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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샬럿 Mar 07. 2023

서른셋에 잠수이별을 당하다니

대체 언제까지 사랑은 어려운 걸까


요 근래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정신적 충격이 상당해서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가장 최고의 다이어트는 마음고생 다이어트라던데, 살이 쭉쭉 빠졌다. 눈물이 나지는 않았지만, 일을 하다가도 내가 겪은 일을 떠올리는 순간마다 충격에 멍해졌다.


내가, 서른세 살 먹고, 잠수이별을 당하다니.



만난 지 한 달 된 전 남자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만)가 잠수를 타 버렸다. 둘이서 싸운 후 시간을 가지겠다는 말이 마지막이었다. 나는 딱히 큰 싸움이 아닌 것 같았는데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냥 그러라고 했다. 며칠 전 사이가 좋을 때 내게 앞으로 서운한 점이 있거나 싸우게 되면 끝까지 대화로 풀자고 한 사람이 맞나 싶었으나, 뭐, 사람의 생각은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 카톡 대화를 나눈 다음 날 저녁은 원래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같이 가고 싶었던 식당을 예약하고, 함께 보고 싶었던 공연 티켓까지 사놓았었다. 분명히 예전부터 일정을 공유하고 같이 만나기로 약속했었는데 식당 예약 시간을 넘어 공연 시작 시간 직전까지 그 사람은 연락이 없었다. 원래 성격 같았으면 전화라도 했을 텐데, 이 상태에서 해봤자 받을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들었다.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을 하며 황당함과 인내심의 끝에서 마지막 남은 애정과 배려를 겨우겨우 끌어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 오케이, 시간을 달라고 했으니 오늘 나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을 수 있지. 그렇지만 인간 대 인간의 예의로 이렇다 저렇다 간다 못 간다 기별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면 사고가 났다든지 무슨 일이 생겼나? 혹시 긴급한 일인가? 아니, 그렇다면 연락을 했겠지. 이렇게 까지 하진 않았을 거야. 온갖 의미 없는 상상과 예상들이 머릿속을 스쳐가던 끝에 스멀스멀 불길한 예감이 나를 덮쳐 오기 시작했다.  


반은 포기하고, 반은 실낱같은 기대에 어떻게든 해야겠다 싶어 자존심을 굽히고 구구절절 카톡 메시지를 보내 놓았다. 식사고 공연이고 나발이고 모두 날아갔고, 혹여나 하는 마음에 하루종일 답장을 기다렸으나 그는 그날 자정이 지나도록 하루 종일 내 카톡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 메시지는 읽은 상태였지만 여전히 답은 없었다. 그냥 전화를 해볼까도 했으나, 그때 사실 이미 이 관계는 끝이 났으며 더 이상의 노력은 헛수고라는 생각을 했다. 만나기로 약속한 날 연락도 없고, 다음 날까지 메시지조차 받지 않는다-라는 건 그가 보내는 무언의 시그널이었다. 그가 나를 정말로 여자친구로 생각하고,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를 정말 소중하게 생각했다면 이렇게 나를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시간을 달라고 했으며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을 수도 있으니 그 후로 며칠을 기다렸지만, 예상했던 대로 연락은 없었고 그렇게 헤어지자 그만하자는 말도 없이 우리의 관계는 끝이 났다. (솔직하게 말해 내가 차인 꼴이었으나, 사실 며칠 동안 이게 대체 관계의 끝인지도 아닌지도, 그리고 과연 이 관계가 시작은 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밖에 없는 의혹과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 사실 나는 사귀는 게 아니었던 걸까? 이건 다 꿈이었나?)


