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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쭌쭌이 Dec 22. 2020

에밀리의 눈에 비친 파리

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 리뷰

(이 리뷰는 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부터 전 세계 넷플릭스에 공개가 되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끈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가 있다. 바로 릴리 콜린스가 주연으로 참여하고 ‘섹스 앤 더 시티’의 제작자 대런 스타가 참여한 ‘에밀리, 파리에 가다’라는 드라마다. 아직 에피소드 10개짜리 시즌 하나만 공개된 이 드라마는 줄거리가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미국 시카고에서 일하고 있던 주인공 에밀리가 상사를 대신해 파리에 있는 럭셔리 브랜드 마케팅 회사로 파견되고, 거기서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고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하려고 하는 게 이 드라마의 핵심 내용이다. 여기서 이야기를 이끄는 주 요소는 에밀리가 프랑스어를 하나도 못 하고 프랑스 문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파리에 파견된다는 점이다. 그러 인해 에밀리는 파리에 도착해서 여러 난관에 부딪히나 매번 특유의 재치와 친구들의 도움을 빠져나온다. 드라마에서 아름다운 파리의 풍경을 잘 담아냈고, 이야기가 가볍게 보기 좋게 진행되어서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사실 처음에는 이 드라마를 볼 생각이 크게 들지는 않았다. 넷플릭스 썸네일만 봐도 대충 어떤 내용이 그려질지 너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도 하루 만에 다 봤다고 해서 솔깃해졌고, SNS에서 볼 수 있는 평도 호불호가 명확히 갈려서 더더욱 호기심이 커졌다. 무엇보다도 넷플릭스 프랑스 트위터 공식 계정이 해당 드라마를 약간 놀리듯이 홍보를 한 게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결정타가 됐다. 결국 사나흘 만에 열심히 웃기도 하고, 열심히 욕하기도 하면서 드라마 정주행을 끝내는 것을 성공했다. 드라마를 보니까 왜 그렇게 인기를 끌었는지 조금은 알 거 같았다. 주인공 에밀리가 가는 곳들은 거의 다 사람들이 프랑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들이었다. 시청자들은 에밀리를 통해서 코로나로 여행을 더 가기 힘들어진 시점에서 파리를 대신 구경할 수 있었다. 물론 나도 그 시청자들 중 한 명이었고, 에밀리가 가는 곳들 중 일부는 나도 이미 가 봤거나 스쳐 지나간 곳들이라 작년에 교환학생을 갔던 추억에 다시 잠길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많이 과장되긴 했지만, 등장인물들이 겪는 상황 중에서는 프랑스에 가면서 공감되는 점들이 꽤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 영어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하는 데 잘 안 되는 것을 불평하는 에밀리를 보면서는 지하철역, 이케아, 기차역, 우체국 등 다양한 장소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주변 한국인들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제대로 작동이 안 되는 샤워기를 제대로 고치고 가지도 않고 밥만 얻어먹고 간 수리 기사를 보면서는 프랑스에 가기도 전에, 그리고 심지어 프랑스에서 돌아오고 나서도 겪어야 했던 프랑스식 일처리가 떠올라서 에밀리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도 강하게 들었다. 무엇보다도 틈만 나면 쉴 새 없이 에밀리에게 작업을 거는 프랑스 남자들을 보고는 프랑스 문학의 단골 소재인 연애, 불륜, 섹스 등의 키워드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이웃인 가브리엘과 같이 있는 에밀리. 출처: 넷플릭스 스크린샷.


