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프랑스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는가?
2년 전 봄, 프랑스어 어학연수를 가기 위한 신청서를 들고 한 걸음, 두 걸음 조금씩 학과 사무실로 향했다. 사실은 신청서를 낼 때까지도 크게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신청하려는 학과 여름 방학 프랑스 문화 및 어학연수 프로그램이 기대된다기보다는 겁이 났었다. 신청하면 귀찮아지기만 한다, 그 시간에 집에서 편히 쉴 수도 있거나 다른 스펙을 쌓을 수도 있다, 가면 인종차별 오지게 당한다는 등의 말을 많이 들어서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정작 발걸음은 학과 사무실 문 앞 서류 제출함을 향하고 있었고, 손은 두뇌의 생각을 무시한 채 신청서를 서류함에 넣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있었고, 그다음 해 비슷한 무렵에 또다시 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다만 두 번째로 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을 때는 교환학기를 가기 위해 탔다는 정도의 차이점이 있었다. 그만큼 어학연수를 가기 전에 있었던 단기적 해외 체류, 그리고 프랑스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많이 씻겨 내려갔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프랑스어를 배워왔던 기간은 꽤 길다. 고등학교를 입학해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프랑스어를 지금까지 거의 놓지 않고 공부를 했더니 벌써 7년째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학부 수준이긴 하지만 프랑스 문화, 정책, 역사 등에 대한 더 심도 있는 공부까지 했다. 우리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는 유럽 서쪽 끝에 있는 나라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편은 아니지만, 그 나라에 대한 생각은 어느 정도 많이 해 봤다고 조심스레 말할 수 있는 편이긴 하다.
이 단편적인 사실들만 놓고 본다면 프랑스어를 꽤 오래 공부했다고 할 수도 있고, 국내에서 경제적으로 취업이 더 잘 되는 언어들은 따로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 이 생각들 중 일부는 맞는 말이다.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쉬웠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고, 프랑스어를 계속 공부하며 고등학생일 때, 혹은 대학생일 때 프랑스어를 중간에 포기하고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틀기 시작한 친구들과 선후배들도 많이 봤다. 나도 프랑스어를 공부하며 회의감이 들던 적도 많이 있었으니까 꼭 그들만을 탓할 일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프랑스어를 공부했을까? 솔직히 남들처럼 뭔가 뚜렷한 목표가 있어서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냥 지금까지 계속해 와서?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듣는데 포기하기는 아까우니까? 딱히 다른 거 잘하는 게 많이 없으니까? 그 정도가 내가 프랑스어를 계속해 오는 이유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답변은 결코 겸손해지기 위해 대충 둘러대는 말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 말은 진심에 가까웠다. 바꿔 말하자면 오랫동안 프랑스어를 공부해 오면서도, 그리고 그들의 문화에 대해 조금씩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면서도 왜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화를 배우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없었다는 뜻이 된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철없이 살았어도 크게 문제가 안 됐다. 하지만 어느덧 세월이 흐르고 보니 대학 졸업 후를 슬슬 생각하기 시작할 때가 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나중에 어떤 직군으로 가면 좋을지, 그리고 프랑스랑 관련이 없는 직종으로 간다면 왜 굳이 귀한 시간적, 금전적 자원을 프랑스어에 투자하는지, 이런 질문을 머릿속으로 많이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2020년 초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다. 사실 바이러스가 옮겨 다니며 새 숙주를 찾는 속도보다 다른 국가, 혹은 타 인종을 보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더 빨리 퍼졌다. 예를 들어 서양에 사는 동양인들은 크고 작은 인종차별을 더 쉽게, 더 자주 경험했고, 심한 경우에는 무차별 폭행까지 당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서구 선진국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크게 바뀌었다. 미국, 서유럽에 대한 환상은 부정적인 시선으로 매우 빠르게 변했고, K-방역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단편적인 것들만 보는 게 아닐까? 너무 우리가 보고 싶은 면만 보는 게 아닐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면도 있는데 그것들을 굳이 보려고 노력을 너무 안 하는 건 아닐까? 분명히 프랑스 생활을 잠깐 하면서, 그리고 현지 사람들과 만나 보면서 결코 이런 단편적인 생각은 많이 안 들었는데. 안 되겠다. 내 생각을 정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며 갑작스레 기억이 날 때마다 핸드폰 메모 앱에 프랑스에 대해 배웠던 점, 프랑스에 살면서 있었던 일,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등을 하나둘씩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보니 메모 앱에 적힌 한 줄짜리 생각들은 글과 그림의 양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서론이 많이 길어졌지만 한 마디로 말해 ‘우당탕탕 프랑스’ 수필 시리즈를 쓰게 된 이유는 프랑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이다. 안 그래도 인생의 새로운 방향을 정해가야 할 시점도 되었고, 이 모든 게 맞아떨어져 어느덧 노트북 앞에 앉아 구체적인 수필 글을 쓰기 시작하고 있었다. 내 이야기는 완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프랑스에서 산 기간도 1년이 채 안 되고, 나보다 프랑스어를 더 열심히, 더 오래 공부한 사람들도 많으니까. 그러나 내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 중 한 명이라도 프랑스에 대해 조금은 알아가고, 내 이야기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수필 시리즈의 목표가 달성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