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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샬럿 May 16. 2024

발리에선 어디까지 가까워지는거에요?

모든 것이 가까운 도시, 그게 발리의 매력!


4년만에 발리를 방문했다. 벌써 세 번째 방문이다. 이 곳에서 지낸 2주 내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니 어쩌면 하루에도 몇번 씩 새삼스레 머릿 속을 채우고 있었던 생각이 있다.



발리는 진짜 모든 것이 가까운 도시인 것 같아.


한국에서 발리까지는 비행기로 편도 7시간이 걸린다. 막상 오려면 꽤 한국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라 비행 시간을 들으면 ‘생각보다 되게 오래 걸리네?’라고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딱 일곱시간 동안 예상보다 긴 비행을 견디고 나서 발리 여행을 시작하게 되면, 여긴 정말 모든 것이 가까운 도시이구나, 라는 생각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일단 발리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깝다. 꾸따, 짱구, 스미냑, 우붓… 어떤 지역에 있든 숙소를 나와 길을 걷는 순간 도보 위의 수많은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스쳐 지나가게 된다. 길이 다소 좁기도 하고, 그 좁은 길 바로 옆에 가게들과 호객꾼들이 즐비해 있기 때문이다. 처음 그 번화가를 지나갔을 때는 가게 앞 직원들이 내게 던지는 Hi, massage? Hi, drink? 라는 말에 Sorry, no thanks 라는 말로 하나하나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들은 바로 내 옆에서 웃으면서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고! 며칠 지나면서 그러한 인사들도 익숙해지고, 대답 대신 옅은 웃음으로 그들을 지나쳐 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내 바로 얼굴 옆에서 인사를 던지고 가게로 초대하는 그들이 신경쓰이고 마음이 쓰이는 건 마찬가지이다. (막상 그들은 나를 지나가는 행인 1 정도 보고 별로 신경도 쓰지 않을테지만.)


교통 체증 때문에 발리에서 택시보다 더 많이, 자주 이용하는 바이크 서비스, GoJek이나 Grab을 탈 때에는처음 만나는 라이더라는 사람과 매우 가까워진다. 한국에서도 전혀 타본 적 없던 오토바이 뒷자리였다. 처음 라이더가 도착해서 뒷자리에 타야 했을 땐 이렇게 누군가와 가까이 교통수단을 같이 타도 되는 것인지 난감했다. 그 와중에 대체 어디를 잡아야 하는지 - 라이더를 잡아야 하는지 바이크에 잡는 부분이 있는건지 - 발은 어디에 둬야 하는건지, 라이더를 잡기엔 조금 부담스러운데 그럼 운전할 때 밸런스는 대체 어떻게 잡아야 하는건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 그래서 맨 처음 나는 라이더 옆구리의 유니폼을 살포시 손가락으로 잡는 것으로 스스로 합의점을 찾았다. 하지만 몇 번의 라이딩 후 바이크에 익숙해지고 나서는 두 발을 받침대에 올리고 기립근에 힘을 준 다음 라이더와 꽤 여유로운 간격으로 떨어져 앉아서 심지어 두 손으로 폰을 하는 방법을 익혔다. 어쩄든 하루에도 대여섯번씩 타는 바이크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운 셈이지만 여전히 내 바로 눈 앞에 있는 라이더가 생소할 때가 많았다. (라이더 헬멧 너무 내 눈 앞에 있는거 아니에요...?)


