬다면 좋았을 텐데. 그 흔한 ‘우리 예쁜 딸’ 소리 한번 들어보지 못하고 컸다.






가끔 옛날 앨범을 같이 볼 때면 엄만 내게 말했다.


네가 못생겼으니까 옷이라도 이쁘게 잘 입히려고 엄마가 얼마나 신경 쓴 줄 아니? 이쁜 애는 아무거나 입어도 이쁜데 넌 그게 아니니까 옷이라도 잘 입혀놔야 안 촌스러울 거 아냐. 자 봐봐. 지금 봐도 옷들이 이렇게 세련됐잖아.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엄마가 그렇게 치고 들어오면 난 잠시 멍해졌다. 더 대화하기 싫어서 다른 핑계를 대며 방으로 숨었다. 그런 말 좀 그만하라고 한 번이라도 화내 봤다면 덜 억울했을까. 그때 난 솔직하게 말할 용기가 없었다. 만약 여기서 발끈 화를 내면 나만 손해일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엄마의 세상 안에서 살고 있었으니까. 칼바람 같은 엄마의 말이 내 귀에 꽂혀 피가 나도 난 괜찮은 척했다. 엄마의 무관심이 더 무서운 어린 나였다.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 속에서 내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갈 때가 많다. 유치원 가기 전 아이의 머리를 묶어주다가도, 소소한 대화를 나눌 때도. 인형을 사러 가거나 그림책을 읽어 줄 때도. 앨범 속 사진처럼 그 시절의 장면 하나하나가 보인다. 대부분 씁쓸한 사진이다. 엄마가 서먹해서 어색한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서 있는 내가 보인다.






엄마와 아이는 서로에게 우주와도 같다.

드넓은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사랑스러운 내 아이별이 나를 향해 반짝이면, 나는 소중한 그 별을 품에 안아 따뜻하게 보듬어줘야 건강하고 더 밝게 빛이 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나는 지칠 때가 많다. 품고 있던 아이별이 새근새근 잠드는 하루의 끝이 오면 나는 힘이 다 풀려버린다. 그리고 느슨해진 의식의 사이로 온갖 감정들이 스며들어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는다.

내 우주가 흔들리고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고, 가슴이 시린 날엔 따뜻하고 포근한 곳에서 쉬고 싶은데. 너무도 간절하게 쉬고 싶은데 마음이 편히 쉴 곳이 없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마음 둘 곳이 없어 슬픈 새벽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요즘 글이 잘 안 써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