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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Jul 05. 2020

알맹이가 없는 글

못해도 1주일에 한 번은 블로그를 작성하려고 하는데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게다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글에 대한 압박이 생기기 시작했다. 브런치라고 해봤자 블로그에 있던 글들을 짜깁기하거나 약간 수정해서 올리는 정도인데 꼴에 작가라는 호칭이 붙으니 부담이 생긴 것 같다. 너무 사적인 이야기는 빼고, 가벼운 표현도 좀 빼고, 약간은 진지한 자세로 글이라는 걸 한 번 써봐야지 마음먹었다가 복잡한 생각의 짐이 구르고 굴러 커다랗고 새까만 공이 되어 나를 덮쳐버린다. 가볍게 재밌게 그저 조금 특별한 시기의 인생을 기록하려고 시작한 일인데, 밀린 숙제장을 확인하거나 능력 밖의 일을 해내야 하는 현실과 마주하는 것 같아서 블로그를 열어보는 것조차 피해버렸다.

그럼 그냥 가볍게 쓰면 되잖아? 언제나 답은 간단명료하겠지만, 그런데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 답이 좀처럼 개운치가 않다. '문예 창작과'가 따로 있으니 '국문학도'는 글재주가 없어도 된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를 내뱉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단념하다가도, 이 부담스러운 "글 잘 쓰기 노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하고 있다.


브런치에서 진행한 "한식문화 공모전"에 참가한 작품을 검색해서 읽다 보니 나름 야심차고 패기 있게 도전한 나의 글이 한없이 초라해졌다. 그리고 좀 우울해졌다. 어쩜 다들 창의력 하며, 구성력 하며, 묘사력 하며.. 글로 표현하는 재주가 그렇게 뛰어나신지..! 내가 미처 담아내지 못 한, 아니 담아내려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저렇게 표현하고 싶어도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을 찬란한 글들을 읽다 보니 배가 아파서 찬찬히 읽어내지 못할 정도였다. 휙 하고 다음 글, 또 휙 하고 다음 글로 넘겨본다. 역시나 또 잘 썼다. 좋은 글을 앞에 두고 나는 참 괴로웠다. 질투가 났다. 그렇게 남의 글과 나의 글을 비교하는 비루한 짓거리를 해대다가 새벽 4시가 훌쩍 넘는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곤 침대에 누워 최후의 한 방을 나 자신에게 날려본다. 바로 "브런치 조회 수" 확인하기! 브런치 작가로 이름을 올린 후 브런치 조회 수를 확인하는 것은 기대감과 실망감이 넘나드는 다소 불쾌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쫄깃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와 잠조차 오지 않는 그 새벽에, 초라한 조회 수로 다시 한번 마음을 흠씬 두들겨 맞고 KO 패 당한 채 그저 기력 없이 쓰러져 잠들고 싶었다.

벌겋게 지친 눈으로 브런치 조회 수를 확인한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조회 수 683? 생전 보지도 못한 백 단위의 숫자가 기록되어 있었는데 새로고침 할 때마다 놀라운 속도로 조회 수가 경신되었다. 이럴 경우 보통은 브런치 메인이나, 다음 포털사이트 메인에 글이 실린 경우이다. 다급하게 다음 사이트에 접속한다. 방금 전까지 분명 비루하고 초라한 나의 글들이었는데 그 잠깐 사이 꽤 괜찮은 글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전환에 사로잡힌 채. 대체 어떤 글이 메인에 실린 걸까?

찾았다! 나의 글, <암스테르담, "자유이용권"이라도 끊을까요?>

참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는데, 일단은 너무 기뻤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면서 여기든 저기든, 공모전이든 무엇이든, 내 글이 어딘가에 이름을 올리거나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해왔는데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것 같았다. 그리고 바닥을 쳤던 내 글에 대한 애착과 자존감도 조금씩 샘솟았다. 어찌 됐든 이 수많은 글들 속에서 관리자가 나의 글을 선택한 거니까.

한동안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몹시 부산하게 굴다가 결국 마지막으로 정리된 감정은 창피함이었다. 흥분이 가라앉고 들뜬 마음이 차분해질수록, 조회 수가 늘어날수록, 나 역시 그 글을 여러 번 읽어보며 또다시 평가라는 걸 하게 되었는데 결론은 "알맹이가 없는 글"이라는 것이었다. 밤 기운에 취해 끄적인 글을 다음날 아침 몸서리치며 구겨버린 일처럼, 나의 주관적인 감정만 무언가에 도취된 듯 과하게 기록한 글이다 보니 다 읽고 나면 누군가에게는 허무할, 그냥 그런 글이었다.

"첫인상과 잔상, 그리고 환상"이라는 소제목을 뒤늦게 달아본다. 그리곤 나의 창피함을 그 모호한 단어 뒤로 숨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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