그 후에 다시 연락을 해볼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 마지막 자존심이 그것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굳이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나를 이렇게 예의를 갖춰야 하는 동등한 주체로 여기지 않는 것이 여실했던 그에게 내가 굳이 숙여야 할까.(만일 그렇게 했다고 해도 어디론가 숨어버린 그 사람에게 답변을 받을 가능성은 희미해 보였다.) 이미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겸허하게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으나—사실 그건 쉽지 않았다. 연애 기간이 얼마나 됐어요? 한 달이요. 내가 들어도 약간 민망하므로 어디가서 절대 오래 만났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걸 사귀었다고 할 수 있다면), 어쨌든 그는 내가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이었고 진심으로 멋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혼란스러운 이별의 순간으로 인해 그와 함께했던 그 한 달간의 시간과 그동안 나눴던 대화, 약속을 넘어 내가 그에게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빛나는 이미지까지 모두 부정해야 했다. 두고두고 아련하게 돌아볼 수 있도록 아카이빙 해놓고 싶은 추억은커녕 아예 기억 속에서 깡그리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이 된 것이다.


게다가 그가 보여준 행동은 며칠 동안 내가 스스로 나 자신을 비하하게 만들었다. 내가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무엇을 잘못했던 걸까. 나를 정말 좋아하는 감정은 있었던 걸까, 아니,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 같아... 아니면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 다른 사람이 생겼나? 나는 끊임없이 그가 이렇게 행동한 이유를 혼자서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찾고 있었다. 그 모든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순간마다 나는 초라해졌고, 나 스스로를 조여 오는 스트레스에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눈물은 나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그의 무책임한 행동에 슬프다기 보단 '충격'이 컸던 것이다. 다행히 가장 힘들었던 감정의 암흑기가 지나자, 이제는 조금 멀리 떨어져서 이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왜 이렇게 행동한 이유를 굳이 내가 찾아야 할까? 그 이유는 알 필요도, 앞으로 알 기회도 없다. 그냥 그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가 그런 사람을 만났던 것이다. 다시 한번 냉정하게 말해 우리의 관계는 딱 이 정도였던 셈이다. 그가 나를 생각한 것은 딱 이 정도였던 셈이다. 솔직하게 나는 그 사람에게 딱 이 정도의 존재였다는 걸 받아들이자. 만약 우리가 조금 더 함께한 시간이 길었다면 이별의 과정도 달라졌을까? 아니, 그럴 리 없다는 자괴감과 허탈함이 섞여 한숨이 나올 뿐이다.




서른세 살이라는 나이를 먹고 만나는 사람과 적어도 이런 이별의 시나리오를 쓸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우스운 착각이었다. 서른세 살이라는 나이에 시작한 연애는 비교적 안정적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착각이었다. 서른세 살 중 일 년의 딱 한 달만 할애한 연애가 끝나는 순간은 시간에 비례해 다소 덤덤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건 너무나도 큰 착각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사랑은 종잡을 수 없는 것일까,라는 허무함이 여전히 날 잠식하고는 있지만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의연하고 담대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연초에 내가 브런치에 썼던 글에서, 나는 ‘내 사랑의 기억이 습작으로 남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라고 다짐했다. 어쩌다 불협화음이 나거나 박자를 놓치는 실수를 하더라도 나중엔 작품의 소중한 한 조각으로 받아들여지는 그런 노래를 쓸 수 있는 과정이 될 거라고, 그 노래는 내 예상보다 짧을 수도 있지만 중요하지 않다고, 노래의 길이가 완벽한 이야기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고.


이번 연애는 당연히 완벽한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경험으로 인해 사랑에 두려움을 가지고 싶지는 않다. 그게 내가 이제는 만날 일 없는 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라고 생각한다. 사랑에 겁먹지 않기를. 기꺼이 새로운 사랑의 멜로디를 써내려 갈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하림의 노래처럼 언젠가 이 미성숙하고 유치했던 사랑은 새롭고 소중한 사랑으로 잊히기를.


그리고 언젠가 다시, 어떤 곳에서 어떤 상황에 어떤 관계로 만나게 될지 몰라도 그 사람과 우연히 마주친다면 어른스럽게 미소 지으며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나, 그동안 고생했어. 토닥토닥.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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