이렇게 라이더와의 적정 거리를 두는 것과는 별개로, 바이크 뒷자리에 타서 길을 가다 보면 같은 도로를 타고 있는 다른 바이크들과 차들과의 거리가 이렇게도 가까울 수 있음에 놀란다. 마치 내 앞뒤양옆을 포위하고 있는 것처럼, 도로 위의 그 어떤 공간이라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바이크들과 차들은 다닥다닥 붙어있다. 차가 막혀서 멈추면 바이크는 같이 멈추지 않는다. 바이크 라이더들은 웬만하면 차와 도보 사이의 그 좁은 차도를 비집고 지나가 손님의 이동 시간을 줄여준다. 가끔 사람이 없을 땐 나를 태운 바이크로 도보 위를 지나가기도 한다. 만약 도보 위에 누군가 있다면 충분히 손을 맞대고 하이파이브를, 통성명을 할 수 있는 거리다. 가끔 Bakso Ayam 이라고 써있는 음식 가판대도 바이크와 차가 가득한 도로 한가운데를 느릿느릿 지나간다. 하지만 아무도 빵빵거리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그의 옆을 바이크로 능숙하게 피해 지나갈 뿐. 이런 과감함에 처음엔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나, 나중이 되면 도보와 차 사이를 빠져 나가서 먼저 움직일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고, 차 뒤만 쫓아가는 라이더를 보면 답답해지게 된다. 여기로 빠져나가서 달리면 도착 시간을 3분은 줄일 수 있을텐데 말이지.


이렇게 가까워도 되는걸까...?




놀랍게도 이런 복잡한 도로에서 몇 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아름다운 자연이 위치해 있는 곳이 발리다. 번화가와 자연 환경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오히려 해변을 따라 비치 클럽과 식당, 펍들과 같이 속세의 장소들이 늘어져 있다. 신나게 DJ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다가 시선을 돌리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길고 파도가 좋은 바다들, 그 곳에서 신나게 서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 위로는 마치 합성해 놓은 듯 파랗고 강렬한 하늘에 새하얀 뭉게 구름들이 떠있다. 해변 어디에서 노닥거리고 있든 일몰 시간만 되면 볼 수 있는 신비하도록 힘이 센 노을도 있다. 스미냑이나 짱구에서 아직 개발되지 않은 지역에 남아 있는 논밭들도 으리으리한 풀빌라 바로 옆에 위치해 있고, 마치 우리 나라 성수동을 떠올리게 하는 힙한 카페도 개울과 논밭 옆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있다.


한적한 섬으로 들어가면 자연은 더 나에게 성큼 가까워 진다. 택시 투어를 위해 타고 다니는 차 바로 옆을 지나가는 정글같은 수풀과 나무들이 가득하다.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뛰쳐 나가서 몸을 담가도 될 것 같은 해변의 해안선과 그 곳에 떠 있는 무방비하게 떠있는 작은 고깃배들이 그림같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유명 자연 경관 지역에서는 계단을 따라 조금 내려가다 보면 해안선의 수많은 바위섬들이 보이는 절벽에 닿을 수 있는데, 정말 조금 허풍을 보태서 야구공을 던지면 저 꼭대기에 떨어질 것만 같이 가까이에 있다. 여기서 하이라이트는 그 절벽을 그 어떤 안전 장치도 둘러싸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마치 그 자리에서 눈 감고 두 걸음만 크게 뛰어 가면  저 깊은 코발트 빛 바다속에 그대로 풍덩 뛰어내릴 수 있을 정도다. 돌아 나오는 길에는 신기하게도 발리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멋진 신축 리조트가 위치해 있다. 마치 웅장한 국립 공원 안에 있는 고급 리조트같은, 모순적인 느낌이랄까. 여기서 자도 되는 건가? 몽유병이라도 있으면 밤에 바다 속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겠는걸, 이라는 다소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며 걸어간다.   


너무나도 눈 앞에 있어서 무서웠던 섬들


이 자연 안에는 식물이나 환경 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포함되어 있다. 발리에서 가장 기분 좋은 것 중 하나는 길을 돌아다니는 평화롭고 여유로운 멍멍이들을 수없이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주인이 다 있을 멍멍이들은 낮에는 자유롭게 뛰쳐나와 산책을 하고 친구들을 만난다. 길을 걸어가는 내 옆을 느긋하게 꼬리흔들며 지나가기도 하고 바이크와 차를 조심해서 길을 건너며, 그늘에 누워 한 숨 자기도 한다. 사람들이 가까이 지나가도 경계하지 않고 내 생각에는 오히려 조금 귀찮은 존재로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슬그머니 들어와 내 옆자리에 붙어서 음식을 쳐다보는 멍멍이들도 있다. 미안하지만 안돼,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다시 자리를 떠난다. 비록 우린 스쳐가는 인연이겠지만 이렇게 착하고 멋진 멍멍이들을 가깝게 만나고 토닥여줄 수 있는 것이 행복하기만 하다.   