그럼 이 드라마는 과연 프랑스를 잘 표현했다 할 수 있을까? 파리의 풍경도 사실적으로 잘 담아내고, 앞서 언급한 공감이 가는 요소도 있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프랑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에밀리가 프랑스로 파견된다는 점을 제외하고서라도(!) 프랑스를 제대로 못 담아낸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우선 에밀리는 꽤 자주 테라스가 있는 정통 프랑스식 카페, 혹은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파리에 있는 이런 카페들은 식사도 서빙하는 경우가 많아서 식당과 잘 구분이 안 되기도 한다.) 에밀리뿐만이 아니라 파리에서 만나는 직장 동료들도 사내 점심시간이 되면 종종 이런 식당에서 식사를 하곤 한다. 그러나 유럽에 가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이런 식당들, 특히 에밀리가 가는 파리 중심부에 있는 이런 식당들은 가격이 매우 비싼 데다가 가성비가 좋다고 하기에도 힘들다. 다시 말해 이런 식당들은 어쩌다 기분 전환으로 가기에는 좋지만 매일매일 가기에는 힘든 식당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의 많은 학생들, 그리고 직장인들은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기 위해 다른 대안을 선택한다. 물론 나도 그런 대안을 찾으려 했던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고, 내가 학교 점심시간이나 회사 점심시간에 먹었던 간단한 음식으로는 슈퍼마켓 3분 요리, 케밥, 샌드위치, 크레이프 등이 있었고, 이 음식들은 전부 5에서 7유로 정도 (약 6500~9000원) 했던 거 같다. 주머니에 조금 더 여유가 있어서 더 맛있는 거를 먹고 싶었을 때는 베트남 음식점, 레바논 (중동에 있는 조그마한 나라다) 음식점, 이태리 식당 등을 찾아갔다. 이런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땐 최소 10유로 (약 13000원) 초반대의 돈을 내야 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위에서 언급한 음식 중에서는 정통 프랑스 음식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즉, 아무리 내가 프랑스에 있다고 해도 결국 평소에 자주 먹게 되는 음식은 프랑스 음식이 아니다.


흔히 고급 프랑스 식당에서 자주 먹게 될 거라 생각하지만 (좌, 넷플릭스 캡쳐) 현실에선 버거킹을 더 자주 먹게 된다 (우).


게다가 드라마를 보면 에밀리 주변 프랑스인들만큼은 전부 영어를 거의 영미권 원어민 수준으로 잘한다. 비록 에밀리가 길거리에서 짤막하게 만나는 프랑스인들은 전부 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지만 말이다. 물론 나도 프랑스에 가서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을 몇 명 만났다. 그러나 당연히 영어를 잘 못하는 친구들도 꽤 있었고, 영어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프랑스식 발음이 센 친구들도 있었다. 반면 에밀리가 길거리에서 만나는 프랑스인들은 전부 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점은 오히려 현실성이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어느 정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데, 관광 명소가 몰려 있는 중심가에 있는 상점 직원들 중에는 영어를 조금이라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먼저 프랑스어로 말을 걸어서 프랑스어로 잘 얘기하다가도 내가 막히는 거 같으면 영어로 부연설명을 해 주는 경우도 있었고, 아예 처음부터 내가 동양인인 걸 의식해서 먼저 영어로 말을 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서 아무래도 가장 비현실적인 점은 에밀리가 영어밖에 못하는 것을 가지고 주변 프랑스인들 중 일부가 매우 불친절하게 군다는 점이다. 몇몇 사람들은 오히려 이 점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도 프랑스어를 거의 못한다는 이유로 차갑게 구는 프랑스인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에밀리의 모국어가 영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경우라면 아무리 본인들의 언어에 자부심을 느끼는 프랑스인들도 먼저 영어로 도와주려고 노력할 확률이 꽤 높고, 에밀리도 그 점 덕분에 불친절한 대우를 상대적으로 덜 겪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프랑스에 갔다 온 적이 있는 내 친구의 영어 원어민 과외 선생님도 프랑스인들이 영어를 가지고 생각만큼 불친절하게 굴지 않는다고 하셨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에밀리가 파리에서 사귄 친구 카미유한테서 문자를 받는 것으로 에밀리가 프랑스에서 겪는 모험들이 일단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나도 에밀리가 문자를 받으며 놀라는 것을 지켜보며 넷플릭스 화면을 껐고, 앞으로 에밀리가 어떤 일을 더 겪을지도 잠시나마 상상을 해 봤다. 향후 나온다는 시즌 2에서 에밀리는 프랑스의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 내가 파리에서 겪었던 일을 에밀리도 겪을까. 아니면 시즌 1에서의 삶이 계속 이어져서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프랑스의 모습만 보다가 시카고로 돌아갈까. 아직 시즌 2 제작만 확정되고 앞으로 에밀리가 무슨 일을 겪을지는 확정된 바가 없어서 섣불리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다만 확실한 건 시즌 1에서의 태도로 봤을 땐 에밀리가 프랑스어나 프랑스 문화를 배울 의지가 크게 느껴지진 않았단 점이고, 이 태도가 시즌 2에서도 이어질 확률이 크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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