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구하는 것마저 쉽게 허락해 주지 않은 파리
처음에는 평소보다도 더 즐거운 날이었다.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에 식탁을 맛있는 음식들로 가득 채우고, 서로 조잘거리며 음식을 하나둘씩 입 안으로 넣었다. 마침 나랑 다른 한 친구가 같이 프랑스 파리로 가는 교환학기를 준비할 시기라서, 당연히 그에 대한 이야기도 오고 갔던 거 같다.
그 친구는 기숙사를 배정받은 상태였고,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기숙사를 배정받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숙사 공고가 거의 뜨자마자 신청을 했기 때문에 기숙사에서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앞으로 펼쳐질 프랑스에서의 재미있는 한 학기를 그리느라 즐거웠고 친한 친구들과 같이 현재를 즐기기에 바빴다.
이 평화를 깬 건 핸드폰 화면에 뜬 이메일 알림이었다. 발신자는 다름이 아닌, 프랑스에 있는 교환 학교의 교환학생 담당 팀이었다.
“어?”
“왜 그래?”
“기숙사 관련해서 안내가 온 거 같아.”
그 말을 하고 나는 본능적으로 핸드폰을 열어 이메일 내용을 확인했다. 고등학교 때, 그리고 대학교에 들어와서도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도 이메일 내용을 어렴풋이 해석은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고등학생 때도, 그리고 대학생 때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프랑스어를 잘한다고 나름 칭찬을 받던 터여서 간단한 이메일 내용이라면 당연히 해석을 할 줄 알아야 했다.
그런데도 내가 맞게 읽었는지, 혹시 잘못 해석한 건 없는지 여러 번 다시 이메일을 읽어야 했다. 이메일의 내용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야. 내가 잘못 해석한 거겠지. 내 프랑스어 실력이 부족한 것일 거야.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내 엄지손가락은 이미 핸드폰 홈 버튼 위로 올라가 있었다. 그다음으로 킨 앱은 바로 구글 번역기 앱. 이메일의 내용을 복사해 번역기 앱에 붙였다. 설마설마했는데 영어로 다시 한번 확인사살을 받았고, 나는 멍하게 핸드폰 화면을 보며 눈을 끔뻑였다.
“… 기숙사 자체는 붙었대.”
“그럼 된 거 아니야?”
… 내가 배정받은 기숙사만 10월 1일에 열려.”
기숙사가 10월 1일에 열린다니. 이건 맨 처음 안내와 너무나도 달랐다. 교환 학교 측은 분명히, 9월 2일에 교환학생들을 상대로 오티를 하고, 9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교환 학생들에게 기숙사를 배정해 주겠다고 했다. 게다가 수업은 9월 16일부터 개강이었다. 근데 뭐? 내 기숙사만 10월 1일에 열린다고? 프랑스는 싸데펑 (ça dépend. ‘그때그때마다 다르지’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의 나라라더니, 프랑스에 가기 전부터 이런 일을 겪을 줄이야.
그 순간 이후로는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번역기로 다시 한번 확인사살을 받은 뒤, 카톡으로 부모님께 상황을 알리고, 같은 학교로 교환을 갈 예정이었던 동기에게도 어느 기숙사를 붙었는지 다급하게 물어봤던 거밖엔 생각이 안 난다. 부모님과는 긴급 카톡 회의가 소집되었고, 동기도 같은 기숙사를 배정받아서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는 톡을 보냈다. 짤막한 이메일이 쏘아 올린 작은 공 때문에 평화롭기만 하던 친구들과의 하루가, 카톡 알림 창 옆의 붉은 숫자가 순식간에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면서 깨져 버렸다.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나도 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기숙사에 들어간다고 하고 9월 한 달간 살 곳을 찾거나, 아니면 아예 기숙사 입주를 거절하고 한 학기 내내 살 곳을 찾던가. 7월 중순. 시간이 없었다. 이미 8월 초에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해 뒀었고, 8월 한 달간은 여행을 다닐 계획이었고, 9월 2일에는 오리엔테이션이 열린다. 주거 문제를 속전속결로 해결하지 않으면 홈리스가 될 수도 있으니, 서둘러야 했다.
문제의 9월 한 달 동안 어떻게 할지는 의외로 빨리 정해졌다. 나도 그렇고, 부모님도 10월 1일부터 기숙사에 제때 입주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일처리는 느리고 그때그때마다 변동이 심하다고 악평이 자자한 터. 하물며 기숙사도 과연 약속한 대로 10월 1일에 입주가 가능해질까. 이런 생각을 하고 이틀 뒤쯤 교환 학교 측에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답장 메일을 작성했다.
키보드를 치고 있는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욕을 하고 있었지만 이메일의 내용은 너무나도 상냥하고 정중했다. 정말 인간이란 알 수 없다. 상황이 최악이어도 이렇게 행동할 수 있다니. 이런 상황 속에서 최대한 정중히 하고 싶은 말을 다 쓰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진짜로 집을 구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