어딘가 닮은 발리의 강아지들





마지막으로 발리는 신과도 가까운 곳이다. 처음 발리에 가면 사람이 북적이는 번화가이든 다소 외진 곳이든 상관없이 건물이나 가게, 집 앞 바닥에 바나나잎이나 코코넛잎으로 만든 손바닥만한 바구니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차낭 사리 Canang sari' 라고 불리는 이 작은 바구니 안에는 꽃, 쌀, 간식, 오일, 담배나 향이 담겨져 있는데 힌두교에서 신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고 악을 막기 위해 바치는 공양물들이다. 매일 세 번 바쳐야 하기 때문에 모든 건물 앞, 바다로 가는 문, 작은 다리, 사거리 등에서 카낭 사리 바구니들이 몇 개씩 쌓여있는 걸 볼 수 있다. 힌두교가 발리에서만 특이하게 발현된 방식이라고 하니, 힌두교도가 아닌 나 또한 길을 갈 때 밟지 않기 위해 걸음을 조심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바친 그들의 정성과 마음을 한 번 더 떠올리게 된다. 그러다 무심결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수많은 연들이 하늘 높이 날고 있다. (연이 저렇게까지 높이 갈 수 있다니!) 저 연들 또한 논과 수확을 관장하는 신에 대한 경배의 뜻이라고 한다. 그 곳에서 걸음을 옮기면 몇 분 지나지 않아 길 옆에서 사원들을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크고 삐까뻔쩍한 사원도 종종 있지만,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건 집 옆에 붙어 있는 작은 규모의 사원들이다. 찾아보니 마을 하나당 3개의 수호신 사원을 모시고, 집마다 조상을 모시는 사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건물 하나 건너 사원 하나가 위치해 있는게 이상하지 않다. 발리에 높은 건물이 없는 이유도 사원보다 건물을 높게 지을 수 없어서라고 한다. 이렇게 발리인들의 일상과 하루에는 종교와 신이 가득하고 뗄레야 뗄 수 없이 가까이 붙어 있으니 이 곳에서 지내는 나같은 외국인 또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신과 가까이 지낼 수 밖에 없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이런 차낭 사리와 연, 사원들이 눈에 띌 때마다 한 번 공연히 소원을 빌어보기도 했다, 무사히 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라고.



길 가의 차낭 사리와 식당 옆 사원




이렇게 모든 것이 가까운 발리. 다소 복잡하고, 시끄럽고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며칠 지내다 보면 그 안에 발리만의 규칙과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규칙 속의 규칙, 혼란스러움 속의 너그러움과 여유가 나와는 제법 잘 맞았다. 그래서 결국 이 가까움이 내게는 부담스러움이나 불쾌함이 아니라, '인간미'라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하루하루의 일상을 보내는 태도와 마음이 한국에서보다 훨씬 더 편했다. (결국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부담감만 빼면...) 한국에서 점점 예민해지고 날이 서가는 사람들과 부대끼거나 그들을 쳐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받았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발리 여행을 하는 동안 완전히 사라져서 행복했다.


아직도 친구들에게 나는 발리가 현실같고 이 곳 한국이 비현실같다고 말한다. 벌써부터 발리의 그 가까움이, 따뜻함과 뜨거움이, 너그러움과 여유로움이, 사람들의 수줍은 미소가 그립다. 아마 그래서 빠른 시일 내로 다시 가게 될 것 같다. 어서 가서 다시 한 번 그 가까움 속에 거리낌없이 나를 던지고 싶다. 곧 봐, 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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